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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조개를 안주로 매향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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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7-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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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땅 매향리에서 느끼는 특별한 정취… 시퍼런 바다를 굽어보며 조개를 구워보라

내후년, 잔설이 가시고 양지바른 묘지 잔디 위 따사한 햇볕 속에서의 낮잠이 꿀맛 같을 초봄, 이곳 매향리엔 청매화 향기가 온 동네를 휘감으리라.

경기도 화성시 우정면 매향리. 옛날옛적 서원과 무장이라는 두 선비가 마을 이름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이것저것 좋은 이름들을 생각해보았지만, 결국 모두가 만족스럽지 않아, 서원이 ‘매’(梅)자를 내고 무장이 ‘향’(香)자를 붙여 이곳 이름이 매향리로 정해졌다고 전해온다.

그러나 최근까지 매향리에는 매화나무가 없었다. 매화나무가 없으니 물론 매화향기도 나지 않는다. 지난 반 세기 이래 매향리는 미공군의 사격연습장으로 변해버렸다. 새 초롱처럼 생겼다 하여 농섬이라는 이름이 붙은 매향리 앞바다 작은 섬은 미공군기들이 내려갈기는 기총소사의 표적이 되었다. 매향리 일대는 혹시 켄터키에서 건너온 미군 중대장 아이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인지 ‘쿠니 사격장’으로 바뀌었다.

사진/ (김학민)
들리는 이야기로는, 농섬은 먼바다에 외로이 떠 있는 섬이 아니기 때문에 전투기들이 민간인 거주지역을 낮게 날아 직접 사격을 할 수 있어 훈련조건이 아주 좋은 사격장이라고 한다. 지난 3월30일 홍일선 시인 등 20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은 포연에 찌들고 포탄 조각들이 어지러이 나뒹구는 매향리 일대에 2천여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매향리에 갔을 때, 나는 사격장 철조망 사이사이에서 매화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폭격으로 사격으로 갈가리 찢겨 빨간 속살이 드러나 신음하고 있는 매향리 땅을 위해 못난 후손들이 할 수 있는 소박한 위로였으리라.


사격장 철조망을 살짝 빗겨나 왼쪽으로 가면 작은 포구가 있다. 경기만 일대가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갯벌 하나 남아 있지 않고, 아담한 포구들 또한 뭍으로 뭍으로 사라지는 이때 이렇게 예쁜 포구가 남아 있다는 것이 참으로 대견스럽다.

사진/ 바다소리 주인 백승선(오른쪽)씨와 부인 김애라씨. 바다가 바로 발앞에 펼쳐져 있다. (김학민)
이 포구에는 조개구이집들이 예닐곱 군데 있다. 선착장과 방파제의 바다 쪽으로 가게들을 이어달아, 물이 찰 때는 시퍼런 바닷물 위에서 조개를 구워먹는 맛이 제법 그럴 듯하다. 나는 매향리에 오면 젊은 부부 백승선(33), 김애라(32)씨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너무 보기 좋아 방파제의 네 번쨋집 ‘바다소리’에 단골로 간다. 바다가 바로 코앞에, 발 아래 있는 그 집의 ‘특석’에 앉아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소라·바지락·명지조개·키조개·대합을 구워 소주 한잔을 기울이는 정취가 끝내준다.

모듬조개 한 소쿠리에 1만5천∼2만원 하며, 부근에서 잡히는 우럭·도다리 등이 kg당 2만5천원이다. 조개 한 소쿠리와 생선 1kg이면 3∼4명의 안줏감으로 충분하지만, 그래도 속이 허전하다면 바지락칼국수 1∼2인분 추가할 일이다.

평균 하루 1번 반 정도 물이 들어와서, 방파제나 심지어 조개구이집 앉은 자리에서도 낚시를 할 수 있다. 웬만하면 망둥어 낚는 손맛을 꽤 쏠쏠하게 본다. 물때는 바다소리 주인 백씨에게 전화로 물어보면 친절히 알려준다(016-323-2282). 서해안 고속도로 발안 나들목으로 나와 우회전, 조암 방향으로 20분쯤 가면 이화리 표지판이 나오고 여기서 15분 정도 더 가면 매향리다. 돌아오는 길에 어부들이 잡아오는 바지락 등 조개를 싸게 살 수 있으며, 월문리 온천단지 부근에서 해수목욕을 해도 좋다.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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