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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사냥꾼 기질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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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6-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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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열광적 관심을 보이는 이유… 사냥·전쟁의 상징물로 공동체 경험 되살려

사진/ 응원단의 복장은 원시부족들의 치장을 닮았다. (김종수 기자)
온 나라가 축구 열기에 휩싸인 지난 한달 동안 우리 주변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속출했다. 우리나라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전국에서 수백만의 인파가 거리로 몰려나와 응원을 벌이면서 도심을 축제의 한마당으로 만들었다. 더구나 축구와 같은 스포츠에 별반 관심이 없던 젊은 여성들이 길거리 응원단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스포츠에 그토록 열광적인 관심을 보일까.

일부 동물행동학자와 생물학자들은 인간의 동물적 특성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 한다. 특히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무리생활 습성이 주된 근거로 거론된다. 인류의 선조는 사자처럼 타고난 포식자가 아니었고, 날카로운 발톱이나 날쌘 다리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채집, 시체청소, 사냥 등 먹이가 될 만한 것은 닥치는 대로 모두 섭취해야 했다. 특히 큰 먹잇감을 얻기 위해서는 무리를 지어 집단사냥을 하며 살아왔고, 집단수렵이 초기 인류의 삶에 중심적인 특성을 부여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행동양식이 협동이나 언어와 같은 중요한 특성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스포츠에 녹아든 수렵적 요소들


<털없는 원숭이>라는 저서로 사회생물학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던 동물행동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오늘날 현대인들이 즐기는 많은 놀이와 운동이 과거 우리의 선조들이 했던 집단수렵을 상징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스포츠, 특히 구기(球技)는 계획수립, 협동, 탐색, 추적, 노획이라는 사냥적 요소를 다분히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인류의 조상들은 들소처럼 위험하고 큰 대상을 사냥하기 위해서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각자 역할을 나누어 맡고, 협동해서 사냥감을 탐색하고 추적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냥에 성공을 거두면 노획물을 메고 동굴로 돌아가 집단의 성원들과 함께 나누어 먹고 축제를 즐겼을 것이다.

인기 스포츠는 대개 팀을 이룬 집단경기이고 농구나 축구의 골대처럼 ‘상징적인 조준 대상’을 갖는다. 그리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협동을 통해 승리를 거둔 팀에게는 우승컵이라는 노획물이 주어진다. 물론 우승컵을 먹을 수는 없지만, 승리한 선수들은 그 컵에 샴페인을 따라 함께 마시기도 한다. 최근 우리들을 흥분시킨 축구는 이런 요소들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집단사냥인 셈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상징요소는 전쟁이다. 생물학자들은 먹이나 서식처, 또는 짝짓기 대상을 둘러싼 집단 사이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생존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유인원의 무리들 사이에서 관찰할 수 있듯이 두 무리가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는 일은 거의 드물다. 대개는 으르렁거리거나 힘과 세를 과시하는 기싸움을 벌이다가 어느 한쪽이 제풀에 물러서는 경우가 많다. 진검승부가 벌어지는 것은 이런 과시로 어느 한쪽도 물러서지 않을 때에 국한된다. 서로 물고 뜯는 싸움이 벌어지면 승자든 패자든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국가간 경쟁의 형태를 띠는 월드컵 축구는 국가간의 상징적인 전쟁, 또는 대리전의 성격을 띤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각국의 대표팀에 붙여지는 수사(修辭)는 아주리군단, 무적함대, 전차군단, 태극전사 등 거의 빠지지 않고 전쟁의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 과거 실제로 전쟁을 벌였던 당사국인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 국민은 공공연하게 양국 경기를 대리전으로 받아들여 과열 양상을 띠었다. 응원을 하는 관중들은 과거 원시부족들이 전쟁에 나갈 때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했던 보디 페인팅을 하고 깃발과 상징물로 무장하고 전장의 상징물인 경기장에서 목청을 높이며 대리전쟁을 치른다. 대개의 경우 상징은 상징으로 끝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외국에서 볼 수 있는 흥분한 훌리건들의 난동은 상징이 실재로 전환되는 지점에 해당한다.

잃어버린 공동체의 경험을 뛰어넘어

사진/ 구기 스포츠에는 생존을 위해 몸싸움을 벌이던 사냥의 흔적이 남아있다. (SYGMA)
그렇지만 최근 우리가 모처럼 경험한 소중한 길거리 응원을 이런 식으로만 해석한다면 큰 오산일 것이다. 그것은 생물학적 환원주의의 전형적인 설명방식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은 생물학적 요소를 포함하지만, 그것으로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으며 생물학적 요소는 수많은 요인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번 한·일 월드컵에서 나타난 국민의 역동적인 길거리 응원 참여는 숱한 사회문화적 설명 요인들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날로 개인화되는 현대 기술사회에서 공동체적 체험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월드컵 축구가 좋은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다. 사람들이 즐기는 것은 축구 자체라기보다는 그로 인해 열린 축제 마당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화 운동을 겪지 못해 공동체적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십대와 이십대들이 원자화된 자아의 좁은 밀실을 벗어나 거리에서 어깨를 걸 수 있었던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소박한 생각과 달리 월드컵이 날로 국가간, 인종간, 지역간 경쟁을 격화시키는 성격을 띠고 있고, 국제축구연맹(FIFA)의 권력화와 상업화를 통해 이러한 경쟁이 은근히 부추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월드컵이 순수한 축제마당이 되기에는 오늘날의 세계가 너무도 많은 갈등과 모순을 포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순수한 축제마당이 과거의 원한을 모두 끌어낸 대리전쟁이 될 수 있으며, 수백만 군중의 외침이 공격적 민족주의의 강화로 귀결되어 기존의 갈등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앞으로의 월드컵이 ‘평화’, ‘화해’, ‘환경’ 등처럼 세계가 함께 추구하는 공동의 지향점을 주제로 제시해서 모처럼의 공동체적 경험이 자국팀의 승리를 넘어 더욱 높은 가치 실현을 향한 협력의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

김동광/ 과학저술가·과학세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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