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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불로불사, 그 허망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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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6-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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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일러스트레이션/ 차승미
컴퓨터의 발전에 따라 생활이 많이 편해졌다. 그러나 문제점도 따라서 늘고 있다. 컴퓨터란 말은 ‘계산하는 기계’란 뜻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 가장 중요한 기능은 정보의 저장과 유통이다. 기이하게도 두 기능은 상호보완적이면서 상호배척적이다. 우선 어느 하나만으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런데 그 중 저장은 비밀성이 강하고 유통은 개방성이 강하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비밀의 유지와 침해가 각축하게 된다. 그 결과로 개인의 사생활과 기업 및 공공기관의 비밀 누출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른바 ‘해킹과 보안의 문제’다.

해킹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해킹 대회도 열리고 있다. 보안 프로그램이 탑재된 컴퓨터에 여러 해커가 접속해 가장 먼저 해킹에 성공하는 사람이 우승하는 게임이다. 그런데 어느 우승자가 이런 말을 했다. “최첨단의 해킹기술과 보안기술이 맞붙을 경우 해킹기술이 승리할 확률이 훨씬 높다”고. 다시 말해 해킹기술이 항상 앞서간다는 뜻이다. 보안의 본질이 방어인 이상 공격보다 앞설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약은 백 가지요, 병은 만 가지’라는 속담이 있다. 의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어쩔 수 없는 병이 있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머지않아 모든 병이 정복되리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의학이 보안이라면 병은 해킹이다. 따라서 의학이 아무리 빨리 발전하더라도 병을 앞서갈 수 없다. 실제로 이런 사례는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것이 에이즈(AIDS)이다. 또 감기나 독감 바이러스는 변이 속도가 빠르기로 악명이 높다. 나아가 장래에는 인위적인 변이가 우려되기도 한다. 유전공학을 이용해 사람이 (고의로든 실수로든) 새로운 병을 창출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병은 인간의 작품이란 점에서 해킹 프로그램과 다를 바가 없다. 컴퓨터 바이러스와 생물체의 바이러스가 갈수록 더 닮아가는 형국이다.

해킹과 보안, 병과 약의 관계를 약간 다른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질문을 보자. 이 문제는 이른바 ‘무한 순환관계’로, 답이 없는 문제의 원조로 꼽힌다. 그러나 해킹과 병이 원인이고, 보안과 약은 결과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 문제의 답은 달걀이라고 해야 한다. 옥스퍼드대학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에서도 유사한 결론을 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생물은 유전자를 내포한 생존기계일 뿐이다. 이 생존기계의 유일한 목적은 유전자를 존속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유전자는 이기적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개체는 유한하되 유전자는 영원하다”는 명제가 성립한다. 결국 이런 관점에서도 달걀이 먼저다.

우리는 흔히 의학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를 불로불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위 내용들에 비추어보면 이것은 오해다. 이기적 유전자보다 더 이기적인 개체의 생각이다. 약국에서 병(甁)에 든 약을 주는 것을 보고 “병 주고 약 준다”라고 한다지만, 그러잖아도 병과 약은 필연적인 동반자다. 세상이 불로불사로 충만한다면 더 큰 문제들이 초래된다. 그리하여 또다시 생로병사로 돌아가고 만다. 요컨대 인생의 목표는 생로병사를 올바로 영위하는 것일 뿐, 불로불사를 달성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p@sunchon.sun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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