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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책장 넘기며 여행지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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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5-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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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즐기는 해외여행 길라잡이 봇물… 정보도 자신의 취향에 맞게 고른다

주5일 근무제 실시를 앞두고 출판시장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주요 출판사들이 늘어나는 여가시간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 안내하는 여행·레저 분야 서적 공략에 나섰다. 특히 인문사회과학이나 문학예술 분야에 치중하던 출판사들이 대거 뛰어들면서 침체돼 있는 출판시장을 뚫을 타개책으로 기대를 모은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출판에 치중하던 한길사는 최근 내놓은 해외여행 가이드북 ‘레츠 고’ 시리즈로 서서히 달궈지는 여행지 시장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1차분으로 중국, 도쿄·요코하마,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홍콩·마카오 편이 발간된 ‘레츠 고’ 시리즈는 일본 최대 규모의 여행사이자 여행 가이드북 전문 출판사인 JTB와 제휴계약을 맺고 내놓은 번역서로 현재 일본에서 <세계를 간다>를 누르고 발행부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정보지다.

침체된 출판시장에 활력 불어넣어


사진/ 최근 독자층을 넓혀가고 있는 여행잡지들. 일본의 라이선스 여행지 와 디자인하우스가 펴내는 도베.
잡지 판형과 150여쪽 남짓한 지면에 여행지 정보를 소개하는 이 책은 그동안 여행지 시장에서 주종을 이룬 배낭여행자를 타깃으로 한 <세계를 간다> 시리즈와 스타일과 내용 면에서 뚜렷한 차별성을 보여준다. 올컬러 잡지 스타일로 빽빽하게 짜인 지면은 명소에 대한 역사·문화적 소개 대신 시간과 비용에 대한 압축된 정보를 제공하고, 숙소와 맛집, 쇼핑 아이템에 대해 사진자료와 함께 상세한 데이터를 싣고 있다. 이곳에서 소개하는 숙박 가이드는 저렴하고 깨끗한 곳이 아니라 쾌적하고 여유있게 쉴 수 있는 호텔 중심이다. 식당 소개도 싸고 푸짐한 곳이 아니라 돈을 더 내더라도 현지의 풍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한다. 쇼핑정보 역시 벼룩시장류와는 거리가 먼 토산품이나 패션몰 중심이다. 즉 빵 한 덩어리, 포도주 한병으로 끼니를 ‘때우고’, 열차의 일반석에서 보따리를 베개삼아 하룻밤을 ‘넘기며’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일정 정도 경제력이 있는 여행자를 대상으로 만든 책이다. ‘레츠 고’ 시리즈를 기획한 한길사의 장병민 팀장은 “여행문화가 아끼는 게 미덕인 배낭여행이나 무조건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패키지 여행에서 개인의 취향이 중요시되는 자유여행으로 점차 바뀌는 데 초점을 맞춰 이 시리즈를 기획하게 됐다”면서 “1년에 한두번씩은 해외여행을 나가는 데 익숙한 젊은 직장인들이 주요 타깃층”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정보의 정확성이 관건인 가이드북의 신뢰도 확보를 위해 해마다 대폭적인 업데이트를 해나갈 예정. 2003년 상반기까지 총 30권 완간을 목표로 한다.

한길사는 이와 함께 배낭여행자를 위한 단행본 형태의 <월드가이드> 시리즈도 2004년 총 30종 완간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세계를 간다>나 <론리 플래닛> 시리즈와 유사한 이 책은 좀더 다양한 정보와 읽을거리를 싣고 있다.

인문예술과 만화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발간해온 시공사도 올 가을부터 여행서 시장에 뛰어든다. 일본의 여행서 전문 출판사인 실업지일본사에서 출간하는 ‘멋대로 걷기’ 시리즈를 라이선스 계약해 오는 10월 발간한다. 영국 DK출판사에서 나오는 ‘디키’ 시리즈와 유사한 이 책은 나라가 아닌 도시별로 세분화해 400쪽가량의 분량에 소개한다. ‘레츠 고’ 시리즈처럼 젊은 층이 선호하는 잡지 스타일의 편집으로 문화 등의 읽을거리보다 식당, 쇼핑 등의 실용정보를 소개해 ‘레츠 고’ 시리즈와의 경쟁이 예상된다. 총 34권 완간 예정. ‘멋대로 걷기’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는 시공사의 고현진씨는 “출판시장이 국내보다 큰 일본에서 최근 시장 잠재력이 가장 큰 분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동물과 여행레저물이며 이는 우리나라 출판시장의 판도 변화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여행지 시장공략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데이터 업데이트의 어려움이나 우리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을 감수해야 하는 번역서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 시리즈로 자리를 잡은 뒤 장기적으로 국내 자체 기획으로 옮겨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해냄출판사는 문학 쪽에서의 강점을 이용해 여행서로 접목시킬 구상을 가지고 있다. 외국에서 살다 왔거나 여행을 자주 다녀 현지의 사정을 잘 아는 작가 풀을 가동해 6월부터 작가여행 시리즈를 시장에 내놓는다. 해냄 역시 시공사나 한길사처럼 정보 중심의 가이드북을 내려고 했지만 거대 출판사와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문학성이 가미된 여행 에세이로 방향을 틀었다. 파리에 체류하는 작가 함정임의 파리편과 열성적인 여행가로 알려진 김미진의 로마편, 방송인 전여옥의 일본편, 방현석의 베트남편이 1차로 출간될 예정이다. 해냄의 김소영 편집장은 “처음 여행을 떠나는 여행객을 겨냥한 책은 아니다”라고 전제를 달면서 “일반 관광객이 포착하지 못하는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장소나 현지인들의 삶 등을 작가의 감성에 기대어 소개해 여행가기 전에 많은 준비를 하는 여행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단행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여행 시리즈는 국내뿐 아니라 같은 테마의 해외서적도 포함해 출간된다.

작가와 전문가는 무엇을 보았을까

사진/ 한길사가 펴냔 여행가이드북 '레츠고' 시리즈.
한길사에서 ‘레츠 고’ 시리즈와 병행해 출간하는 한길헤르메스 시리즈도 해냄의 작가여행 시리즈와 유사한 컨셉트의 인문서적이다. 헤르메스는 와인기행(<보르도에서 와인을 마시다>), 차(茶)기행(<동과 서의 차 이야기>), 인도사원순례(<이거룡의 인도사원순례>) 등 여행지의 문화와 예술을 전문가의 식견을 통해 소개하는 기행문 시리즈다. 첫권으로 나온 <르네상스 미술기행>은 영국의 가 기획하고, BBC출판부가 펴낸 미술기행으로 특정한 장소와 작품을 찾아가는 형식의 인문학 에세이다. 또한 한길사는 직접 여행상품 기획에도 뛰어든다. 오는 7월 <보르도에서 와인을 마시다>의 저자 고형욱과 함께 떠나는 와인 산지 기행을 시작으로 한길헤르메스로 출간될 책들을 테마여행 코스로 개발해 저자나 관련 테마 전공자가 현지에서 직접 가이드하는 테마여행도 준비 중이다.

여행잡지 시장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2000년 가을 창간된 일본의 라이선스 여행지 가 꾸준히 독자층을 넓히고 있으며 월간 <행복이 가득한 집>을 발행하는 디자인하우스는 지난해 10월 여행전문지 <도베>(DOVE)를 창간했다. 보보스족을 타깃으로 만든 이 잡지는 경제력 있는 젊은 여행자들을 위한 고급 정보지로, 구체적 정보 중심의 와 달리 여행에 대한 일상적 관심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스타일의 책. 이 밖에 <세계를 간다> 시리즈를 발행하는 중앙M&B도 여행과 레저 정보를 담는 주간지를 올 가을 창간할 계획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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