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네거리를 미술관처럼 꾸민 거리조각전… 찌그러지고 뽑히면서 대중과 소통하다
광화문빌딩 앞에서 작품을 설치할 때였다고 한다. 지나가던 경찰이 거리에 ‘장애물’을 설치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철거를 종용하자, 큐레이터가 설명했다. 관할 구청과 경찰서에서 허가를 받았고, 이건 장애물이 아니라 미술품이라고. 그러자 경찰이 대꾸했다.
“당신들은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우리에게는 위험요소로 보인다. 행인이 걸려 넘어지는 등 다칠 수도 있는 것 아니냐.”
골치아픈 관리대상?
거리조각전 ‘안녕하세요!’(6월30일까지 서울 흥국생명빌딩, 금호빌딩, 광화문빌딩, 교보빌딩 앞)의 운명은 출발부터 험난했다. 안전한 화랑을 뛰쳐나와 보통사람들 곁으로 다가가려는 미술품을 ‘위험스런 관리대상’으로 여기는 건 건물주들도 마찬가지였다. 김연주 큐레이터는 “건물 앞에 작품을 설치하고 전시하겠다고 요청했을 때, 첫 반응은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관리해야 할 물건 하나가 늘어나는 것으로 받아들이더라”고 했다. 설득에 한달 정도가 걸렸고, 빌딩 관계자는 건물주가 치우라는 말을 꺼내면 곧바로 철거하는 걸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나마 한곳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애초 계획은 좀더 방대했다. 스무명에 가까운 작가들과 함께 광화문 거리 전체를 일종의 미술관처럼 꾸미려고 했다. 하지만 한 블록이나마 거리를 통째로 쓰기 위해 관계당국의 허가를 받아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8명의 작가로 광화문 네거리의 일부에 작품을 전시하는 것으로 기획을 축소했다. 이 전시를 포함해 공공미술 전시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아트컨설팅서울은 월드컵 관련 행사라고 하니까 그나마 가능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미술관을 벗어난 만큼 전시 주제가 사람들의 일상에 다가서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지루한 도시공간에서 살아가는 샐러리맨들의 하루, 샐러리맨들의 삶을 표현하거나 더 나은 삶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가장 많은 공감을 얻고 있는 작품이 김석씨의 <어느 K씨의 일생>이다. 커다란 황금알을 들고 힘겨워하는 사람의 형상은 끝없는 노동에도 불구하고 쉽게 이뤄낼 수 없는 부와 욕망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그렇다고 황금알을 내던질 수도 없는 운명이다. <황금알과 의자>에서 다시 한번 황금알이 등장한다. 이번에는 좀더 은유적이다. 황금알이 뜻하는 바는 같지만 사람 대신 뼈대만 남은 의자가 버티고 있다. 앙상한 뼈대는 부와 권력을 향한 욕망이 허구였다는 걸 암시한다. 정국택씨의 <비지니스맨>이나 <무한경쟁>은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월급쟁이의 초상이 율동감 있게 직설화법으로 묘사돼 있다.
김준씨의 <하늘>은 거리의 이정표처럼 걸려 있다. 하늘이라는 글자와 하늘을 가리키는 화살표는 기묘한 느낌을 준다. 푸른 하늘이 그곳에 늘 존재해왔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지만 그곳으로 갈 수는 없다. 이정표의 이런 이중성은 바쁜 일과 속에서 가끔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명상에 빠지는 여유의 순간을 준다. 흥국생명빌딩은 전시가 끝나도 이 작품을 계속 설치해둘 계획이다.
“그동안 너무 우리끼리만 놀았다”
영상물도 있다. 단채널 비디오로 제작된 전수현씨의 <공화국2 ‘나는 부품’>은 뮤직비디오의 형식을 빌려왔다. 제목이 가리키듯, 공장 생산라인의 일개 부품에 불과한 노동자의 처지를 재미있게 형상화해 행인의 눈길을 끌어들인다.
이번 전시의 중요한 목적은 ‘우아한’ 미술과 보통사람들과의 소통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파손’이라는 역설적인 방식으로 이를 성공시켜줬다. ‘HOPE’(희망)란 글자를 직사각형의 마루에 새겨놓은 이대일씨의 <마루>는 낙서와 짓밟힘으로 뭉개졌고, 거대한 나팔 형상으로 소리를 왜곡해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한 문병두씨의 <양치기 소녀의 불안>은 누군가 발로 차 심하게 찌그러졌으며, 사람의 무릎을 석고로 뜬 뒤 다시 브론즈로 제작해 보도블록 한편에 ‘심어놓은’ 김일용씨의 <자연연상>은 누군가 뽑아놓기까지 했다.
“현대미술이 설치미술을 통해 어려운 이미지를 자꾸 강요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도시민의 소외감이란 주제로 그 주체인 소시민들과 자연스레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이 좋았다. 하지만 시민들은 생소하다 보니까 작품을 만져보고 굴려보는 식으로 반응했다. <황금알을 낳는 의자>는 완전히 망가졌다. 화랑에서와 달리 파손의 위험이 크다는 걸 실감했고, 어째서 작품이 그냥 하나의 물체로 취급당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김석씨의 느낌은 속상함이나 분노가 아니다. 일종의 자각과 반성이다. 기획자도 마찬가지다. 김연주 큐레이터는 “미술계가 그동안 화랑이나 미술관 같은 닫혀진 공간 안에서 우리끼리만 놀았다는 반성을 절실하게 하게 됐다”고 한다.
미술이 거리로 나오기 위해서는 작가와 기획자와 감상하는 사람의 3각 시선이 적절한 지점에서 만나야 한다. 현재 그 지점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가늠케 하는 전시가 또 있다. 서울 지하철1호선 시청역에 마련된 ‘아시아로 흐르는 32개의 강’(6월30일까지)은 지하철공사의 의뢰로 이뤄진 전시다. 지하 통로의 기둥 52개와 그 주변 바닥 및 천장에 월드컵과, 월드컵 본선 진출 32개국에 대한 이미지와 정보를 미술적으로 표현한다는 취지다. 작업이 진행되면서 지하철공사 쪽은 작가의 개성이 너무 드러나는 걸 부담스러워했고, 작가 쪽에서는 각 나라에 대한 표현 수위를 어떻게 맞출 것이냐에 고심했다. 미술관에서 강하게 드러나곤 하는 반미 표현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전시 구역은 작가의 자의식이 담긴 작품이라기보다 깔끔하고 산뜻하게 정리된 이미지 정보의 공간으로 마무리됐다. 기둥에 그려진 아르헨티나 지도에서 포클랜드 섬이 자기네 땅이라는 게 잘 나타나지 않았다는 영국대사관의 항의를 빼놓고는 큰 탈이 없었다.
미술의 대중화를 위한 하나의 대안
화랑을 뛰쳐나온 미술은 대안의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작가 문병두씨는 그렇다고 단언한다. “2년 전 열렸던 간판미술전을 포함해 거리전시를 서너번 해봤는데, 매번 일상 공간에서 관객과 직접 소통한다는 것이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내용이 잘 전달돼야 하고, 그 형태가 소통 가능하고 단순명료해야 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니다. 그러나 미술이 어떤 권위를 가지고 제한된 몇몇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비판을 수용하고, 미술이 대중의 관심을 얻어내는 예술언어가 되기 위해서 이런 방식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거리로 뛰쳐나온 대안미술의 움직임은 아직 미미하다. 돈 안 되는 거리전시를 지속할 의지를 가진 곳은 극히 적다. ‘안녕하세요!’ 전시에 협찬 없이 2천만원의 비용을 스스로 부담한 아트컨설팅서울은 10여개의 기획사와 수십명의 작가들이 경쟁적으로 거리전시를 벌이면서 미술의 사회적 기능을 높여나가는 순간을 꿈꾸고 있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거리조각전 ‘안녕하세요!’(6월30일까지 서울 흥국생명빌딩, 금호빌딩, 광화문빌딩, 교보빌딩 앞)의 운명은 출발부터 험난했다. 안전한 화랑을 뛰쳐나와 보통사람들 곁으로 다가가려는 미술품을 ‘위험스런 관리대상’으로 여기는 건 건물주들도 마찬가지였다. 김연주 큐레이터는 “건물 앞에 작품을 설치하고 전시하겠다고 요청했을 때, 첫 반응은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관리해야 할 물건 하나가 늘어나는 것으로 받아들이더라”고 했다. 설득에 한달 정도가 걸렸고, 빌딩 관계자는 건물주가 치우라는 말을 꺼내면 곧바로 철거하는 걸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나마 한곳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애초 계획은 좀더 방대했다. 스무명에 가까운 작가들과 함께 광화문 거리 전체를 일종의 미술관처럼 꾸미려고 했다. 하지만 한 블록이나마 거리를 통째로 쓰기 위해 관계당국의 허가를 받아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8명의 작가로 광화문 네거리의 일부에 작품을 전시하는 것으로 기획을 축소했다. 이 전시를 포함해 공공미술 전시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아트컨설팅서울은 월드컵 관련 행사라고 하니까 그나마 가능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