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달도 없는 날 시골의 밤하늘에는 쏟아져내릴 듯한 보석들의 잔치가 펼쳐진다. 시원한 여름밤에 시골집 뜰의 평상에 누워 그런 하늘을 한번 쳐다보자. 아이맥스(IMAX) 영화관은 시야의 최대 범위를 화면으로 채운다. 그러면 관객은 마치 영화 속에 있는 것처럼 느낀다. 전 시야가 영화 속의 장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광막한 우주는 더할 나위 없는 아이맥스 영화다. 따라서 이를 보노라면 그 안에 한없이 깊이 빠져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현대의 천문학에 따르면 웅대한 우주 공간도 극미의 점이라 여길 만하다. 빅뱅(big bang) 이론은 우주가 바로 그 미세한 점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그런 점을 전문용어로는 ‘특이점’이라고 부른다. 물질의 에너지가 무한대로 응집된 곳이어서 통상적인 과학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이점은 우주의 시초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우주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블랙홀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블랙홀의 중력은 엄청나게 강해서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블랙홀의 내부와 외부 공간은 단절되어 있다.
어느 정도의 물질이 어떤 공간에 밀집되어야 블랙홀이 생성될까? 계산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놀랍게도 이 식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도 하나의 블랙홀이다. 우리 우주의 직경은 대략 300억 광년으로 추산된다. 이 추산과 우주의 밀도를 토대로 계산하면 그런 결과가 나온다. 이 상황은 영화 <맨 인 블랙>에 나오는 고양이 방울을 연상케 한다. 그 방울은 보통의 방울이 아니며 은하수가 통째로 담겨 있다. 비유적으로는 우리 우주도 하나의 방울이란 메시지를 전해준다.
유사한 현상이 소립자 물리학에도 나온다. 물질의 기본 단위가 원자라는 것은 20세기 초의 생각이다. 이후 수많은 소립자가 발견돼 이런 생각은 수정됐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소립자 중에는 원자보다 무거운 것들도 많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앞으로 실험에 사용되는 에너지가 계속 높아지면 더욱 무거운 입자가 발견되리라고 예상된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결국 가장 궁극적인 소립자는 코스몬(cosmon·우주를 뜻하는 코스모스(cosmos)와 입자를 뜻하는 어미 ‘-on’을 결합한 단어다)이란 것이 아닐까”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주의 궁극적 기본 입자를 찾는 과정에서 오히려 우주 자체를 만난다는 뜻이다.
이런 주장은 “점이 곧 우주요, 우주가 곧 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 내용은 ‘공간’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시간’에 대해서도 유사한 얘기가 있다. ‘순간’의 순수한 우리말은 ‘눈 깜박할 새’이다. 그 시간은 대략 10분의 1초다. 그러나 이 짧은 순간도 분자가 한번 진동하는 시간에 비하면 거의 영겁에 가까운 세월이다. 분자의 1회 진동을 1초라고 하면, 실제의 1초는 우주의 나이와 비슷하다. 그러고 보면 무엇이 순간이고 무엇이 영원인가? 시공간에 대하여 말하면 ‘점이 곧 우주요, 순간이 곧 영원’이다.
믿거나 말거나 현대 과학은 갈수록 철학화되어 가고 있다. 예전에 철학에서 분화되어 나온 과학이 다시 원상으로 회귀하는 셈이다. 그러나 예전의 미분화와는 다르다. 좀더 고차원에서의 새로운 융화이다. 그런데 철학은 과학보다 더 보편적이다. 과학은 누구나 하지는 않겠지만 철학은 인간인 이상 피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라도 이제는 과학하는 마음이 더욱 보편화되었으면 한다.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p@sunchon.sunchon.ac.kr

일러스트레이션/ 차승미
믿거나 말거나 현대 과학은 갈수록 철학화되어 가고 있다. 예전에 철학에서 분화되어 나온 과학이 다시 원상으로 회귀하는 셈이다. 그러나 예전의 미분화와는 다르다. 좀더 고차원에서의 새로운 융화이다. 그런데 철학은 과학보다 더 보편적이다. 과학은 누구나 하지는 않겠지만 철학은 인간인 이상 피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라도 이제는 과학하는 마음이 더욱 보편화되었으면 한다.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p@sunchon.suncho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