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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젠 힙합에 중독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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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6-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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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현진영이 털어놓는 마약 탈출기… 구슬땀 흘리며 재기 공연에 매달려

사진/ 반복되는 마약투여로 십년 동안 고초를 겪은 현진영씨는 정부의 마약정책이 '잡아넣기'에서 '재활 프로그램'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정용 기자)
양치기 소년의 불행은 존재하지만 사라진다는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린 소년은 아무리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을 걸어다녀도 유령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기약 없는 유령의 삶은 비난과 저주보다 가혹한 형벌일 수 있다. 8년에 걸쳐 마약혐의로 네번이나 구속된 음악인 현진영(31)씨가 놓인 상황도 비슷하다. 마약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3개월 동안 정신병동 안에 스스로를 묶어두는 고통을 감내했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글쎄…”나 “과연…”이다.

6월15, 16일 본격적인 활동 재개를 알리는 공연 포스터에는 등돌린 사람들 앞에서 주춤거릴 수밖에 없는 그의 모습이 드러난다. 실루엣 속의 얼굴은 선명하지 않고, 현진영이라는 이름도 아랫부분에 작게 들어가 있을 뿐이다. 지워진 존재감을 살리는 건 비난과 욕설에서 빠져나오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8년 동안의 지옥같았던 나날들


공연을 앞두고 지난해 새로 구성한 와와팀과 연습에 한창인 현진영씨는 지난 1월18일 병원으로 들어가던 때의 거구의 모습에서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75일 동안 25kg을 뺐어요. 다이어트에 대한 현실적인 필요도 있었지만 내 의지를 시험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지금도 10kg 정도 더 빼야 하는데 병원 나와서 사회활동을 시작하니까 어렵네요.”

그가 병원에 들어간 날은 네 번째 정규앨범이 나오는 날이었다. 연예인들이 줄줄이 마약투여 혐의로 구속되던 때이기도 했다. 그래서 연예정보 프로그램이 떠들썩하게 보도한 병원행이 쇼가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우연찮게 모든 게 맞아떨어졌어요. 원래 음반은 가을쯤 나올 예정이었어요. 한곡 정도 띄워놓고 병원에 들어가려고 한참 전에 예약한 날짜였거든요. 그런데 <용쟁호투>(수록곡)의 샘플링이 저작권 문제에 걸리면서 녹음이 끝난 곡을 처음부터 다시 만드느라 늦어졌어요. 저도 아쉬웠죠.”

98년 마약을 끊으면서 손떨림 등 금단현상의 극복은 오히려 쉬운 일이었다. 우울증과 불안함, 무력감 등 정신적 후유증은 4년 동안 전혀 떨쳐지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감행한 4집 작업은 그야말로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었다. “정신병원이라는 게 꺼려졌지만” 가족과 여자친구, 소속사의 대표까지 권하는 병원행을 미룰 수는 없었다. 심각한 우울증에서 빠져나오고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에 분주해진 요즘 그는 길을 걷다가도(운동을 위해 서울 포이동 작업실에서 영화를 보러 동대문까지 걸어갈 정도로 그는 늘 걷는다) 행복하다는 생각에 몸을 떤다고 한다. “곡 작업을 주로 집에서 밤새우고 하거든요. 밤마다 뚱땅거리는 소리가 나니까 위층 집주인이 참을 수 없었나 봐요. 신고해서 새벽에 파출소에 연행됐어요. 처음에는 내 집에서 내 음악하는 데 뭐가 문제냐 대들다가 ‘즉심 넘기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싹싹 빌어서 가까스로 풀려났어요. 파출소 나오면서 너무 행복했던 거 아세요? 내가 마약하는 사람이 아니라 음악하는 사람이구나, 내가 살아 있구나 이런 느낌이었지요.”

그러나 마약의 그림자가 그에게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심심하면 한번 (주삿바늘) 찔러나 보자 식으로 불러내” 도핑테스트를 받아야 하는 처지기 때문이다. 강도나 폭행을 한 범죄자보다 더 굴욕적인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게 우리나라 마약사범들의 처지다.

‘민간인’으로 돌아온 지 4년 된 지금까지 멸시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마약투여 연예인들이 인격적 참수형을 받을 무렵 일군의 지식인들 중심으로 제기된 ‘마약을 허하라’는 논쟁을 현씨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입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거친 표현까지 쓰며 비판한다. “저는 마약중독자의 교과서 같은 사람이에요. 대마초 정도는 허락해도 된다고들 이야기하지요. 그런 나라도 있으니까. 제 경험으로는 마약이라는 게 대마초 하면 히로뽕 하게 되고 코카인, 헤로인으로 물흐르듯 넘어가는 구조 안에서 유통돼요.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는 말이죠.” 그도 처음에는 “대마초 정도는 뭐 어때”라고 생각했다. 마약규제를 완화하라는 사람들의 논리와도 비슷한 “도둑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내 돈 주고 내 몸 망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야”라는 생각도 했다. “지식인이랍시고 그런 이야기 떠드는 사람들, 자기가 빠져본 적 없고 고통받지 않아봐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예요.” 분노에 가까운 그의 말이 단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사법기관이나 경찰에 결백함을 내보이기 위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마약 투약자에겐 재활 프로그램을

사진/ 지난 5월 16일 한국마약퇴치 운동본부의 송천쉼터 개소식에 초대받은 현진영씨가 이사장 김명섭 민주당 의원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마약정책에는 그도 비판의 수위를 높인다. “지금 통계로 잡히는 마약사범은 전체의 10%도 안 되는 수치예요. 그런데 투약자를 잡아 가두겠다는 식의 규제는 현실성이 전혀 없지요.” 그는 마약 확산의 가장 큰 원인이 ‘잡아 가두기’식 정책에 있다고 본다. “외국은 교도소에서도 마약 투약자들을 따로 분리해 치료와 재활 프로그램을 적용해요. 우리도 교도소 안에서 분리하기는 하죠. 거기서 뭐하는 줄 아세요? 어디 가면 싸게 살 수 있나, 어떻게 하면 안 걸릴 수 있나, 수감자끼리 하루종일 그 정보만 교환하고 있어요.” 실제 그가 교도소에서 만난 어느 초범은 몇해 만에 거물급 판매책으로 변해 있었다. 그 역시 91년에는 대마초 투여로 구속됐지만 93년에는 히로뽕 중독자로 구속됐다. “외국에서는 판매책과 제조자에게는 가혹한 형을 내리지만 투여자에게는 그렇지 않거든요. 우리나라 경우도 제조자는 형량이 높기 때문에 주로 외국에서 밀반입을 해요. 그렇지만 판매책은 변호사만 잘 쓰면 투약자와 같은 형량을 받아요. 그 사람들은 수십억원 벌고 1∼2년 감옥에 갔다 오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마약의 유혹이 도처에 깔려 있는 거지요.”

정말 그는 마약 전문가가 다 돼 있었다. 어떤 나라에서는 제조책 최고형이 몇년형인지, 어떤 나라에서는 재활 프로그램을 어떻게 시행하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그만큼 진저리를 치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리라.

마약 이야기를 하느라 정작 그의 본업인 음악 이야기는 나중에야 꺼내게 됐다. 뜨는가 하면 내려가고, 또 뜨는가 하면 내려가다를 반복하다 보니 팬 관리가 잘될 수 없었다. 이번에 케이블 텔레비전의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을 재개하면서 객석을 채운 10대들의 데면데면한 얼굴에 그도 당황했다. “처음에는 제가 나오니까 객석이 썰렁해지는 거예요. 근데 한달 뒤쯤 교복 입은 소녀들이 <요람>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하는데 소름이 쫙 끼치더군요. 그런 게 저한테는 가장 큰 격려지요.”

기다려준 팬들에 반드시 보답하마

한 10대 그룹 후배들에게는 “선생님” 소리까지 듣는 원로가수(^^)로 힙합을 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충고도 잊지 않는다. “전보다 실력도 음악성도 훨씬 나아졌어요. 그런데 같은 음악을 하면서도 상대방의 음악에 너무 배타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아는 음악지식만 정답이고, 내 음악만 정통이라는 식으로 다른 가수를 비판하는 태도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힙합은 기본적으로 미국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이 하니까 한국 힙합이 되는 거고요. 미국 힙합 가수들에게 뒤지지 않는 음악을 하는 게 제 꿈이에요.”

음악광들에게서 흑인음악의 필(feel)을 아는 몇 안 되는 뮤지션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지만 그 필은 아직 음악적으로 만개했다고 보기 힘들다. 너무 긴 시간, 너무 많은 에너지를 다른 곳에 소비해왔기 때문이다. 그를 아끼는 음악팬들은 여전히 기대 반 불안 반으로 그를 지켜본다. 많은 이들이 야유를 보내고 무시하였음에도 그의 음악을 지켜준 팬들을 위해 이제는 그가 선물을 준비할 차례다. 공연 문의 02-22166-2777.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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