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풍의 안과 밖… 작위성 드러나도 비주류의 가능성 녹아 있어
영화 <집으로…>(감독 이정향)가 대중과 만나 불꽃 같은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흥행성을 의심받아 여러 제작사를 좇아다니던 프로젝트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관객 흡인력이 세다. 5월17일 현재 전국 360여만명 관람. 올해 나온 한국 영화 가운데 최고의 흥행 성적을 기록하였다. 또 제작사인 튜브 엔터테인먼트는 할리우드의 파라마운트사에 이 영화를 팔면서 23만달러의 판매가 이외에 미국 내 수익의 60%를 갖는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호사다마일까, 자신을 “병신”이라고 놀리는 ‘못되먹은’ 손자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포용하는 연기를 훌륭히 해낸 김을분 할머니가 고향집에서 사느냐 마느냐를 놓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돈 문제가 은근히 개입된 탓에 제작사도, 할머니도, 관객도 조금씩 상처를 입었다.
이래저래 ‘집으로 돌풍’은 기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스타시스템과 블록버스터라는 흥행 조건을 처음부터 배제한 저예산 영화라는 게 일차적 이유다. 비주류가 주류 속에 뛰어들어 주류의 흐름을 일시에 휘저었다.
3만명 작가영화 vs 300만명 상업영화
“아이와 할머니의 두 사람을 중심에 놓은, 간결한 설정이 돋보이는 상업영화다. 할리우드로 치면, 한 문장의 카피로 딱 정리돼 흡인력을 발휘하는 하이 콘셉트 영화다. 소재에서 차별화를 이뤘고, 영화 자체도 완성도가 높은데다 제작사가 자신감을 갖고 공격적 마케팅을 벌인 게 주효했다. 작가주의로 팔았으면(소극적으로 마케팅에 나섰으면) 3만명 정도에서 그쳤을 수도 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의 명쾌한 분석이다. 그런데 관객의 기호라는 수요 측면으로 접근하면 좀 어려워진다. 잔인과 엽기와 코믹이 특징이던 조폭 영화의 유행을 이끌던 게 바로 지난해 대중의 취향이었다. 이 대목에선 심 대표도 당혹스러워한다.
“조폭 코드를 즐기던 냉소적인 사람들이 <집으로…>를 보면서 감동하는 건 또 하나의 불구 같은 느낌이다. 나와 다른 문명의 부시맨을 재미있게 보듯 할머니를 보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할머니를 통해 영화적 판타지를 느낀다는 지적이 있는데 맞는 것 같다.”
도시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기까지 험하게 뒷바라지해준 부모(또는 할머니·할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나 부담은 <집으로…>가 주는 영화적 판타지와 감동적으로 만나면서 해소된다는 분석은 비교적 일찌감치 나왔다.
지난해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우며 조폭 영화 유행의 개막을 알린 <친구>도 <집으로…>처럼 여러 제작사를 떠돌던 불운을 딛고 예상치 못한 대박을 터뜨린 경우다. 임상심리학자이자 영화평론가인 심영섭씨는 두 영화의 흥행 코드에서 더 흥미로운 닮은꼴을 찾아낸다.
“<친구>가 남성 영웅주의를 투사한 대중영화라면, <집으로…>는 여성에게 보수적 모성애를 투사한 대중영화다. 남자는 아주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 역시 굉장히 여자다워야 한다는 이미지를 담았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닮았다.”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께 바칩니다’라는 영화 끝의 자막이 상징하듯 <집으로…>의 할머니에게는 아련한 향수나 기억의 흔적이 끈끈하게 자리잡고 있다.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마냥 받아주던 너른 품의 이미지는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집으로…>는 따끔하게 바른 말을 늘어놓기도 해야 할 할머니의 입을 애초에 막아놓았다. 이혼에 생활고까지 겹쳐 잔뜩 부아가 난 채 아이를 떠맡기는 어머니의 이미지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심씨의 분석은 최근 영화에 등장한 할머니의 이미지를 끌어오면서 좀더 나아간다. 예컨대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남성이 꿈꾸는 판타지인데(한 남자에 대한 열정을 끝까지 가슴에 담고 깨끗하고 단정하게 숨을 거두는 할머니였다), 할아버지가 배제된 스크린에 하필 할머니가 상대적으로 많이 등장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 20대 여성들이 과거와 많이 달라져 <집으로…>류의 모성애를 투영하기에는 현실성이 떨어지니 할머니의 순종적인 캐릭터가 이를 대체한다는 설명이다.
<친구>와 닮은 점 그리고 한국적 숙명
국내 문화 시장의 특수 조건을 고려하면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달마야 놀자>를 만든 씨네월드의 이준익 대표는 조폭 영화와 <집으로…>의 관객이 70%는 겹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똑같은 관객의 이질적인 선택은 어찌 보면 모순적인데, 때에 따라 다수도 되고 소수도 돼야 하는 이중적 존재감이 개인의 ‘숙명’이라는 것이다. 이건 이 땅에 국한된 이야기다. 이런 특성은 문화적 소비 성향에 관한 한 선택의 폭이 매우 좁은 시장 구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1억2천만명의 인구를 지닌 일본의 시장 규모는 우리의 3배다. 오타쿠라고 하는 마니아들의 존재가 가능할 만큼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생기는 조건은 그래서 가능하다. 미국만 해도 실버 무비와 키드 무비가 끊임없이 나오고, 이런 비주류 영화가 1억달러 흥행을 거뜬히 해낸다. 이처럼 일본이나 미국 시장에선 주류와 비주류가 공존한다. 그렇지 못한 우리는 집단의 총수 자체가 부족하니까 개인에게 다면체를 요구한다.”
한국 영화가 대중의 다양한 기호를 충족시키지 못하던 중에 <집으로…> 같은 영화가 한 발짝 용감히 앞서가 그 결핍감을 채워주면서 대박이 터졌다는 분석은 보편적이다. 이런 시각에다 영화산업이란 측면을 덧붙이면, ‘집으로 현상’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스타시스템 따위의 만고불변의 흥행 원칙이란 없다는 걸 새삼 증명했으니. ‘집으로 현상’은 제작자들이 새로운 영화에 도전하기에 든든한 원군이 된 셈이다.
다른 한편에선 이 영화에 대한 평단의 반응이 우호 일변도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도 한다. 온라인 영화 사이트 조이씨네(www.joycine.com)에선 문화비평가 한정수(컬티즌 편집위원)씨의 ‘이정향, 혹은 착한 영화 유감’이란 글이 작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이 영화의 흥행에 불만은 없다고 전제하고 이 영화의 “나태한 착상과 어설픈 작법에 관해 토를 달지 않는” 천편일률의 매스컴·평론가·관객들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집으로…>는 촌스럽고 게으른 영화다. 감독은 ‘자연을 거스르지 말자. 조작하거나 윤색하지도 말자’고 작정했다지만, 정작 영화는 비자연스럽고 조작된 것투성이다. 현실적이되 귀찮을 뿐인 온갖 변수들을 완벽하게 차단한 실험실 안에서, 명백한 대조군만을 조작해 순수한 ‘의도’를 정제하려 든다. …캐릭터 설정도 마찬가지다. 할머니는 될 수 있는 한 처참히 늙고 꼬부라져야 했고, 아이는 도시인의 눈에도 성격 파탄자로 의심될 만큼 싸가지가 없어야 했다.”
‘다른 영화’의 토양을 만들었다
‘착한 영화’ 하면 이란 영화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자파르 파나히의 <하얀 풍선>, 마지드 마지디의 <천국의 아이들> 등에는 모두 착한 아이들이 등장한다. 천진함의 이면 한 구석에 어린이의 이기심을 섞어놓은 <하얀 풍선>과 달리, <천국의 아이들>에는 어른들이 원하는, 어린이의 이상형만이 담긴 작위성이 느껴진다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국내에서 유난히 흥행에 크게 성공한 건 <천국의 아이들>이었다.
물론 ‘착한 영화’의 작위성은 사기성과 다르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씨는 <집으로…>가 영악하지만 전체적으로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집으로…>는 진심을 드러내되 영악하다. 또 키아로스타미처럼 근본적인 성찰까지 들어가지 않지만 위안받고 싶어하는 감정을 잡아내는 데 탁월하다. 이 영화의 성공은 한국 영화산업이란 측면에서 새롭고 다양한 영화를 만들게 하는 데 방아쇠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사진/ 영화, <집으로…>.

사진/ 영화, <집으로…>.

사진/ <집으로…>의 돌풍을 어떤 영화가 이을 것인가. 평단과 관객이 한목 소리로 찬사를 보낸 <집으로…>의 촬영 모습. (씨네21 오계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