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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성적 매력, 그 지능적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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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5-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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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감정으로 이어지는 호감의 조건…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비밀병기를 찾아라

감각적 정서로 상대방을 자극하는 사이버 세대. 그들의 디지털 사랑법에 ‘성적 매력’이라는 항목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을 수도 있다. 이들은 몸으로 부딪치는 직접체험보다 공간을 뛰어넘는 간접체험으로 알짜배기 사랑을 키운다. 네트워크를 이리저리 떠돌며 물색한 상대방을 향해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일쑤다. 인스턴트식 관계라 해도 어엿한 사랑이 싹트고 튼실한 열매를 맺기도 한다. 큐피드의 황금화살이 아니어도 상대방에게 격렬한 사랑을 느끼게 하는 그들. 하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ID와 패스워드를 잠시 접어둬야 한다. 오프라인에서 아날로그로 마주쳐야만 하는 것이다. 그때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비밀병기’는 무엇일까?

사랑은 혼자만의 감정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공략 대상을 살피고 적절한 처방을 가져야 한다. 만일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미군 병사를 찾아가는 여성이라면 미리 자신의 속옷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군인들이 위문품으로 여성들의 속옷을 가장 좋아했던 탓이다. 그것도 아주 ‘더러운’ 속옷이라면 확실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실제로 여성의 질에 있는 특유의 물질은 배란기에 농도가 짙어져 남성을 성적으로 이끄는 것으로 밝혀졌다. 요즘에도 여성 물건 도착증 환자들이 건조대에 널린 여성 속옷을 호시탐탐 노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으리라. 심지어 일본의 여고생들은 자신의 속옷을 성인용품점에 상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물론 불티나게 팔렸다. 성인이고 싶어하던 ‘고갸르’(자(子)+걸(Girl))들은 너나없이 속옷을 벗어 ‘혈통서’를 붙여놓았다.

향기와 색깔, 모유의 신비로운 힘


사진/ 일본의 여고생들은 자신의 속옷을 팔기도 한다.
생물의 세계에서 향기는 성적 매력을 자극하는 신비스러운 것으로 통한다. 동물의 세계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암쥐는 숫쥐가 배설하는 오줌 냄새에 자극받아 발정을 촉진한다. 캥거루와 산양의 암컷들은 수컷이 접근하면 잽싸게 오줌을 내뿜는다. 오줌 냄새가 수컷을 흥분시키는 일종의 최음제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페르몬이라는 화학물질을 체외로 분비하는데 그것은 마술을 부려 성감을 자극한다. 여성들 역시 향기에 의해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성적 매력 포인트로 응답자의 71%가 향기를 꼽았으며 차림새는 18%, 머리 모양새는 8%를 얻었을 뿐이다. 이런 이유로 각종 향수를 이용해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배란기의 여성은 사향계(麝香系) 향수에 민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성들 역시 동물성 향수인 머스크 오일(musk oil)에 강하게 자극받아 성적 도발을 꿈꾸기도 한다.

사진/ 젖먹이 엄마 곁에 있으면 성욕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겨레 서경신)
젖먹이 엄마가 아기에게 모유를 먹을 때 나는 냄새도 여성들의 성욕을 자극한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모넬 화학자극 센터’와 시카고대학 공동 연구진은 최근 “젖먹이 엄마와 신생아가 내뿜는 냄새가 다른 여성의 성욕과 오르가슴을 고조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젖먹이 엄마의 젖가슴과 겨드랑이에 흡수패드를 넣은 뒤, 출산경험이 없는 여성들이 냄새를 맡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패드의 냄새를 맡은 여성들은 성욕과 성적 황홀감이 이전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패드의 화학적 요소가 다른 여성의 출산을 자극하고 출산 환경임을 암시하는 신호를 내뿜은 것이다. 불임으로 고민하는 여성이라면 새내기 젖먹이 엄마와 함께 지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하겠다. 물론 임신을 원치 않는 여성이라면 젖먹이 엄마 곁에 가급적 가지 않는 게 현명한 일이다.

상대방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강력한 힘은 색깔에도 있다. 동물들은 이성을 번식에 끌어들이기 위해 색깔을 활용했는데, 이는 동물 진화의 원천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학의 진화생물학자 신 캐롤은 초파리의 성별 색소침착의 유전자 조절을 연구하면서 색깔 패턴이 교미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캐롤 박사팀은 암컷의 배 모양과 비슷한 색깔로 유전공학적 처리를 한 수컷 초파리를 만들었다. 이 초파리가 암컷에게 구애했을 때 화려한 빛깔의 초파리에서처럼 홀딱 반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동물들은 구애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새로운 색깔로 진화를 이뤄냈다. 동물들의 털이나 날개 색깔은 ‘성적 힘 경쟁’(Sexual arms race)의 산물인 셈이다. 후각의 둔화로 페르몬이 힘있게 작용하지 못하는 인간들 역시 색깔에 큰 관심을 보인다. 물론 신체적 진화보다는 옷을 고르거나 화장의 색깔을 조절하는 것으로.

향기와 색깔 등을 이용한 성적 매력이 배우자 선택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에게 성적 매력은 말 그대로 매력일 뿐이다. 배우자 선택에는 본능적으로 미래 지향적인 잣대를 적용한다. 2세를 미리 고려하는 현명함을 발휘하는 것이다. 배우자 선택이론에 따르면 여성은 균형잡힌 외모와 신체구조를 보고 그 남성이 최상의 유전자를 지닌 것으로 여긴다. 자녀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지도록 배우자를 선택하려는 것이다. 균형잡힌 외모의 남성이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을 것으로 여기는 셈이다. 수명이나 생식력, 건강 등에 관한 좋은 형질의 면역 시스템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전략적 판단이다. 이것은 순전히 자녀를 중심에 놓는 여성들의 판단일 뿐이다. 게다가 여성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은 시기에 따라 변하기에 끊임없이 여성의 상태를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

월경주기에 따라 선호도 달라져

그렇다고 여성의 남성에 대한 선호도가 항상 일정한 것은 아니다. 입맛이 변하는 월경주기에 따라 성적 취향도 달라진다. 영국 세인트안드레대학 이완 펜톤 교수팀은 컴퓨터 합성사진 실험을 통해 여성들의 남성 선호도가 월경주기에 따라 바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임신 가능성이 높은 배란기의 여성들은 남자다운 얼굴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월경 중이거나, 월경이 막 끝나 임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여성들은 여성적인 남성의 얼굴에 매력을 느꼈다. 피임약을 복용해 호르몬의 영향을 받지 않는 여성들 역시 늘 여성적인 남성 얼굴을 좋아했다. 섹스 상대를 고를 때도 외모가 작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여성들은 ‘원 나이트 스탠드’(One Night Stand) 상대로는 남성적인 얼굴의 남성을 선호했다. 하지만 배우자로서의 상대를 고를 때는 여성적인 얼굴의 남성을 선택했다. 남성적인 얼굴의 남성을 출산과 양육 등을 돌보지 않는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판단한 탓이다.

여성은 성적 매력을 통해 행복한 가정과 건강한 아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 단순한 매력으로 끝나는 것이라면 향기와 색깔, 몸매 등에 신경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성은 선호도의 변화라는 지능적 전략을 구사한다. 이를 통해 진화의 결과를 따르기보다는 생존의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균형잡힌 몸매에 여성적 얼굴 그리고 성적 자극이 강렬한 향기를 지니고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누구 없소” 하고 외치겠는가. 성적 매력은 본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매력을 찾아내 맘껏 뽐내야 한다. 그것은 보편적인 매력의 기준에 따르는 게 아니라 특정인의 관심에 제대로 다가서는 그 무엇일 것이다. 여성이 입었던 속옷을 누구나 좋아하진 않는 것처럼.

김수병 기자soo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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