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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미터법과 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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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6-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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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일러스트레이션/ 김영선
최근 미국의 화성 탐사선 ‘오디세이’가 화성에서 엄청난 양의 얼음 저수지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것이 다 녹으면 화성 표면을 500m 깊이로 덮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화성에 생명체가 있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또다시 가열될 전망이다. 태양계의 9개 행성 가운데 지구와 가장 닮은 것은 금성과 화성이다. 특히 금성은 지구의 쌍둥이별이라고 할 정도로 크기와 밀도가 비슷하다. 다만 표면 환경이 너무 혹독하여 생명은 있을 수 없다. 화성의 경우 아주 오래 전에는 지구보다 더 생명활동에 유리한 환경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구상의 생명이 화성에서 전래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대두된다. 이 견해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아주 오랜 옛날 어떤 소행성이 화성과 충돌하여 그 파편이 태양계에 널리 퍼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중 일부가 당시의 화성 생명체를 지구에 옮겼다고 한다. 실제로 그들은 남극 대륙의 빙산에서 화성 운석을 발견했다. 나아가 얼마 전에는 그 운석 내에서 생명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하여 큰 화제가 됐다.

이번 발견은 미국이 근래 두 차례의 실패 끝에 얻어낸 것이라서 더욱 높이 평가된다. 1999년 9월에는 화성 기후 탐사선이 화성으로 가던 중 실종되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화성 극지 탐사선이 착륙 도중 대기와의 마찰열을 이기지 못하고 불타버렸다. 그런데 첫 번째의 사고는 어이없게도 그 원인이 컴퓨터 프로그램 내의 ‘미터법↔파운드법’ 단위 환산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찍이 중국의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한 뒤 곧 도량형도 통일했다. 그 정도로 단위의 통일은 중요하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의 최강대국인 미국은 국제적 표준인 ‘미터법’을 일상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자초했다. 미국도 공식적으로는 주요 선진국 중에서 마지막으로 1975년에야 비로소 미터법을 채용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일상적인 활용은 미흡하다.

미터법은 18세기 말 프랑스가 주도해 제정했다. 그러나 사이가 좋지 않은 이웃 섬나라 영국은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국의 식민지인 미국도 이를 채용하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미터법은 이후 계속 발전하여 현재는 국제적으로 ‘SI 단위체계’라고 부른다(SI는 프랑스어의 ‘Le Systeme International d’Units’에서 따왔다. 영어로는 The International System of Units로 쓴다).

2002년 한·일 공동월드컵이 열리고 있다. 한국과 일본, 영국과 프랑스뿐만 아니라 미국과 쿠바, 중국과 대만, 인도와 스리랑카도 대륙에 있는 나라와 그 이웃의 섬나라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 한국과 일본처럼 사이가 좋지 않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모두 섬나라이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번 월드컵이 한·일간의 관계에 크게 기여하면서 끝난다면, 장래 이 나라들도 한번씩 공동 개최해보는 것이 어떨까? 월드컵이 아니라 올림픽을 공동 개최할 수도 있다. 오늘날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과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캐나다의 사이는 타의 모범이라 할 정도로 원만하다. 조상의 구원(舊怨)이 후손에게 그대로 전해지라는 법은 없음을 잘 보여준다. 21세기에 처음 열리는 이번 월드컵이 이들 모두에게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회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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