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미국의 과학자들에게 “왜 과학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여러 글에서 보고, 실제로 얘기해본 사람들의 견해를 종합해서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fun’이다. 물론 정확한 근거는 없다. fun의 구체적 의미는 폭이 매우 넓다. 장난·쾌락 등에서 고답적인 뜻까지 들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의미를 우리말로 옮기면 대략 ‘즐거움’ 정도에 해당한다. 똑같은 질문을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에게 하면 어떨까? 다양한 답이 예상되며, 굳이 열거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그것은 ‘즐거우니까’ 또는 ‘즐기기 위하여’라는 답은 상당히 드물 것이란 점이다.
물론 미국인이라고 해서 즐거움만으로 가득 찬 과학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연구나 실험을 하면서 “Life is terrible!”(뭐라 딱히 옮기기는 좀 곤란하고, 느낌으로 파악하는 게 좋겠다)이라고 투덜거리기도 한다. 때론 “Science is beautiful only in books”(과학은 단지 책 속에서만 아름답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 자세는 역시 과학 활동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때로 실망이나 좌절이 오더라도 이런 자세로 극복해간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에서의 전의를 다지고 있다. 이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감독들이 이끌었지만 여러 사정상 외국인 감독이 맡았다. 그동안 뒷말도 많았다. 성적이 어떨지는 접어두고라도, 최소한 그의 축구에 대한 관점은 높이 평가하고 배워야 한다. 그가 교체선수를 투입할 때 등을 두드리며 “Go get some fun”이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늘 애국심이나 책임감 등에 억눌려온 우리 선수들에게 얼마나 잘 먹혀들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축구를 보는 마음 자세가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만은 분명해보인다. 히딩크 감독은 또한 ‘창의적 플레이’를 유난히 강조한다. 우리 선수들에게 무엇을 제시하면 적응과 소화는 비교적 잘 하는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창의적 플레이는 드물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fun과 창의적 플레이 사이에는 아주 긴밀한 함수관계가 있다. 이는 과학활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수학의 한 기법으로서, 함수의 최대값을 구할 때 쓰는 ‘라그랑주 방법’(Lagrange's method)이란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설명에는 용돈의 비유가 아주 적절하다. 학생들이 용돈을 받으면 영화를 보는 데, 맥주를 마시는 데, 데이트하는 데 쓴다. 즉 이리저리 궁리하며 알뜰살뜰 쪼개 쓰는 이유는, 주어진 용돈의 범위에서 최대한의 fun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이 fun은, 영화·맥주·데이트 등을 변수로 갖는 다변수함수다. 그리고 ‘주어진 용돈의 범위라는 제한조건’ 아래 ‘fun이라는 함수의 최대값을 구하려는 것’이 바로 ‘용돈 사용의 문제’이다.
이렇게 바꿔보면 딱딱한 수학문제가 아주 친밀한 일상적 문제로 다가온다. fun은 인생의 여러 측면을 변수로 갖는 함수(function)이다. 따라서 이 관점은 과학이나 축구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과학을 하면서 어려운 점도 많고, 축구를 하면서 애국심이나 책임감 등의 부담감도 따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본자세는 ‘fun을 최대화하려는 노력’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야 즐거운 과정 속에서 창의적인 성과가 꽃필 것이다.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