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패러디와 화장실 유머를 뒤죽박죽 섞어놓은 90년대 코미디영화의 전형 <무서운 영화>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무서운 영화>(Scary Movie)라는 황당하리만치 직설적인 제목을 만났을 때 가능성은 두 가지다.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절대적’으로 무섭거나, 무섭기는커녕 자지러질 만큼 우습거나. 고민할 필요없이 답은 후자다. 웬만한 난도질에는 눈 하나 꿈쩍 안 하는 공포영화 팬들의 역치를 건드리기 위해 고도로 머리회전을 해서 만든 영화에 이렇게 순진하다 못해 ‘배째라’식의 뻔뻔함까지 내보이는 제목을 달았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무서운 영화>는 ‘우스운 영화’다. 더이상의 수식이 필요없다. 한 시간 반 동안 보여주는 것은 온통 ‘이래도 안 웃을래?’ 하고 벼르는 농담과 슬랩스틱이다.
등장인물 이름도 패러디
거실 안에서 비디오를 틀어놓고 팝콘을 튀기던 드류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수화기에서는 “공포영화 좋아해?”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와 대사가 나온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드류는 집 밖으로 뛰쳐나온다. 여기까지는 영화 <스크림>을 그대로 베낀 시작이다. 그런데 집을 나오자 마자 ‘안전지역’과 ‘사망지역’으로 갈리는 표지판이 나오고 주인공은 망설이다 사망지역으로 뛰어간다. 뒤를 쫓는 살인마의 칼에 옷가지가 다 벗겨진 드류는 속옷바람으로 뛰는데 영화는 갑자기 느린 동작으로 바뀌면서 금발을 나부끼며 성인영화의 주인공처럼 갖가지 섹시한 포즈를 취하는 드류를 클로즈업한다. 넘어진 드류의 가슴을 찌른 살인마의 칼에는 유방확대용 실리콘이 끼어져 나온다. 이쯤되면 이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감이 잡힌다.
친구의 이상한 죽음을 들은 주인공 신디는 1년 전의 사건을 떠올린다. 신디와 친구들은 할로윈 파티를 벌이고 돌아오는 길에 한 남자를 치어 죽이고 바다에 빠뜨렸다. 이것도 어디서 본 이야기다. 바로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차에 받혔던 남자는 멀쩡히 일어나서 돌아가다가 당황한 일행이 음주사실을 숨기기 위해 내던진 술병에 머리를 맞아 죽는다. 신디는 자신들의 살인과 드류의 죽음에 관계가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친구들이 하나씩 죽어나간다. 이 영화의 구상 당시 잠정 제목이이었다는 사실을 몰라도 <스크림>과 <나는 네가…>를 봤다면 이 영화가 두 작품의 구성과 내용을 노골적으로 섞어놓은 패러디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영화가 베낀 것은 두 영화만이 아니다. <식스센스> <블레어윗치> <매트릭스> 등 11개나 된다. 그러나 여기서 패러디는 더이상 원작을 조롱하고 비판하는 거울상이 아니다. 오로지 웃기기 위해 총동원된다. 마리화나를 하고 맛이 간 상태에서 “비밀 하나 말해줄까? 난 죽은 사람이 보여”라고 환각 상태를 설명하고(<식스센스>), 살인마와 우아한 고공무술로 싸우며(<매트릭스>), 숲 속으로 뛰어가면서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아요”라고 외치는 여기자는 눈물이 아니라 콧물을 질질 흘린다(<블레어윗치>).
심지어 등장인물의 이름마저 모두 패러디다. <스크림>에 출연한 드루 배리모어에서 따온 드류, 주인공 시드니와 이를 연기한 배우 네브 캠벨을 섞은 신디 캠벨, 인기 TV시리즈 <미녀와 뱀파이어>의 주인공 버피와 이를 연기한 사라 미셸 갤러를 섞은 버피 갤러 등이 주요 인물의 이름이다.
‘막가파’식 코미디영화 계보 잇는 형제 감독
웃음의 코드는 패러디뿐이 아니다. 90년대 코미디영화의 ‘주류’가 된 화장실 유머는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요소다. 교내 탤런트 선발대회에 나간 버피가 어깨에 두른 띠에는 ‘미스 펠라티오’라는 말이 적혀 있고, 신디는 남자친구와 섹스를 하다가 분수처럼 치솟은 정액으로 천장에 달라붙는다. 방귀, 콧물, 침 등은 소녀들의 다이어리를 장식하는 깜찍한 스티커처럼 처럼 화면 곳곳을 아기자기하게(?) 장식한다.
웃음도 공포처럼 기존의 자극보다 강렬한 자극만이 감각신경을 움직일 수있는 실무율의 법칙을 따르는 감정이므로 2000년에 태어난 <무서운 영화>의 웃음은 80년대 ‘못말리는…’ 시리즈를 유아수준으로 떨어뜨릴 정도로 과격하다. 출장을 가면서 딸에게 손님이 오면 밀가루를 섞어서 팔라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마약상 아버지나 극장에서 큰소리로 떠든다고 관객이 떼거지로 등장인물을 찔러죽이는 장면도 그저 배를 잡을 정도로 웃기기만 하다. 게이나 여성에 대한 비하도 서슴지 않는다. 웃기려는 제작진의 필사적인 노력이 오히려 무서울 정도다.
그러나 ‘오로지 관객을 웃기기 위해 태어났음’을 선언하는 <무서운 영화>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기대하는 것은 수영장에서 정숙한 복장을 요구하는 것보다 더 바보 같은 짓일지 모른다. 공포영화의 걸작으로 추앙받는 <스크림> 시리즈를 만든 제작사(미라맥스)가 자신의 훈장에 직접 색색깔의 스프레이를 뿌리고 똥물을 튀겨가면서 만든 영화인데 더이상 말해 무엇하랴. 어쨌거나 제작자는 2000년대의 젊은 관객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짚었다.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가볍게 때려눕히고 미국에서 사흘 만에 425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며 R등급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이라는 새로운 훈장을 달았다.
<무서운 영화>는 웃기는 데는 역시 형제들이 머리를 맞대는 게 최고라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한 영화이기도 하다. 데뷔작인 이 작품에서 각본, 연출에 깜짝출연까지 한 키넌 아이보리, 숀, 말론 웨이언스 형제는 <총알탄 사나이>의 주커 형제, <덤 앤 더머>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패럴리 형제에 이어 ‘막가파’식 코미디영화의 계보를 이을 재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친구의 이상한 죽음을 들은 주인공 신디는 1년 전의 사건을 떠올린다. 신디와 친구들은 할로윈 파티를 벌이고 돌아오는 길에 한 남자를 치어 죽이고 바다에 빠뜨렸다. 이것도 어디서 본 이야기다. 바로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차에 받혔던 남자는 멀쩡히 일어나서 돌아가다가 당황한 일행이 음주사실을 숨기기 위해 내던진 술병에 머리를 맞아 죽는다. 신디는 자신들의 살인과 드류의 죽음에 관계가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친구들이 하나씩 죽어나간다. 이 영화의 구상 당시 잠정 제목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