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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7년 그렸으니 ‘노 땡큐!’ 이제 새 그리러 가요

2015년부터 2주마다 일러스트… 비결은 “공감되는 부분 강조해 그렸다”앞으론 새를 사랑하는 열혈 ‘민원인’으로 살면서 5년 프로젝트 몰두할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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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2-12-13 21:35 수정 : 2022-12-1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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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어머, 이번에도 너무 잘 그렸다.” 김소희 당시 <한겨레21> 기자(현재 ‘정치의 품격’ 필자)는 매번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다. ‘오마이섹스’ 칼럼(2005~2006년)에 곁들이는 일러스트레이션이 도착하고 나면. 성관계로 드러나는 성격이나, 침대에서 하는 대화나 글을 압축적으로 드러내주는 그림은 솔직한 칼럼을 한 뼘 더 기품 있게 만들었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이우만씨. 2004년 <한겨레21> 지면에 등장한 뒤, 2015년(제1065호)부터는 2주마다 ‘노 땡큐!’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이 작가가 제1441호(2022년 12월12일치) ‘노 땡큐!’를 마지막 그림으로 전달했다. 글을 쓰는 필자의 바뀜과 연재의 시작과 종료는 공지하는 관행에 비해, 그동안 일러스트의 변화는 그냥 넘어가곤 했다. 이번에는 이 사실을 널리 알리러, 2022년 12월5일 이우만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노 땡큐!’만 8년을 그려왔다. 글을 받으면 어떻게 구상하나.

글을 읽고 또 읽는다. 대부분은 놓치고 있던 부분들, 이런 일이 있었구나, 내가 또 몰랐네, 이런 거를 많이 생각하면서 글을 읽는다.

작업에 얼마나 걸리는 편인가.

그림은 후딱 그리는 편이지만 어떤 그림을 그릴지 정리하는 데 오래 걸린다. 여러 작업을 한꺼번에 못해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주는 원고를 받고 꼬박 그것에만 매달린다. 원고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는 그림을 그리기가 힘들다.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게 보조 수단이긴 하지만, 일러스트레이터만의 생각까지 표현하는 책임이 있다. 수동적으로 그에 맞춰 그리기보다는 공감되는 부분을 강조해 그린다. 특히 사회적으로 큰 참사는 글을 형상화하는 데 부담스럽다.

일러스트를 좋아하는 분이 많았다.

옛날부터 스타일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게 고민이었다. 나중에는 포기했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작가로서 뭔가 빛을 보지 못하겠다, 이런 생각까지 했다.

이우만의 책들.

스타일이 정해지지 않은 것은 일러스트레이터에게는 장점이었다. 때에 따라 수채화-파스텔-오일파스텔 톤이 달라지고, 인물의 표정으로, 기하학무늬로, 추상적 선으로 주제를 전달했다. 이우만 작가는 무지개색에 ‘혐오보다 사랑’을 새긴 그림(2015년 제1069호), ‘어디선가 ‘말’을 고르고 있을 대통령에게’(제1134호),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제1085호)를 대표작으로 꼽았다. “아무래도 제가 보기에 그럴듯하게 예쁘게 떨어져 나왔던 일러스트가 기억에 남죠.” 제1134호 작품은 한 방송의 배경 화면으로 등장하기도 했고, 에스피씨(SPC) 불매운동에서는 그의 포켓몬 그림(제1409호 ‘포켓몬 빵이여, 안녕’)이 다시 호출됐다.

2016년 김영란법 이후 사보가 거의 없어지면서 <한겨레21>에만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왔다. 그 외의 시간에, 아니 이우만 작가의 본업은 새의 세밀화 작업이다.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2010년), <솔부엉이 아저씨가 들려주는 뒷산의 새 이야기>(2014년), <새들의 밥상>(2019년)을 펴낸 새 전문가다. “사실 새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가 이런 일러스트를 작업하는지 모르죠.”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릴 때 이해할 때까지 읽듯이, 새 그림을 그릴 때도 그림을 그리는 작업보다 준비 작업이 길다. 공통점은 더 있다. “생태 일러스트 쪽으로 오면서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작업이 됐다. 생태 일러스트 역시 그들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그리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그림으로 옮기는 것을 이해하고 소화해서 보여준다. 두 가지 모두 내가 해석해 좀더 쉽게 풀어내준다는 면에서 비슷하다.” 그가 ‘노 땡큐!’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그만둔 것도 새 세밀화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2주에 하루씩 흐름이 끊기는 대신, 5년간 이어지는 진득한 프로젝트다.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의 삽화 작업을 하면서 자연에 사는 것들의 이름에 눈떴다. 그는 <창릉천…>에서 그 사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동안 풀, 나무, 곤충, 산짐승, 새라고 부르다 애기똥풀, 조팝나무, 광대노린재, 삵, 황조롱이라고 이름을 불러주니 이상하게 녀석들과 더 친해진 느낌이 들었어요.” <창릉천…>처럼 그의 새 그림책의 특징은 주변에서 소재를 찾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실은 서울 강서구의 봉제산 입구에 있다. “집값이 싸기도 하”지만 산새를 관찰하기 위해서다. 작업실에는 꾀꼬리, 동박새 등의 깃털이 벽과 찬장 위에 있고 새소리 시계가 있다. 창밖으로는 산이 다가와 있다.

진중한 작가는 새 이야기가 나오면 말이 많아진다. 스스로를 “보수적”이라 말하는 그는 열혈 ‘민원인’이다. “작살나무가 새들이 되게 좋아하는 나무거든요. 열매만 맺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날 싹 베어버린 겁니다. 그런 나무를 새들이 먹기도 하고 나무에 숨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베면서 한쪽에 묘목을 갖다놓고 심고 있어요. 또 개쉬땅나무라고 수형이 벌어지는 나무를 길가에 심어놓고, 자라면서 길가에 삐져나오는 걸 베고 있어요. 왜 그렇게 세금을 낭비하냐, 그런 민원을 넣지요.”

인가의 나무는 새들이 산에서 내려와 머물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징검다리가 된다. 그렇게 한국동박새를 만났다. “모두 다 보는 한국동박새를 못 봤어요. 나중에는 조바심이 나더라고요. 꼭 볼 수 있다는 섬에 가서 2박3일을 있었지만 못 보고, 인연이 없나보다 했죠. 어느 날 문밖 감나무에서 새소리가 들려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한국동박새의 특징적인 적갈색 무늬를 발견했어요. 감나무를 먹으러 내려온 거였죠.” 그 감나무는 옆집 리모델링 작업을 하면서 베어지고 말았다.

그는 봉제산에서 104종의 새를 찾았는데 다들 “그렇게 많냐”고 놀란다. 찾지 않아서다. “딱따구리가 산책로 바로 옆에서 집을 짓고 있기에, 사람들이 발견하면 사진을 찍고 방해할 것이 걱정돼 한참 서 있기도 했죠. 30~40분 동안 그 잘 보이는 걸 알아채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는 산에서 새를 알아채는 비법은 ‘멈추는 것’이라고 한다. “걸을 때 몸에서 나는 소리가 의외로 큽니다. 가만히 멈춰야 새소리가 들립니다.”

글·사진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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