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밀레니엄 에세이 콘테스트’에서 선정된 10편의 흥미로운 중수필들
<시간으로부터의 해방>은 ‘시간’이라는 추상 개념을 둘러싼 에세이 모음집이다. 이 에세이집의 유래는 97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괴테의 도시 바이마르시는 99년 유럽의 문화수도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97년 ‘미래로부터 과거의 해방, 과거로부터 미래의 해방’이라는 추상적인 주제를 내건 에세이 콘테스트를 열었다. ‘바이마르 1999위원회’와 유럽의 문학잡지 ‘레터 인터내셔널’과 함께 개최한 이 ‘국제 밀레니엄 에세이 콘테스트’에는 세계 123개국 2480명의 학자와 작가들이 응모했다. 7개 언어권의 작품을 번역해야 했기 때문에 심사는 1년이 걸렸다. 심사결과 최우수상은 러시아 여대생 이베타 게라심추쿠(21)의 ‘바람의 사전’에 돌아갔다.
<시간으로부터의 해방>은 이 에세이 콘테스트의 수상작 10위까지를 묶은 모처럼 만나는 중수필집이다.
최우수상 수상작인 ‘바람의 사전’은 사전 형식으로 쓴 독특한 에세이다. 글쓴이는 바람 또는 시간과 연관이 있는 모두 62개의 항목과 그에 대한 풀이글을 알파벳 순서로 보여주면서 이를 통해 ‘과거중심주의’와 ‘미래중심주의’라는 시간에 관한 두개의 서로 다른 시각을 드러낸다. 그는 과거중심주의자들을 ‘흐로니스트’로, 미래중심주의자들을 ‘아네모필’이라고 부른다. 흐로니스트는 “과거를 미래로부터 해방시키려는 모든 사람들”이다. 이들은 미래를 불확실한 것으로 보고, 이런 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거를 연구한다. 반면에 “바람을 사랑한다”는 뜻의 그리스어인 아네모필은 “과거로부터 미래를 해방시키려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 아네모필은 “변화가 더 좋은 방향으로의 발전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모든 형태의 변화를 지지한다”. 스무살 약관의 글쓴이는 사전이라는 형식을 통해 서술의 객관성을 확보하면서 시간에 관한 인간의 두 경향을 비판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8위 수상작인 미하일 엡스타인의 ‘시간의 살인’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세 시간이 서로를 어떻게 방해하는지를 가장 명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작품이다. ‘템포사이드’(tempocide)는 그의 신조어이다(옮긴이는 이를 ‘시간의 살인’이라 옮겼는데, ‘시간살해’가 더 적절할 것이다). 템포사이드란 “과거·현재·미래라는 세 가지 범주의 시간 가운데 하나가 절대화됨으로써 다른 두 가지 개념에 절대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가령 전통으로의 복귀를 외치는 수구주의자들은 과거의 절대화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살해한다. 미래의 절대화 또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유토피아적 미래를 최종 목표로 설정한 뒤 현재를 오로지 미래를 위한 준비단계로 평가절하하는 미래주의자들은 현실을 재앙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스탈린주의나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은 대표적인 미래의 절대화라고 할 수 있다.
글쓴이는 현재의 절대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그는 영원한 현재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포스트모더니즘이야말로 “유럽 문명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가장 세련된 형태의 템포사이드”라고 본다.
글쓴이는 “미래가 현재 속에서 평화롭게 성장하고, 현재는 미래 속으로 자연스럽게 침투해 들어가는” 20세기 서유럽사회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미래와 현재의 상호침투”의 사례로 “보험”과 “크레디트”를 든 것은 갑자기 에세이의 격조를 공익광고 카피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감이 없지 않다. 이 밖에도 다종교·다민족 국가인 유고연방의 비극을 다세대가 동거하는 집에 빗댄 세르비아의 언론인 벨리미르 쿠르구스 카지미르의 ‘집’, 과거에 대한 그리운 기억인 “향수”가 “사회를 재편하려는 계획이 될 때 위험해질 수 있다”며 “향수를 악용한 선동”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제임스 재스퍼의 ‘향수’ 등의 에세이도 흥미롭다. ●시간으로부터의 해방●
이베타 게라심추쿠 등 지음·류필하 등 옮김
자인(02-323-8480) 펴냄, 1만8천원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

글쓴이는 “미래가 현재 속에서 평화롭게 성장하고, 현재는 미래 속으로 자연스럽게 침투해 들어가는” 20세기 서유럽사회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미래와 현재의 상호침투”의 사례로 “보험”과 “크레디트”를 든 것은 갑자기 에세이의 격조를 공익광고 카피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감이 없지 않다. 이 밖에도 다종교·다민족 국가인 유고연방의 비극을 다세대가 동거하는 집에 빗댄 세르비아의 언론인 벨리미르 쿠르구스 카지미르의 ‘집’, 과거에 대한 그리운 기억인 “향수”가 “사회를 재편하려는 계획이 될 때 위험해질 수 있다”며 “향수를 악용한 선동”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제임스 재스퍼의 ‘향수’ 등의 에세이도 흥미롭다. ●시간으로부터의 해방●
이베타 게라심추쿠 등 지음·류필하 등 옮김
자인(02-323-8480) 펴냄, 1만8천원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