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모 교수가 한국 미술계에 전하는 쓴소리 <미술본색>
지난해 6월말 대한민국 미술대전의 심사과정 부정으로 무려 25명의 미술인이 줄줄이 입건됐다. 혐의 내용에는 심사와 관련된 금품수수, 낙선작의 입선작 둔갑, 대필작품 입상, 미술협회 임원의 심사위원과 출품작가 알선 등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부정과 비리의 목록이 나열됐다. 그러나 미술계는 이 사건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제까지 미술대전을 포함한 각종 공모전의 운영 의혹에 대해 대부분의 미술인들이 확신에 가까운 심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의혹에 대한 물증을 제시했을 뿐이다.
한국 미술계에 만연한 부정과 비리는 어떤 미술가에게는 좌절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미술가에게는 기회로 작동한다. 한국 미술계의 병폐를 비판해온 미술평론가 윤범모 교수(경원대 미술대)는 ‘스타’를 꿈꾸는 젊은 작가들에게 조언한다. “그까짓 심사위원 자리도 사바사바하여 하나 차지할 수 있고, 또 심사위원과 결탁하여 상까지 탈 수 있다는데 무엇을 주저하는가. 먼저 줍는 자가 임자다. (…)무엇이든 밥그릇을 열심히 챙기고 화려한 경력사항을 축적하여, 부디 빵빵한 이력서를 만들어지어다.”
10가지 요령 터득하면 누구나 스타
한국 사회의 딜레마 총서와 한국 정치의 딜레마 총서를 출간해온 출판사 개마고원이 한국 문화의 딜레마 총서 1권으로 출간한 <미술본색>(개마고원 펴냄)에서 지은이 윤씨는 ‘스타가 되는 아주 쉬운 방법’ 10가지를 소개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공모전에서 수상해 ‘경력관리’를 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가 제안하는 ‘스타양성 훈요십조’의 제1조는 ‘역사의식 같은 것은 쓰레기통에 버려라’다. 남산공원에 서 있는 김구 동상과 윤봉길 동상은 일제시대 항일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 동상을 만든 사람은 누굴까? 일제시대 때 가장 적극적으로 친일에 가담한 작가 가운데 한명인 김경승이다. 도산공원의 안창호 동상도 그의 작품이다. 을사조약 뒤 치욕에 떨면서 자결한 민영환의 동상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친일작가 윤효중의 작품이다. 이뿐만 아니라 가장 적극적으로 친일에 가담했던 작가들 모두가 해방 이후 대학을 포함한 남한 미술계의 대표 지도자가 되어 권력을 누려왔다. “친일파에게도 아낌없이 기회를 주고 있으니 이 얼마나 축복받은 나라인가. 스타가 되려는 그대! 결코 좌절하지 마라. 기회의 땅은 우리 조국이다.” 눈치챘겠지만 지은이 윤씨는 10가지 병폐를 들어 한국 미술계를 역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무표정의 장식그림만이 살길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표정이 담겨 있지 않은 우리 미술에 대한 따끔한 일갈이다. 인도나 중국과 달리 숱한 한국 불상 가운데는 고행상이 없고, 화폭에 등장하는 여성은 대부분 “청순가련형”에 “창백함의 극치를 보이는” 인물들이다. 지은이는 “포커페이스(카드할 때 패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만드는 무표정한 얼굴) 미술, 이것이 우리의 찬란한 미술 전통”이라고 말한다. 미술관이 작가를 지원하지 않는 현실에서 작가는 당연히 그림을 사주는 고객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비현실적인 그림값과도 관련된다. 같은 작가에, 동일규격에, 내용이나 수준조차 같은 그림이라도 우리나라에서는 가격에 큰 차이가 난다. 옆으로 그렸는지 혹은 세워서 그렸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왜 그럴까? 세로그림은 아파트 거실용으로 자격 미달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비싸게 팔고 싶은 그대, 소품의 크기로 물감을 두텁게 발라 예쁘게 그릴지어도. 여백이 많은 그림은 팔리기가 아주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동서고금의 많은 작가들이 매혹됐던 여인 누드가 한국 작가들에게는 별 인기가 없다는 것도 특기할 만한 사항. 이 역시 거실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품 완성도와 관계없이 같은 부두 풍경이라도 배 한척보다는 여러 척이 등장하는 그림이, 물방울 그림 역시 물방울 개수가 많을수록 그림값이 비싸다는 사실은 차라리 코미디에 가깝다.
그 밖에 ‘무조건 대국(大國)의 유행을 따르라’, ‘패거리를 이뤄 인맥을 관리하라’, “전업작가보다는 대학교수 쪽을 택하라’는 친절한(?) 조언은 비단 미술계뿐 아니라 문화계 전반과 학계도 비껴갈 수 없는 문제이면서,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 한국 미술계(나아가 한국 문화계 전체)의 성공규칙”이기도 하다.
한국 미술이 정체성을 찾으려면…
1부에서 풍자적으로 우리 미술계의 현실을 비판한 지은이는 2부에서도 광주비엔날레, 민중미술운동, 남북미술교류 등의 다양한 주제들로 ‘우리 미술 정체성 찾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미술대학 교육의 낙후한 현실이다. 일반인들에게도 서울대파니 홍익대파니 해서 잘 알려진 미술계의 파벌주의는 단순히 대학에서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윤씨의 지적이다. “지극히 권위적이고 획일적인 학교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곧 바람직한 이념과 미학사상, 예술철학의 부재현상이 초래되었다.” 미대 입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평가의 기준인 석고상 데생의 경우 석고상 생산지의 그리스·로마나 유럽은 물론 우리에게 석고상을 전달해준 일본에서조차 한물 간 지 오래다. 이뿐 아니라 외국 미술교육에서는 학과간 통합운영이나 전공제도 완화가 일반적인 현상인데도 우리는 ‘동양화’, ‘서양화’라는 19세기식 전공분류를 고집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과연 새로운 예술의 싹이나 틀 수 있겠는가”라고 윤씨는 비판한다. 그가 지적하는 미술교육의 문제, 즉 교수 패거리주의나 도식적인 학과 분화, 그로 인한 학제간 연구 부재 등은 다른 분야의 대학교육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문제다.
윤씨는 세계화라는 화두로 지워질 수 없는 제3세계의 경계를 자각할 것을 제안한다. 그런 의미에서 80년대 뜨거웠던 민중미술은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그는 민중미술의 장례식을 치를 것이 아니라 “역설적인 의미에서 민중미술이란 말 자체의 폐기처분”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민중미술로부터 그냥 미술로 가는 초석을 깔아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미술계뿐 아니라 우리 문화계 전체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보내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미술본색>(윤범모 지음. 개마고원 펴냄)

사진/ 한국미술계는 친일파에게 아낌없는 기회를 제공했다. 민영환의 동상(왼쪽)을 제작한 윤효중은 젊은이를 전쟁터로 보내는 것을 찬양한 <천인침>(오른쪽)이라는 작품을 남긴 친일작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