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장편 <몬스터> 펴낸 일본의 초일류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세계
일본의 만화잡지 <빅 코믹 오리지널>에서 연재되던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마지막회가 나온 것은 지난해 12월, 완결편인 18권이 나온 것은 2월이었다. 한국에서는 지난 6월20일 18권이 출간됐다. 한국에서는 <몬스터>의 완간이 그리 큰 소식이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꽤 중요한 문화적 현상이었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야와라> <마스터 키튼> <해피> 등의 히트작을 낸, 최고 인기작가의 하나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그리고 굳건한 휴머니즘을 담고 있는 수일한 인간 드라마를 그려낸다. 단지 기발한 상상력과 압도적인 필력, 현란한 사건을 뛰어넘어, 우라사와의 작품에는 머리와 가슴을 함께 울리는 ‘만화적 지성’이 있다. 이번에 완간된 <몬스터>는 우라사와가 “데뷔할 때부터 가슴에 품고 있었던”, 자신의 작품세계를 총괄하는 대작이다.
머리와 가슴을 울리는 ‘만화적 지성’
<몬스터>는 독일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던 뇌외과의 덴마가 머리에 총상을 입은 요한이란 소년을 수술하면서 시작된다. 덴마가 살려낸 요한은 그러나, 악마였다. 요한은 병원장을 살해하고 쌍둥이 여동생 안나와 함께 사라진다. 9년 뒤 독일 곳곳에서 중년부부 연속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용의자가 교통사고로 실려오고, 덴마가 수술을 맡아 회복시킨다. 깨어난 남자는 “몬스터가 올 거야”라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고, 며칠 뒤 병실에서 사라진다. 그를 쫓아간 덴마는 요한을 만난다. 덴마가 살려낸 요한이, 몬스터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몬스터>에 대한 일본 독자들의 반응은 ‘미스터리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초일류 스토리텔러’인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런데 묘하다. 요한이라는 살인마는, 자신의 손으로 살인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는 타인의 마음을 조작하여 살인을 저지르게 한다. 그것은 이미 인류가 수없이 해왔던 방식이다. 불안을 조장하고, 가공의 적을 설정하여 증오하게 만드는 것.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방식도 바로 그것이었다. 요한은 사람들 누구나에게 존재하는 ‘악’을 끌어낸다.
<몬스터>는 대작이다. 단지 스토리가 길게 진행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몬스터>에는 심오한 세계가 있다. 요한의 정체를 파고 들어가면 동독에서 진행되었던 ‘인간 개조’ 실험이 밝혀진다. 다시 파고들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진지하고 끈질긴 질문이 시작된다. 그 심오한 철학적 질문과 함께, 다양한 사람들의 세계가 펼쳐진다. 여러 사람들의 드라마가 동시에 진행되고, 동시다발적으로 사건이 벌어지며 중층적으로 사건들이 포개진다. 한 사람이 움직이면 연루된 전원의 정신상태나 정황이 함께 흘러간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단지 요한의 행적과, 그를 쫓는 한 남자의 치열한 싸움만을 그리지 않는다. <몬스터>는 덴마가 추적 과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전개한다. <몬스터>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남녀노소의 다성적인 드라마, 다르게 말하자면 ‘대하’ 만화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일본 내에서도 대작을 만들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로 꼽힌다. “대장편을 만들어내는 재능이 있고,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을 읽다 보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과 적절한 템포를 유지하고 끌어가는 센스에 찬탄하게 된다. 우라사와의 작품은, 일본 만화의 한 경지를 보여준다.
1960년에 태어난 우라사와 나오키는 일본 만화의 세례를 한껏 받고 자라난 세대다. 어린 시절에는 <아톰>의 데스카 오사무와 <사이보그 009>의 이시노모리 쇼타로를 만났고, <도카벤>과 <터치>로 대표되는 스포츠 만화와 <메종일각> 등 러브코미디의 전성시대를 거친 뒤 대학에 들어가서는 <아키라>의 오토모 가쓰히로가 이끈 새로운 물결을 맞이했다. 대학시절 내내 서클에서 만화를 그린 우라사와 나오키는 그러나, 졸업 뒤 평범하게 취직을 할 생각이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만화출판사 소학관도 그런 직장의 하나였다. 소학관에 면접을 갈 때, 우라사와 나오키는 자신이 그린 만화를 가져갔다. 혹시 취직에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으로. 그의 만화를 본 편집자는 공모를 제안했고, 82년 소학관 신인코믹대상 수상을 수상했다. 우라사와 나오키를 메이저 작가로 끌어올린 작품은 86년 발표한 <야와라>. 편집자와 이야기하다가 언뜻 떠오른 ‘여자 유도’의 아이디어가 바로 채택되어 연재에 들어갔고, <야와라>는 국민적 히트작이 되었다.
참혹한 인간의 세계에서 믿음 간직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세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우라사와 나오키를 국민작가로 만든 스포츠물. <야와라>에 이어 여자 테니스계를 무대로 한 <해피>도 아이돌 여자선수가 주인공이다. <야와라>와 <해피>는 독자가 좋아할 만한 인물과 내용을 가득 담은 대중적인 작품이지만, 우라사와의 철학은 변하지 않는다. <야와라>와 <해피>에서도 주변 인물에 대한 애정은 넘치고 넘친다. 주류의 정서인 여성 스포츠 선수의 꿈과 일상을 다룬 <야와라> <해피>와 함께, 우라사와 나오키는 선이 굵은 남성의 세계를 다룬 작품들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마스터 키튼>과 <몬스터>가 대표작이다.
가쓰시카 호쿠세이가 스토리를 쓴 <마스터 키튼>은 고고학자이며 보험조사관인 마스터 키튼의 모험을 다룬 만화다. 발굴된 단서를 분석하여 가설을 만들고, 다시 증거를 찾아 가설을 증명하는 고고학의 방법론과 지식 그리고 SAS 교관을 지내며 익힌 전투기술을 활용하여 마스터 키튼은 갖가지 범죄를 해결한다. 키튼은 탐욕으로 빚어진 범죄를 증오하지만, 어쩔 수 없이 범죄에 빠져든 인간들에게는 한없는 연민을 보낸다. <마스터 키튼>은 휴머니즘적인 시선으로, 인간과 사회 그리고 역사를 응시한다. <마스터 키튼>에서 키튼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접하는 이국적인 풍경과 풍물을 보는 일은 특히 즐겁다. 완벽주의자인 우라사와 나오키는 배경그림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사실적으로 그려놓았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은 언제나 안정된 퀄리티를 유지하며, 그 위에 탁월한 아이디어가 덧붙여진다.
<몬스터>로 향하는 길은, 우라사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었다. 우라사와는 <몬스터>가 “원래 나 자신의 세계”였다고 말한다. 섬세하고, 복잡한 매력을 가진 <몬스터>는 참혹한 인간의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비관적인 <다중인격탐정 사이코>나 <지뢰진>과는 다르다. 이를테면 우라사와는 강단 있는 모범생이다. 우라사와는 자기 자신을 “과거의 작품에게 헌사를 바치며, 과거의 유산을 조작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DJ”라고 평한다. 우라사와는 ‘일본 만화의 신’ 데스카 오사무처럼, 인간에 대한 희망의 시선을 절대로 거두지 않는다. 우라사와의 시대는, 데스카의 시대와 다르다. 이미 변혁의 꿈은 사라졌고, 세상은 더욱 절망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우라사와는 포기하지 않는다. <몬스터>는 지독한 절망에서 출발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라는 신념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려낸 소년. 그러나 소년은 세상에 오로지 ‘악’만을 퍼트린다. 현실을 본 덴마가 택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살려낸 소년을 죽이는 것뿐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도, 덴마는 차마 요한을 죽이지 못한다. 악의 근원이었던 프란츠 보나파르트도, 곧은 눈으로 하늘을,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일본에서는 우라사와 나오키를 초일류의 작가로 평가한다. 그것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하지만 약간의 반론도 있다. 평론가인 다나카 에이지는 “이야기는 재미있고, 그림도 숙련되어 있고, 테마는 장대하다. 그런데 일탈은 없다. 그런 점에서 완벽하지만, 어딘가 불완전한 느낌”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일본 만화의 스티븐 스필버그,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것이다. 상당히 적합한 표현이다. 가끔 우라사와의 ‘휴머니즘’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우라사와 자신은 “그래도 게릴라 정신은 계속 유지하고 싶다”고 말한다. 과거의 모든 것을 이어받으며, 휴머니즘에 기초한 자신만의 세계를 열어가는 우라사와 나오키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신작인 <20세기 소년>은 그런 단초를 비친다.
<20세기 소년>은 73년의 과거, 97년의 현재, 2014년의 미래를 지유자재로 넘나든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청년 켄지는 친구 동키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동키가 죽기 전에 보낸 편지에는 이상한 마크가 그려져 있다. ‘친구’라는 이상한 종교집단의 마크를 보고 기억을 떠올리던 켄지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우리는 친구”라는 표시로 만들었던 마크임을 알아낸다. ‘친구’는 세균병기와 로봇 등을 이용하여 세계의 종말을 준비한다. ‘본격과학모험만화’라고 타이틀을 붙인 <20세기 소년>은 어린 시절의 꿈이, 악몽으로 재현되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미스터리의 강도는 <몬스터>를 능가한다. 단서를 밝히면서도 근원을 알려주지 않고, 하나가 밝혀지면 새로운 수수께끼가 등장한다. <20세기 소년>을 보고 있으면,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롯과 연출의 테크닉이 절정에 달한 느낌을 준다.
그래도 인간에 대한 믿음 변치 않아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는 현실적이다. 현실의 모험을 그린 <몬스터>나 <마스터 키튼>은 당연하지만, 악몽의 판타지인 <20세기 소년> 역시 그렇다. ‘친구’란 집단은 옴진리교를 떠올리게 한다. 옴진리교는 만화적 상상력으로 젊은이들을 사로잡았고, 세계의 종말을 스스로 이루기 위해 준비했다. 만약 그들이 진짜로 ‘힘’을 지니고 있었고, 치밀하게 준비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세기말을 앞둔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그들이 의지할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친구’가 그들 모두를 구원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면. <20세기 소년>은 그 모든 것이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현실이란 것이, 대단히 취약한 기반 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몬스터>의 악당들이 숭상하는 히틀러도 ‘친구’와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독일을 장악했던 것이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현실의 악몽을 보여주면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우라사와 나오키를 초일류 작가로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자신이 밝힌 대로, 우라사와는 ‘게릴라 정신’ 또한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야와라> <마스터 키튼> <몬스터> <20세기 소년>으로 계속 발전하는 우라사와의 저력이다. 자족하는 작가는 퇴보하게 마련이다. 우라사와는 결코 멈추지 않고, 주인공이 아닌 주변 인물들의 드라마를 우리에게 계속 보여줄 것이다. 이 지독한 세상에서,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사진/ "절망에서 희망으로." 우사라와는 <몬스터>를 통해 자신의 세계로 나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