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절차 없이 마구잡이로 유전정보 유출… 유전자 분석 내세워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
오늘날은 정보가 권력이 되는 시대이다. 과학기술의 사회적 부작용을 고발하는 행동주의자인 제레미 리프킨. 그는 최근 “소유가 접속(access)에 자리를 내주고 시장이 급속하게 네트워크로 전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어떻게든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려는 쪽과 정보의 부당한 집중이나 이용을 막으려는 진영 사이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정보기술의 영역에서뿐 아니라 최근 중요성이 날로 높아진 생명공학에서도나타나고 있다. 흔히 ‘고지에 의한 동의’라고 번역되는 ‘인폼드 콘센트’(informed consent)가 생명윤리에서 중요시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한 방울의 피에도 인폼드 콘센트를
공상과학(SF)영화 <가타카>는 생명공학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유전정보가 개인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암울한 미래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영화 속에서 유전정보를 근거로 개인을 차별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DNA를 분석한 자료가 이력서를 대신한다. 낙태가 법률적으로 허용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한해에 수백만건이 버젓이 이루어지듯이 영화 속에서도 머리카락 하나만 가져오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해석해주는 사설 유전체 분석소가 성업을 이룬다. 기업의 면접장에서는 모든 과정이 생략되고 유전자 검사를 위한 피 한 방울만을 요구한다. 채혈을 거부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곧 취업을 포기하는 일이다.
이런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들은 유전정보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오·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우리나라도 올해 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부가 생명윤리기본법을 비롯한 법안들을 국회에 상정할 예정이고, 연구자와 시술자들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에서 가장 핵심이 되고 일반 시민들이 직접 접하는 중요한 개념이 바로 인폼드 콘센트이다. 인폼드 콘센트란 말 그대로 연구자나 시술자가 혈액이나 신체조직 등 유전정보를 추출할 수 있는 유전자원이나 정보를 얻으려고 할 때에는 대상자에게 충분히 설명한 뒤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유럽과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런 규정을 정하였다. 예컨대 환자나 유전자원 제공자에게 동의받는 절차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사나 연구자들의 윤리의식이 낮고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권위적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거의 아무런 동의 절차 없이 마구잡이로 혈액을 비롯한 유전자원을 채취했다. 더구나 일부 연구자들은 우리나라가 생명공학연구에서 후발주자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인폼드 콘센트를 곧이곧대로 적용할 경우 연구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선진국들은 동의를 거치지 않고 수집한 유전정보에 기초한 연구는 아예 인정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주요 학술저널에도 실릴 수 없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연구를 인정받기 위해서도 유전정보를 보호하는 입법과 그에 따른 구체적인 실행절차가 시급한 형편이다. 인폼드 콘센트는 유전정보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와도 같다. 인폼드 콘센트의 과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형식적인 동의를 막기 위해 ‘충분한 설명’을 해야 한다. 이때 설명은 어려운 전문용어나 외래어가 아닌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일상용어로 해야 하며, 채취하려는 유전자원을 이용해서 이루어질 연구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충분한 설명과 질의응답을 하려면 한 시간 정도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서면을 통한 동의다. 설명을 들은 다음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될 때 제공자는 서면으로 동의서를 작성한다. 이 과정에서 제공자는 다시 한번 자신의 유전자원을 제공할 것인지 깊이 생각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언제든지 동의를 철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설령 연구가 진행 중이라 하더라도 제공자는 동의를 철회할 수 있고 그럴 경우 연구는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약자인 유전자원 제공자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중요한 무기이며, 유전자원 제공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는 정신의 표현이다. 법률 정비 시급… 시민의 자각 절실
법률이나 가이드 라인을 마련해서 유전정보의 오·남용을 막고 의사나 연구자들이 스스로 윤리 감수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사자인 시민들이 자신의 유전정보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피 한 방울로도 자신의 모든 유전정보가 제공될 수 있으며, 유전정보의 특성상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이나 친척의 정보까지 한꺼번에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환자들은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동의 절차 없이 조직 등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치료와 연구도 정상적인 유전정보 제공 절차를 거쳐서만 정립될 수 있으며, 부당한 방법으로 수집된 유전정보는 개인식별 정보와 분리되지 않은 채 엉뚱하게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최근 미국의 연구자들이 까다로운 동의 절차를 피해 중국을 비롯한 제3세계 국가에서 엄청난 유전자원을 수집해가고, 당사자들에게는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은 사건이 국제적으로 큰 물의를 빚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무료로 가족 전체의 유전자를 분석해준다는 광고가 나돌지만, 대부분의 경우 업체들이 무료분석을 미끼로 유전자 샘플을 모으려는 의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 한 방울을 뽑을 때에도 그 용도를 따져 묻고 유전자원으로 이용될 때에는 철저한 인폼드 콘센트를 요구하는 관행이 시민사회에 정착될 때 가이드라인이나 법률이 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김동광/ 과학저술가

사진/ 일부 생명공학연구업체들은 유전정보를 함부로 채취하기도 한다. 한 유전자감식업체 연구원이 혈액 샘플을 분석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사진/ 영화<가타카>는 유전 정보가 세상을 지배하는 암울한 미래를 다루었다.
이런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들은 유전정보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오·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우리나라도 올해 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부가 생명윤리기본법을 비롯한 법안들을 국회에 상정할 예정이고, 연구자와 시술자들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에서 가장 핵심이 되고 일반 시민들이 직접 접하는 중요한 개념이 바로 인폼드 콘센트이다. 인폼드 콘센트란 말 그대로 연구자나 시술자가 혈액이나 신체조직 등 유전정보를 추출할 수 있는 유전자원이나 정보를 얻으려고 할 때에는 대상자에게 충분히 설명한 뒤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유럽과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런 규정을 정하였다. 예컨대 환자나 유전자원 제공자에게 동의받는 절차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사나 연구자들의 윤리의식이 낮고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권위적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거의 아무런 동의 절차 없이 마구잡이로 혈액을 비롯한 유전자원을 채취했다. 더구나 일부 연구자들은 우리나라가 생명공학연구에서 후발주자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인폼드 콘센트를 곧이곧대로 적용할 경우 연구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선진국들은 동의를 거치지 않고 수집한 유전정보에 기초한 연구는 아예 인정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주요 학술저널에도 실릴 수 없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연구를 인정받기 위해서도 유전정보를 보호하는 입법과 그에 따른 구체적인 실행절차가 시급한 형편이다. 인폼드 콘센트는 유전정보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와도 같다. 인폼드 콘센트의 과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형식적인 동의를 막기 위해 ‘충분한 설명’을 해야 한다. 이때 설명은 어려운 전문용어나 외래어가 아닌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일상용어로 해야 하며, 채취하려는 유전자원을 이용해서 이루어질 연구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충분한 설명과 질의응답을 하려면 한 시간 정도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서면을 통한 동의다. 설명을 들은 다음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될 때 제공자는 서면으로 동의서를 작성한다. 이 과정에서 제공자는 다시 한번 자신의 유전자원을 제공할 것인지 깊이 생각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언제든지 동의를 철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설령 연구가 진행 중이라 하더라도 제공자는 동의를 철회할 수 있고 그럴 경우 연구는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약자인 유전자원 제공자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중요한 무기이며, 유전자원 제공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는 정신의 표현이다. 법률 정비 시급… 시민의 자각 절실

사진/ 시민들은 자신의 유전정보를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 초등학생들이 건강검진을 위해 채혈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