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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제6의 멸종’이 다가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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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5-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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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자 멸종률 계산의 치명적 오류 많아… 핵심종 생태학적 보존으로 대량 멸종 막아

첨단 제품들에 자리를 내주고 서서히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편리함의 물결 속에 휩쓸려 온갖 사연을 간직한 채 사라지는 것들.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생태학자들에게는 감상적 수사가 어울리지 않는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깊은 절망의 그림자가 있을 뿐이다. 한 저명한 보존생물학자는 은퇴를 앞두고 “모든 것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지 않게 되어 기쁘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량 멸종이라는 지구적 재앙이 눈앞에 다가온 현실을 웅변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이미 상당한 면적의 육지와 해양이 인간의 부적절한 생산활동, 건조물과 갖가지 오염으로 말미암아 심각하게 훼손됐다. 핵전쟁 같은 대격변이 아니더라도 인간이 지나간 모든 곳은 자연의 원형을 잃은 채 소멸의 기로에 놓여 있다. 지구 생태계의 대량 멸종을 예고하는 생태학자들도 많다. 6500만년 전 공룡의 멸종 이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거대한 대량 멸종이 인간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량 멸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경고들

사진/ 지구 생물종의 최대 보고인 아마존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나무를 베어 옮기고 있다. 무분별한 벌목은 핵심종을 위협해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친다.
수많은 생명체들이 유기적인 생명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지구. 현재 과학적으로 규명된 생물종은 대략 140여만종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의 90%가량은 곤충과 연체류 같은 작은 동물들로 열대림이나 해저 등 인간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환경에 살고 있다. 기후대별로 서식 생물종을 살펴보면 한대가 1∼2%, 온대가 13∼24%, 열대가 74∼84%쯤이다. 특히 열대우림은 육지 표면의 7%에 지나지 않지만 생물종의 절반가량이 서식하고 있다. 열대우림 서식처라 해서 생물종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생명의 다양성> 1999년판에서 “열대우림의 파괴로 말미암아 최소한 1년에 2만여종의 동식물이 사라지며 10년마다 10% 안팎의 생물종이 멸종된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동물학자 로버트 메이는 “지난 100년 동안에 일어난 멸종률이 인류가 출현하기 이전보다 1천배가량 가속화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실 지구 생물종의 대량 멸종 가능성에 대한 경고는 새롭지는 않다. 이미 20세기 중반 이후 생물종의 위기를 둘러싼 충격적인 주장이 스테레오타입으로 되풀이됐다. 지난 1979년 노먼 마이어스는 <침몰하는 방주>에서 “해마다 4만여종의 생물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으며, 2000년까지 100만종이 멸종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1980년대에는 미국 스미스소니언협회의 토머스 로베조이 역시 2000년까지 생물종의 15∼20%가 멸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무시무시한 예언들이 줄을 이으면서 대부분의 생태학자들은 거대한 멸종현상이 ‘현재진행형’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인간을 포함한 전체 동식물이 존속 자체를 위협받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게 상식으로 통하는 형국이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불안감은 대재앙의 전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 세계의 동식물 서식지 3분의 1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이번 세기말에는 대부분의 서식지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실제로 지구는 생태 위기로 치닫고 있다. 비단 생태학자들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이를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다. 인간의 생존을 자연환경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과잉 사냥과 어업, 모피와 가죽 등의 상품 생산, 야생식물의 과도한 채취 등으로 생물종의 손실에 직접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서식지 파괴, 외래종·질병의 도입, 환경오염, 유전적 교란 등은 간접적인 영향에 속한다. 물질적 풍요를 위해서 엄청난 자원을 캐낸 뒤 폐기물로 바꾸어 대기와 물, 땅, 바다에 퍼붓기도 한다. 미국 자연사박물관 종다양성보존센터의 프란체스카 그리포는 세계적으로 자주 처방되는 150여 가지의 약물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57%의 약물이 자연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예컨대 아스피린은 버드나무 껍질에서, 항암제 텍솔은 주목에서, 페니실린은 곰팡이에서 얻어지는 식이다. 이런 자연물이 인간의 건강을 돌보는 대가도 만만치 않다. 한타바이러스와 말라리아 등의 전염병이 창궐하는 사태는 대규모의 삼림벌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지구는 지금 ‘제6의 멸종’이라는 참혹한 미래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적어도 생태학자들의 예측에 따른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고생물학자들과 통계학자들의 대량 멸종 예측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은 무엇보다 종이 멸종하는 속도를 알아내는 방법이 불확실성을 근거로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연구자에 따라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물종의 수치마저도 500만종에서 1억종까지 무려 20배 이상 차이가 나는 실정이다. 미래 예측 데이터들은 대부분 생물종의 평균수명도 식물, 포유류, 곤충류, 해양 무척추 동물 등이 비슷한 수명을 가지는 것으로 계산하지만 종간 평균수명은 최소 10배 정도의 차이가 있다. 생태학자들이 일부 식물과 척추동물 위주로 조사를 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런 실정에서 열대우림의 황폐화 속도나 멸종 위협을 받는 동물들의 명단을 토대로 멸종률의 증가를 예측하는 것은 오류투성이라는 것이다. 현재 전체 생물종의 90% 이상이 정확한 통계자료는커녕 이름조차 갖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멸종의 징후를 수치로 보여주는 것은 ‘어설픈 확신’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진/ 멸종이라는 무덤에서 빠져나오는 생물종들. 인도의 들소 가우어.
최근의 생물종다양성 보고에 따르면 멸종실태가 둔화 추세라고 한다. 환경단체들은 ‘희귀종’을 설정해 환경보존의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학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조약’(CITES)만 해도 포유류 320여종과 조류 230여종을 목록에 올려 생물종다양성을 지켜내려고 한다. 이와 함께 현대판 ‘노아의 방주’로 불리는 복제기술을 통해 멸종동물들이 무덤에서 귀환하기도 한다. 인도의 들소 가우어를 비롯해 아프리카의 봉고 영양, 수마트라섬의 호랑이, 자이언트 판다 등이 인간의 힘으로 깨어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백두산 호랑이를 복제하고 있으며 자취를 감추었던 황새를 인공번식으로 부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몇몇 희귀종이 황송한 대접을 받고 멸종동물이 복제기술의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집중파괴지역’(Hot spot)이 되살아날 수는 없는 일이다.

사진/ 강화도의 매화마름.
아무리 희귀한 종이라 할지라도 전체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면,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높은 생물종에 관심을 기울여볼 만하다. 문제는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는 ‘핵심종’(Keystone species)을 찾아내 보존하는 것이다. 핵심 생물종은 먹잇감 개체군의 규모뿐만 아니라 군집의 다양성에도 영향을 끼친다. 예컨대 열대지방에 널리 퍼진 무화과나무에 기생하는 장수말벌이 사라진다면 무화과나무의 수분(종자식물에서 수술의 화분이 암술머리에 붙는 일)이 이뤄지지 않게 된다. 한 개체가 사라지면서 전체 생태계가 붕괴할 수 있는 치명상을 입는 셈이다. 자연의 원형을 유지하는 생태계를 그대로 보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환경경제학자들에 따르면 150만달러만 있으면 약 9천km2에 이르는 면적의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크기의 열대우림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지난해 7월 페루 정부는 환경단체에 13만 헥타르의 면적에 대한 일종의 ‘임대증서’를 내주기도 했다. 국내의 (사)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멸종위기 식물 매화마름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인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의 농지 912평을 매입하기로 했다. 대중적 운동을 통해 ‘개발하지 않을 권리’를 확보해 제6의 멸종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대재앙의 시나리오를 바꿀 수 있다

생물종의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고 대량멸종이라는 재앙의 시나리오를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미국 동부지역과 푸에르토리코 일대의 원시림에서 4세기에 걸친 벌목으로 동식물 군락이 거의 사라졌지만 멸종 조류는 200여종 중에서 8종에 그쳤다. 열대우림 생태연구가 피터 레이븐은 1987년 <지구 생태시스템의 위기>에서 “모든 종의 4분의 1은 다음 30년 동안 소멸할 것이며, 전체 종의 절반 정도가 21세기가 마감되기 전에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생물종이 해마다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아직도 많은 지역에서는 자연도태만으로도 종의 흥망이 결정되고, 삼림의 붕괴로 야생 동식물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여전히 파괴되지 않은 생물다양성 집중지대도 수두룩하다. 지금이라도 그곳을 주목한다면 제6의 멸종으로부터 지구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생물 대재앙이라는 추리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인지 모른다. 인류라는 오직 한 종의 반생태적 활동으로 인해 일어날 지구생물사의 비극을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구를 바꾼 대량 멸종>

지구는 46억년 전에 탄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로부터 6억년 뒤인 40억년 전에 처음으로 지구상에 생명체가 출연했다. 27억년 전에 산소를 발생하는 광합성 생물이 급증했고, 21억년 전에 비로소 다세포생물이 나타났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크기의 생물과 단단한 골격을 갖춘 생물은 6억년 전에 선보였으며 2억 5천만년 전에야 비로소 현대형 생물이 등장했다.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생명체의 흔적은 지층 안에 화석으로 보존되어 있다. 이를 통해 6억년 동안 일어난 대규모의 멸종과 출현 등 생물권의 대격변을 추정할 수 있다. 다섯번의 대량 멸종은 생물권의 중심축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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