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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호킹 박사에게 꿈의 컴퓨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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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5-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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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과학으로 세상읽기

일러스트레이션/ 차승미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근무하는 켄트 컬러스 박사는 전파천문학자이자 컴퓨터 프로그램 전문가다. 그는 명석한 두뇌와 탁월한 연구 업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딛고 그 같은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기에 더욱 유명해진 인물이다. 영화 <컨택트>에는 그를 모델로 해서 ‘켄트 클라크’라는 앞으로 보지 못하는 NASA 과학자가 등장하기도 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나 수학자, 이론물리학자들 중에는 몸은 불편하지만 탁월한 연구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많다. 스티븐 호킹 교수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천재 수학자 오일러 역시 한쪽 눈을 실명한 뒤에도 연구활동을 활발히 했으며, 17세기 수학자 니콜라스 손더슨은 12살 때 천연두로 양쪽 눈의 시력을 잃었지만 대수학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머릿속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한 분야였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17세기 수학 분야와는 달리 최근에는 수학이나 이론물리학 분야도 컴퓨터의 도움 없이는 좋은 연구를 하기 힘든 삭막한(?) 시대가 되었다. 이런 과학의 시대에 장애를 겪고 있는 과학자를 위해서, 아니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수많은 장애인을 위해서 과학자들은 ‘눈치 빠른 컴퓨터’를 개발하고 있다. 만약 이런 과학자들의 연구가 성공한다면, 거동할 수 없는 사람들이 눈으로 한번 힐끗 쳐다보기만 해도 알아서 컴퓨터 화면의 커서가 움직이고, 생각하는 내용이 컴퓨터 화면에 그대로 실행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1849년 독일의 생리학자 드 보아 레이몬드는 사람이 근육을 움직이면 움직이려는 근육에서 전기신호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반대로 강제로 전기신호를 가하면 근육이 움직이지 않을까? 그는 곧바로 실험에 착수했고, 죽은 개구리에게 전기신호를 가했더니 개구리 다리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이 실험이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 상상해보시라. 당시 사람들은 ‘이 원리대로라면 죽은 사람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인간도 거대한 기계장치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소설가 메리 셸리는 과학자들의 이런 실험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경고하기 위해 <현대의 신화: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설을 쓰기까지 했다.

150년이 지난 지금 과학자들은 ‘근육이 움직일 때 나오는 전기신호를 컴퓨터나 기계장치에 보내면 컴퓨터나 기계장치를 마음대로 작동시키거나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1993년 미국의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워너는 교통사고 이후 목 아랫부분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환자인 10살짜리 소년과 흥미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이 소년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얼굴뿐이었는데, 소년이 얼굴 근육을 움직이면 그 신호를 1만배 크기로 증폭한다. 이를 컴퓨터로 보내면 컴퓨터 스크린의 물체가 움직이는 것이다. 예컨대 오른쪽 볼을 움직이면 물체가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왼쪽 볼을 움직이면 왼쪽으로 움직인다. 볼을 움직이는 정도에 따라 움직이는 거리가 정해진다.


컴퓨터 공학자들의 최근 연구 테마 중 하나는 아예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그냥 생각만으로 뇌에서 발생하는 전기신호, 즉 뇌파를 통해 컴퓨터가 작동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이 등장한다면, 호킹 박사 머릿속에 있는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아이디어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 지난 4월20일은 제22회 장애인의 날이었다. 몸이 불편한 것이 장애가 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서 ‘눈치 빠른 컴퓨터’가 빨리 등장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complex.korea.ac.kr

(고침: 지난호(406호) ‘미래의 감옥’에 인용된 미국 감옥의 재소자 수 3500만명이 사실과 다르기에 바로잡습니다. 미 법무부 조사에 따르면 1999년 현재 미국 교도소에 수용된 재소자가 184만명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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