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미생물이 지구를 지킨다

416
등록 : 2002-07-03 00:00 수정 :

크게 작게

일상에 침투한 세균들의 이중생활… 생물테러 무기·환경 해결사 등으로 활동

사진/ 남조류 흔들말의 하나인 '스피룰리나'.
생물권에서 가장 작은 생명체인 미생물. 바닷물 1cc에는 100만 마리의 박테리아가 있을 정도다. 대략 0.5㎛(1/2000mm)의 크기다. 성인의 몸에는 이런 세균이 약 1kg이나 살고 있다. 이들은 병원균의 공격을 방어하고 좋은 포도주를 만들도록 돕는다. 하수를 정화하고 농작물 해충을 방제하는 미생물도 있다. 그러나 때론 콜레라·결핵·흑사병 등의 질병을 일으켜 공포의 대상이 된다.

사진/ 스피룰리나에 서식하는 시네코코투스는 독성물질을 제거하며 온실가스를 막는다.
최근에는 생물테러라는 치명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 9·11 참사에 이은 생물테러설은 방독면과 탄저병 치료제인 ‘시프로’를 가정상비품 목록에 올려놓았다. 지난 1923년 프랑스의 화학자들이 파리 북방의 들판에 병원균 폭탄을 투하한 뒤 수많은 실험이 이어졌다. 미국은 세균전 프로젝트를 수립해 탄저병과 야토병, 브루셀라병, 고열성 질환 등을 유발하는 미생물을 무기화했다. 현재 미국은 250만개 이상의 미생물을 이용한 폭탄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구 시스템을 소유해 경영한다


미생물이 살인무기로 거듭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우선 원하는 유기체의 유독성 균주를 확보해야 한다. 많은 전염성 천연 균주들은 생물학적 무기로 쓰일 만큼의 유독성은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선택된 병원균은 대량 배양되어 살포지로 운송된다. 이때 세균의 활성과 효능이 유지되는 게 중요하다. 또한 생물학 폭탄의 폭발 충격과 분무될 때 기계적 마찰력을 견뎌내야 한다. 대량 감염을 위해서는 적당한 입자의 크기로 충분한 농도를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미생물의 독소는 호흡이나 상처, 오염된 식품 등을 통해 체내로 들어가서 세포 내부 물질을 담고 있는 세포질에 이르면 비로소 독성을 나타낸다. 유독 미생물은 체내 면역계의 방어능력을 훼손한다. 탄저균 항생제가 있더라도 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구실을 할 뿐 독소의 파괴작용까지 막을 수는 없다.

이렇듯 미생물이 생물테러 수단으로 쓰이는 이유는 특유의 생존능력에 있다. 미생물은 원시지구를 독차지했다. 만일 다세포 생물들이 대량 멸종의 희생물이 되면 미생물이 지구를 물려받을 것이다. 미생물은 지구 시스템을 ‘소유’하고 가장 확실히 ‘경영’하고 있다. 예컨대 김치·술·된장·햄·치즈 등의 먹을거리를 만들고, 당뇨병·에이즈·고혈압·전염병 등을 치료한다. 질소와 탄소 등 필수 원소들을 고정해 순화시키고 산소와 연천가스, 석유 등을 생산해내는 것도 미생물이다. 실제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산소를 체단백질에 통합시키고 노폐물을 메탄가스로 바꾸는 박테리아도 있다. 미생물 세계가 없다면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생물체가 무수히 많은 미생물의 대사활동에 의존해 살아가는 셈이다.

사진/ 생물무기로 쓰이는 세균들. 이들은 천연두, 탄저 보툴리누스, 콜레라 등을 일으킨다. (사이언스 올제)
지구상의 생명체는 미생물을 따라 배워 생존의 위기를 돌파하려고 한다. 흰개미 같은 곤충과 뿌리에서 질소를 고정시키는 콩과 식물은 메탄을 생산하는 대사능력을 지니고 있다. 미생물의 일상적 활동을 자신들의 전문기술로 흡수한 결과다. 인간의 유전자 재조합 기술도 미생물에게 로열티를 지불하는 게 마땅하다. 이미 태곳적부터 미생물은 유전자를 교환하고, 이용·조작하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꿈의 신세계를 예고하는 ‘나노기술’도 미생물 세계에서는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다. 박테리아는 이미 나노(10억분의 1m)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박테리아는 세포막의 생체모터에 달린 기다란 단백질 편모가 나사모양으로 회전하면서 그 추진력으로 목적지에 다가선다. 링이나 작은 베어링, 축차 등을 갖춘 ‘양자모터’로 분당 1만5천번가량 회전하면서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미생물만 따라한다면 인간도 얼마든지 분자세계를 넘나들 수 있다.

최근 미생물은 ‘환경 해결사’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산업시설로 인해 토양과 수질이 오염된 ‘브라운필드’(Brownfield)에서 독성물질을 분해해 무해화하는 정화일꾼 노릇을 한다. 석유 탄화수소를 정화하는 호기성(好氣性: 산소를 좋아하여 공기 속에서 잘 자라는 성질) 미생물에 의한 분해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이뤄졌다. DDT, 폴리염화비폐닐(PCBs), 염소함유 용매 등을 생물학적으로 정화하는 미생물도 널리 쓰이고 있다. 일부 박테리아는 암을 유발하는 폴리아로메틱 하이드로카본류를 대사과정을 통해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미 영국은 지난해부터 미화 2100만달러를 투입하는 국가 차원의 생물정화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핵폐기물을 섭취해 무해화하는 유전자 변형 미생물을 만들어냈다. 이 미생물은 현장 테스트를 거쳐 방사능을 가진 수은 화합물을 무해한 물질로 변화시키는 데 쓰일 예정이다. 만일 핵폐기물 정화에 미생물을 폭넓게 적용한다면 원자력 발전의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핵폐기물 시장 규모는 미국에서만 3천억달러로 추산된다.

생물정화 대중화… 온실가스도 해결

지구온난화도 미생물을 통해 극복할 가능성이 있다. 수중이나 토양에 존재하는 수많은 미생물의 생물학적 활동이 지표의 기본 화학적 성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메틸로시누스 트리코스포륨은 아주 특별한 재주가 있다. 유해한 메탄을 메탄올로 산화시키며 살아간다. 화학공장에서 나오는 독성물질을 분해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인간과 자연에 해로운 물질이 있는 곳에 미생물이 서식하도록 한다면 풀지 못할 지구의 문제가 없어 보인다.

만일 이 미생물이 없으면 지구를 보호하는 오존층은 고갈되고 말 것이다. 바다와 강, 육지 등지에서 서식하는 시네코코투스라는 미생물도 관심의 대상이다. 이 미생물은 발전소나 각종 산업체 설비에서 만들어지는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온실가스를 방지한다. 만일 생물 반응기에서 유전적으로 재조합된 시네코코투스를 대량 배양한다면 위기의 지구를 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구의 운명이 미생물에 달려 있는 셈이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