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왼쪽부터)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비현실적 외모를 만들어낸 아이돌 그룹 매드몬스터. 매드엔터테인먼트 제공

4월27일 샌드박스 라이브커머스에는 ‘한사랑산악회’의 캐릭터인 김영남 회장과 이택조 부회장이 출연해 바람막이 등을 팔았다. 샌드박스 제공
게임에서 시작된 부캐와 세계관
게임에서 시작된 ‘부캐’가 2019년 말 개그맨 유재석이 <놀면 뭐하니?>(MBC)의 여러 ‘유씨’ 캐릭터를 정점으로 일반인들에게 알려졌는데, 이제 ‘세계관’으로까지 ‘용접’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세계관이란 게임의 시나리오를 이루는 시간적·공간적·사상적 배경을 말하는데 게임의 캐릭터와 전반적인 이야기를 구성하는 뼈대 구실을 한다. 유재석이 유산슬로 2019 MBC 방송 연예인대상에서 신인상을 탄 것은 프로그램 내에 머물던 세계관이 현실 세계로 확대되어 나간 것이다. 개그맨 이창호는 이 분야에서 독보적이다. 매드몬스터 멤버이기도 하지만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코너 ‘비대면데이트’에 나오는 ‘김갑생할머니김’의 이호창 본부장, ‘한사랑산악회’의 이택조 부회장으로 분할된다. 세 개의 캐릭터가 대표하는 세계는 이창호의 현실과는 별개로 움직이다. 이창호는 최근 ‘잘생긴 척해서 죄송하다’는 영상을 올리는 등 이런 간극 자체를 이용해 ‘현실 자신’의 개그 소재로 끌어낸다. 매드몬스터의 세계관에 일반 팬들이 호응하고 이 세계관이 확장하듯, 현실 세계의 기업들은 ‘부캐’를 마케팅으로 이용하면서 세계를 확장한다. 매일유업은 4월 컵커피 ‘바리스타룰스’를 광고하기 위해 이호창 본부장을 캐스팅했다. 재벌3세인 이호창 본부장은 소탈한 척하고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과 상대를 가르치려는 듯한 말투가 특징이다. ‘케이 드라마’라는 세계관 속에서 확장되어 나온 인물인 것이다. 광고에서는 이 본부장이 실제 직원들과 만난다. 매일유업 직원들이 이호창 본부장에게 제품의 장점을 설명하는 발표를 하고, 그의 아재 개그를 참아내며, 노트엔 ‘퇴근하고 싶다’고 적는다. 무려 8분이나 대놓고 제품을 홍보하는 앞광고 영상을 124만 명(5월19일 기준 조회 수) 넘는 누리꾼이 시청했고 댓글은 6천 개 넘었다. 이호창 본부장의 회사인 김갑생할머니김은 이제 실제로 사람들이 먹는 ‘김’으로 되어 나왔다. 성경식품의 ‘성경김’과 협업해 ‘재래식탁김’과 ‘참돌자반’ 2종으로 출시돼 11번가에서 팔렸다. 현실 세계의 상품을 구입하는 것까지 부캐의 세계관이 작용하는 것이다. 부캐의 세계관이 현실 세계를 잡아먹었다고 할까. 
매일유업은 4월, 개그맨 이창호가 아닌 그의 ‘부캐’인 ‘김갑생할머니김의 이호창 본부장’을 활용해 자사 제품을 광고했다. 화면 갈무리
‘내 루돌프’ 이전에 맥주 광고가
누리꾼들은 ‘부캐’에 ‘부캐’로 호응한다. 윤민승(32·가명)씨는 “‘비대면데이트’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현실 소개팅에서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남자들이다. 하지만 묘하게 끌리는 매력이 있고, 현실에서 절대 만나선 안 되는 남자에게 끌리는 것 또한 내 부캐인 셈”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부캐에 부캐로 호응하기 때문에 ‘정체성의 번민 없이’ 놀이문화가 “즐겁다”. 차우진 대중문화 평론가는 옛날과 다른 흐름을 이렇게 짚었다. “<도깨비>라는 드라마를 보고 주인공(공유) 캐릭터가 좋아졌다면 결국 배우 공유 팬이 되지만 최근 부캐들을 좋아하는 대중은 부캐 그 자체를 좋아한다.” 부캐들은 주로 광고용으로 확장 중이다. 라이브커머스(라이브 스트리밍과 전자상거래를 뜻하는 이커머스의 합성어로, 실시간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채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4월27일 샌드박스 라이브커머스에는 ‘한사랑산악회’의 김영남 회장과 이택조 부회장이 출연해 바람막이 등을 팔았다. 이들은 <피식대학>에서 장년층 산악회 회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코너 ‘한사랑산악회’의 캐릭터다. 샌드박스 라이브커머스를 담당하는 최나라 리드는 “캐릭터와 그 세계관을 이해한 소비자들이 상품을 소재로 대화를 주고받기도 하고 장난치기도 하면서 자연스레 시청 지속 시간이 길어졌다”며 “실제 매출 상승에도 많이 기여했다”고 말했다. 광고주가 아닌 부캐가 직접 만드는 광고 영상은 콩트에 가깝다. ‘한사랑산악회’ 회원들은 각각의 캐릭터를 살려 스마트폰 사용법을 보여주며, 엘지(LG)유플러스 5G 프로모션을 소개하고, ‘05학번 이즈백’은 온라인 개강총회를 열면서 맥주 ‘필굿’을 광고했다. 매드몬스터의 <내 루돌프> 뮤직비디오 역시 맥주 ‘카스’ 광고에 가깝지만 뮤비 형식을 빌린 셈이다. 부캐는 ‘광고지만 보게 되는 매력’의 요소가 된다. “매드몬스터가 음원을 낸 것은 원래 광고용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부캐를 활용한 콩트도 마찬가지다. 콘텐츠를 기반으로 자금이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제작비를 마련하는 영리한 방식이다.”(차우진 평론가) 광고조차 놀이문화로
광고가 자연스럽게 놀이문화로 영입되는 것은 MZ세대가 자본주의에 친숙한 세대기 때문이다. 뒷광고 논란에서는 누구보다 민감했으면서도, 대놓고 하는 앞광고에는 요소를 따져가며 열광한다. “자본주의 키즈는 자신의 돈과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스스로 선택하기를 원하는 주체성이 강한 소비자로, 뒷광고로 인해 광고를 수용할지에 대해서 선택과 주체성을 훼손당했다고 여기는 반면 광고를 콘텐츠 흐름상에 지장 없이 녹여낸 경우 오히려 제작진의 능력을 격찬하는 등의 반응을 보인다. 좋은 콘텐츠의 경우 광고를 이용자가 좋은 콘텐츠에 대한 대가로 생각해 자신이 좋아하는 창작자의 수익을 증대시켜주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인다.”(주용완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본부장,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주역 MZ세대 분석 및 제언’, 2021 KISA REPORT)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