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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유전자가 술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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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7-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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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 환경적 요인으로 예방 가능… 유전자와 환경의 결합 여부에 따라 결정돼

사진/ 술에 취한 노숙자가 길바닥에 쓰러져 있다. (이정용 기자)
알코올 중독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우리나라 인구 중 20%는 주의할 만한 단계라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미국의 경우에는 130만명이 알코올 중독자로 분류되고 있으며, 적어도 700만명 정도가 가족 중에 중독자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약 10%의 인구가 전체 술 소비량의 반을 마신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알코올 중독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병리현상보다 주위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는 것과 본인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데 있다. 고속도로 사고의 50%, 폭력의 30%가 음주와 관련이 있다.

술중독 유전자 명확하게 규명 안 돼

문제는 보통사람이 자기 파괴적인 중독에 이를 만큼 술을 마시도록 몰아가는 게 무엇인가에 있다. 최근의 분자유전학적인 연구결과는 대부분 유전적인 성향을 주된 원인으로 본다. 아직 술중독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신에서 만들어져 뇌로 전달되는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의 수용작용을 방해하는 유전인자가 중독현상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유전인자가 발현하면 술뿐만 아니라 담배, 각종 마약류 그리고 음식 등에 중독현상을 나타나기 쉽다는 것이다. 생리학적으로 보면 술을 마실수록 ‘테트라하이드로 파파베롤린’(Tetrahydro Papaveroline)이라는 물질이 알코올 내성과 신체적 의존성을 더욱 증가시켜서 중독을 강화한다.


사진/ 알코올 중독 관련 유전자가 있어도 환경을 잘 조절하면 막을 수 있다. 회식 자리에서도 사람에 따라 술을 권해야 한다. (이정용 기자)
물론 일부에서는 알코올 중독을 술마귀의 농간이라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전 빅토리아 시대에는 알코올 중독을 의지가 박약해 생기는 개인적 도덕심의 문제로 해석했다. 서양에서 알코올 중독은 1930년대부터 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에서와 같이 많은 연구자료는 알코올 중독의 원인을 유전적 소인으로 돌리기에 충분한 사례를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부모 중 한 사람이 알코올 중독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술에 대한 적응성이 충분히 유의미한 수준(약 4배)으로 나타났다. 쉽게 말하면 4배 정도로 술이 세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코올 중독자의 자녀 중에서도 정상인 사람은 수없이 많으며, 또한 정상인 부모를 둔 사람 중에서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사람도 많다. 이런 사실은 알코올 중독을 단순히 유전적 소인으로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최근 미국 보건원에서는 원숭이를 상대로 알코올 중독의 환경적 요인을 실험해보았다. 300여 마리의 원숭이들에게 일주일에 5일간, 한번에 1시간 동안 약 8.5%의 술을 마실 수 있도록 술병을 창살에 달아놓았다. 실험결과 약 10% 정도의 원숭이들이 거의 알코올 중독이 될 정도로 술을 즐겨마셨는데 흥미롭게도 그런 원숭이들은 뚜렷하게 구분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생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미로부터 떼어놓은 원숭이와 정상적으로 부모 곁에서 자란 원숭이들 사이에 알코올 소비량과 그 중독의 정도 차이는 컸다. 이렇게 두 그룹으로 분류된 원숭이들에게 4살 이후부터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했는데, 어릴 적부터 어미와 떼어놓은 원숭이 무리들은 그렇지 않은 정상적인 원숭이들보다 많은 양의 술을 마셨다.

흥미로운 것은 중독현상을 보이는 원숭이들은 사람의 경우처럼 주위 원숭이에게 시비를 걸거나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였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자들의 대표적인 두 부류(자기 방어형 중독자, 공격형 중독자)가 원숭이들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한 가지 차이라면 공격형 중독자가 사람인 경우에는 대부분 남자인 데 비하여 원숭이들의 경우에는 암컷과 수컷의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까닭을 연구자들은 문화적인 요인에서 찾는다. 왜냐하면 대부분 어느 문화집단이든지 여성들의 음주에 대해 부정적인 교육을 시키는 것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원숭이 실험에서는 생물학적인 요인도 발견됐다. 보편적으로 혈청 중에 있는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의 분비 정도와 관련된 것으로 밝혀졌다. 인간의 경우 이 호르몬이 부족하면 우울증, 강박증, 음식물 섭취장애, 자살 등을 일으킨다. 관찰에 따르면 대부분 술을 즐기고 상처투성이의 싸움꾼 원숭이들에게는 적은 양의 세로토닌이 발견된 반면 얌전한 원숭이들은 그 반대였다. 문제는 태어날 때부터 세로토닌 분비량이 적은 원숭이들을 안락한 환경에서 부모와 함께 자라게 했을 때다. 이 경우에서는 상당 기간 별다른 중독성이나 폭력성이 관찰되지 않았다. 세로토닌이 정상적으로 분비되는 원숭이를 어릴 적부터 어미와 격리시키면 당분간은 정상적인 행동을 보이지만 그것이 그렇게 길게 가지 못한다는 사실도 관찰됐다. 어미 곁에서 자라지 못한 원숭이들은 또래 그룹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매우 잦은 폭력적인 방법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물론 태생적으로 낮은 세로토닌 분비구조를 가진 원숭이를 좋은 환경에서 자라도록 한다고 해서 세로토닌의 분비가 충분하도록 내부적인 생리구조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유아기적 환경과 세로토닌의 분비 중에서 어떤 요인이 어떤 경우에 더 강하게 작용하는가를 구별하는 것이다. 관찰된 결과는 세로토닌 양이 적게 분비되는 원숭이를 부모와 함께 길러도 나중에 술에 집착하는 정도는 세로토닌 양이 많은 원숭이보다 다소 높다는 것이다. 특히 성장기 중 어린 구강기에 뭔가를 입으로 빨고 싶어하는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한 원숭이가 커서 술에 크게 집착하는 심리적인 원인도 상당히 확인되었다.

중독자 가운데 재활치료를 마친 사람의 25% 정도는 그대로 중독상태를 벋어나지 못하고 나머지 25%는 완전히 벗어났다. 나머지 50%는 음주량을 줄이는 정도라는 조사보고를 볼 때 유전적인 영향과 환경적인 요인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음주를 유전적인 요인으로 보지 않으려고 한다. 예를 들면 동양인 가운데 약 10%는 알코올 분해효소인 ALDH2를 제대로 활성화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술을 마시면 거북함과 역겨움을 호소하지만(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우리 사회는 이런 유전적인 소인을 거의 인정해주지 않으며 끝까지 강권한다.

안정되고 화목한 가정을 물려주라

술을 마시도록 유인하는 유전자가 실제 있는지는 앞으로도 계속 연구해봐야 할 과제다. 하지만 그러한 유전자가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중독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조심스럽게 그러한 유전자가 “깨어나지 않도록” 주위 환경을 잘 조절한다면 위험을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 최근에는 동성애 유전자인 게이 유전자(Gay gene)가 있는지의 여부로 큰 논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볼 때 동성애자가 가장 많이 생겨나는 경우는 대개 여성의 수가 극단적으로 부족한 전쟁터나 군대라고 한다. 이런 것들 때문에 만약 부부가 원하면 함께 영내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에 환경·문화적인 소인이 중요한지 아니면 물려받은 유전자가 더 중요한지를 따지는 일은 결국 사회생물학 논쟁으로 귀결된다. 이런 추세 속에 최근 서양의 선진국들에서는 그렇게 하도록 명령한 뇌의 유전적 이상을 이유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일이 더러 있다. 값비싼 변호사를 고용해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런 일은 다시 한번 사회생물학 논쟁을 생각케 한다. 중요한 것은 둘의 우선순위가 아니라 두 요인이 어떻게 결합하고 어떻게 발현하는지를 밝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어쨌든 단지 가능성만 있는 유전자를 넘겨주는 것보다는 안정적이고 화목한 분위기를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유산이 될 것이다.

조환규/ 부산대 교수·컴퓨터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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