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여성의 쉼터 ‘막달레나의 집’에서 묶어낸 <용감한 여성들, 늑대를 타고 달리는>
최근 공창제 논란과 함께 성매매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부쩍 많아졌다. 윤락·매춘·매매춘이라는 ‘눈가리기’식 표현이 성매매라는 냉정한 표현으로 바뀌어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성매매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는 한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의 현실은 얼마나 변했을까. 한쪽에서는 적지 않은 정부 예산을 ‘재활’사업에 쏟아붓고, 다른 한쪽에서는 철문에 갇힌 젊은 여성들이 죽어나가는 사건이 되풀이되고 있다. 몇몇 성매매 지역의 단속이 강화되긴 했지만 그로 인해 성매매 여성 수가 줄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들의 어머니, 또는 동생 같은…
공창을 주장하는 사람이건, 근절을 주장하는 사람이건 성매매를 개선되어야 할 사회문제로 본다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논쟁에는 결정적인 한 부분이 빠져 있다. 당사자인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의 육성이다. 이들의 현실이 도외시된 것은 아니다. 수많은 르포와 인터뷰들이 이들의 비참한 노동여건과 바닥까지 내려가게 된 인생유전을 절절히 써내려갔다. 다만 부족한 건 이들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생생한 목소리였을 뿐이다.
1985년부터 서울 용산지역에서 성매매 여성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있는 막달레나의 집에서 묶어낸 <용감한 여성들, 늑대를 타고 달리는>(삼인 펴냄)은 단란주점에서 기지촌까지, 10대에서 40대 후반까지 다양한 조건과 환경에서 성매매를 하였거나 했던 여성들의 육성을 진행형으로 담은 보고서다. 대안이 무엇이든 지금과 같은 성매매는 곧 인권유린이라는 견해를 가진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는 건 조금 당황스러운 경험이다. 이는 막달레나의 집을 찾는 ‘외지 사람’들이 겪는 혼란스러움과 비슷한 것이다. ‘짙은 화장에 야한 옷차림, 욕지거리가 섞인 조금은 과격한 말투의 여성을 상상했는데 뜻밖에도 자신들의 어머니나 동생 같은 여성을 만나게’되는 것이다. 다섯명의 필자들은 여성학 이론을 배제한 채 오랜 기간 성매매 지역이나 유흥가·기지촌을 찾아다니면서 만난 여성들의 일상과 속내를 관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경찰들이 내 젖을 만져도 속으로는 그래도, 그냥, 아씨(아저씨) 왜 이래요, 하면서 넘어갈 뿐이지. 한데 그때 갈보라는 말 들었을 때는 좀 다르더라구.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갈보’ 또는 ‘성노동자’의 인권론), “큰길까지 도망치는 아가씨를 뒤쫓아갔어. 내가 가장 앞에 있었기 때문에 팔만 뻗으면 머리채를 잡을 수 있었거든. 근데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게 되대. 일부러 ‘거기 서, 안 서? 넌 죽는다’소리만 지르는 거야(…) ‘너라도 도망쳐라. 제발 빨리 뛰어라 이년아’ 속으로 생각했지.”(그래도 나는 괜찮은 여자다). 오랫동안 밀착 인터뷰를 하면서 상대 여성과 가까워진 한 필자는 16살 가출소녀에게 “언니, 테이블 뛰실래요?” 제안을 받기도 하고, 다른 필자들은 바람난 기둥서방과의 결혼을 철석같이 믿고 있거나 목숨 걸고 도망친 뒤 살길이 막막해 다시 돌아가고픈 유혹에 흔들리는 여성의 고민에 조심스럽게 ‘개입’하기도 한다. 약(최음제)을 먹어야 ‘연애’가 가능하다는 한 40대 여성의 하소연처럼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들어온 여성이든 그 반대이든 이들은 성매매의 폭력성을 체감한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다른 선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몸과 영혼이 망가진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미 이 일이 유일한 생계수단이 돼버린 이들이 요구하는 대책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그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을 위한 것’이다. “자유가 있어야 해. 말하고 싶을 때 하고.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은 노예지만, 자기가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최소한의 보장을 해주어야 해.(…) 그곳에서 생활하기를 원하는 여성은 맞았을 때라든지 뭐든 강요나 협박받았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센터가 생겨야 된다고 생각해. 동네마다 관할 파출소가 있는 것처럼.” 14살 때부터 다방과 술집을 전전하다 가까스로 빠져나와 쉼터에 있는 열아홉 진경이가 원하는 것은 대단한 재활 프로그램이 아니라 힘든 자신을 보듬어줄 수 있는 보다 많은 쉼터다. “쉼터란 데를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 수 있게 해야 돼요. 내가 갈 곳만 있었다면 다방에서도 금방 나왔을 텐데…. 쉼터를 일찍 알았다면 조금은 내 인생이 바뀌지 않았을까….” 포주보다 시민단체 사람이 더 힘들었다? 이 책은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보고서이자 성매매 문제를 위해 싸우는 활동가들에 대한 보고서기도 하다. 목숨 걸고 성매매 지역을 탈출한 미정이 그 공간에서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대상은 임금을 착취하는 포주나 모욕적인 요구를 하는 손님이 아니라 오히려 경찰과 시민단체 사람들이었다. “그곳에 있는 아가씨들한테 ‘왜 이런 데서 일하느냐?’고 하면 뚜껑이 열리지. 누군 하고 싶어서 하나? 그리고 빚이 얼마냐, 도와주겠다, 그런 말이 무슨 수용이야. 화가 나는 건 인권을 찾아준다고 하는 시민단체 사람들이 와서 왜 우리를 무시하느냐는 거지. 그 표정부터.” 아무도 ‘이곳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묻지는 않았다. 2000년, 우연한 기회에 홍콩에서 열린 성매매 관련 비공개 국제회의에 참가한 고연주(가명·47)씨가 느낀 문제의식도 비슷하다. 그는 증언자로 참가했을 뿐 함께 간 활동가와 한국상황에 관한 발표문을 함께 작성할 기회를 갖지는 못했다. “다른 나라 여자들은 자기네 권리, 응? 그런 거에 대해서 발표하고 그러는데 이건 아니더라고. 도대체 왜 그랬는지. 난 거기 가서 처음 들었어. 전에 보고서를 같이 본 적도 없어.” 그래서 “인터뷰 대상자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려는 경향이 있듯이, 연구자인 나도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원미혜씨의 고백은 성매매 문제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해결책이 다양하게 제시되지만 각각의 현실적 대안들은 예측가능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인 만큼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속적인 논의와 해결의지다. 그리고 그 논의 한가운데서 유념해야 할 한 가지는 엄상미씨가 47살의 나이든 성매매 여성을 만나며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증언이 아니라 자유로운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할 수 통로와 말하고 싶어하는 그들 스스로의 욕구이며,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주변의 자세인 것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1985년부터 서울 용산지역에서 성매매 여성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있는 막달레나의 집에서 묶어낸 <용감한 여성들, 늑대를 타고 달리는>(삼인 펴냄)은 단란주점에서 기지촌까지, 10대에서 40대 후반까지 다양한 조건과 환경에서 성매매를 하였거나 했던 여성들의 육성을 진행형으로 담은 보고서다. 대안이 무엇이든 지금과 같은 성매매는 곧 인권유린이라는 견해를 가진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는 건 조금 당황스러운 경험이다. 이는 막달레나의 집을 찾는 ‘외지 사람’들이 겪는 혼란스러움과 비슷한 것이다. ‘짙은 화장에 야한 옷차림, 욕지거리가 섞인 조금은 과격한 말투의 여성을 상상했는데 뜻밖에도 자신들의 어머니나 동생 같은 여성을 만나게’되는 것이다. 다섯명의 필자들은 여성학 이론을 배제한 채 오랜 기간 성매매 지역이나 유흥가·기지촌을 찾아다니면서 만난 여성들의 일상과 속내를 관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경찰들이 내 젖을 만져도 속으로는 그래도, 그냥, 아씨(아저씨) 왜 이래요, 하면서 넘어갈 뿐이지. 한데 그때 갈보라는 말 들었을 때는 좀 다르더라구.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갈보’ 또는 ‘성노동자’의 인권론), “큰길까지 도망치는 아가씨를 뒤쫓아갔어. 내가 가장 앞에 있었기 때문에 팔만 뻗으면 머리채를 잡을 수 있었거든. 근데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게 되대. 일부러 ‘거기 서, 안 서? 넌 죽는다’소리만 지르는 거야(…) ‘너라도 도망쳐라. 제발 빨리 뛰어라 이년아’ 속으로 생각했지.”(그래도 나는 괜찮은 여자다). 오랫동안 밀착 인터뷰를 하면서 상대 여성과 가까워진 한 필자는 16살 가출소녀에게 “언니, 테이블 뛰실래요?” 제안을 받기도 하고, 다른 필자들은 바람난 기둥서방과의 결혼을 철석같이 믿고 있거나 목숨 걸고 도망친 뒤 살길이 막막해 다시 돌아가고픈 유혹에 흔들리는 여성의 고민에 조심스럽게 ‘개입’하기도 한다. 약(최음제)을 먹어야 ‘연애’가 가능하다는 한 40대 여성의 하소연처럼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들어온 여성이든 그 반대이든 이들은 성매매의 폭력성을 체감한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다른 선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몸과 영혼이 망가진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미 이 일이 유일한 생계수단이 돼버린 이들이 요구하는 대책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그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을 위한 것’이다. “자유가 있어야 해. 말하고 싶을 때 하고.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은 노예지만, 자기가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최소한의 보장을 해주어야 해.(…) 그곳에서 생활하기를 원하는 여성은 맞았을 때라든지 뭐든 강요나 협박받았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센터가 생겨야 된다고 생각해. 동네마다 관할 파출소가 있는 것처럼.” 14살 때부터 다방과 술집을 전전하다 가까스로 빠져나와 쉼터에 있는 열아홉 진경이가 원하는 것은 대단한 재활 프로그램이 아니라 힘든 자신을 보듬어줄 수 있는 보다 많은 쉼터다. “쉼터란 데를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 수 있게 해야 돼요. 내가 갈 곳만 있었다면 다방에서도 금방 나왔을 텐데…. 쉼터를 일찍 알았다면 조금은 내 인생이 바뀌지 않았을까….” 포주보다 시민단체 사람이 더 힘들었다? 이 책은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보고서이자 성매매 문제를 위해 싸우는 활동가들에 대한 보고서기도 하다. 목숨 걸고 성매매 지역을 탈출한 미정이 그 공간에서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대상은 임금을 착취하는 포주나 모욕적인 요구를 하는 손님이 아니라 오히려 경찰과 시민단체 사람들이었다. “그곳에 있는 아가씨들한테 ‘왜 이런 데서 일하느냐?’고 하면 뚜껑이 열리지. 누군 하고 싶어서 하나? 그리고 빚이 얼마냐, 도와주겠다, 그런 말이 무슨 수용이야. 화가 나는 건 인권을 찾아준다고 하는 시민단체 사람들이 와서 왜 우리를 무시하느냐는 거지. 그 표정부터.” 아무도 ‘이곳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묻지는 않았다. 2000년, 우연한 기회에 홍콩에서 열린 성매매 관련 비공개 국제회의에 참가한 고연주(가명·47)씨가 느낀 문제의식도 비슷하다. 그는 증언자로 참가했을 뿐 함께 간 활동가와 한국상황에 관한 발표문을 함께 작성할 기회를 갖지는 못했다. “다른 나라 여자들은 자기네 권리, 응? 그런 거에 대해서 발표하고 그러는데 이건 아니더라고. 도대체 왜 그랬는지. 난 거기 가서 처음 들었어. 전에 보고서를 같이 본 적도 없어.” 그래서 “인터뷰 대상자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려는 경향이 있듯이, 연구자인 나도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원미혜씨의 고백은 성매매 문제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해결책이 다양하게 제시되지만 각각의 현실적 대안들은 예측가능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인 만큼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속적인 논의와 해결의지다. 그리고 그 논의 한가운데서 유념해야 할 한 가지는 엄상미씨가 47살의 나이든 성매매 여성을 만나며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증언이 아니라 자유로운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할 수 통로와 말하고 싶어하는 그들 스스로의 욕구이며,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주변의 자세인 것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