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여행을 떠나보렴
등록 : 2002-06-19 00:00 수정 :
애니메이션의 세계적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영화제로 먼저 다가왔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으로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이어 올해 전주영화제를 방문해 최고의 화제작이 됐다. 일본에서는 2천만명의 관객을 훌쩍 넘기면서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무엇보다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원령공주> 등 걸작들의 장점을 모두 끌어다 쓴 듯한 상상력이 압권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시야는 어느 순간 유럽에서 일본으로 모아진 듯하다. <붉은 돼지> <천공의 성 라퓨타> <미래소년 코난> 등의 작품은 캐릭터나 배경, 사건에서 유럽적 감성을 물씬 풍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일본적 전통과 자연의 세계로 빠져든다. 자연친화적 사상을 일관되게 유지하긴 했으나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에 이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본적’ 정서의 절정처럼 보인다. 일본 특유의 온천장을 배경으로 800만명의 귀신들이 일본 전통의 복장을 하고 휴식을 취하러 오는 장면들이 아주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행방불명으로 번역된 원제의 ‘가미가쿠시’는 아이들이 귀신에 홀려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이 작품에서는 소녀 치히로뿐 아니라 아빠와 엄마가 함께 이상한 세계에 빠져든다. 귀신에 홀리는 건 치히로가 아니라 부모다. 식탐을 보이던 아빠와 엄마가 돼지로 변하고, 치히로는 부모를 구하기 위해 무서운 마녀 유바바에게 간청해 (귀)신들이 쉬어가는 온천장의 종업원이 된다.
도무지 다음 장면을 예측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판타지 여행이 끝없이 펼쳐진다. 특히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기상천외한 캐릭터들이다. <이웃집 토토로>에 나온 귀여운 검댕이들이 더욱 깜찍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고양이 버스나 토토로를 연상시키는 캐릭터들이 변형된 형태로 출연한다. 또 팔이 여섯개인 가마 할아범이나 몸보다 커다란 머리를 갖고 있는 마녀 유바바도 흉측하기보다는 정겹다.
이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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