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문화사> <역사의 거울…>이 탐구하는 자살의 동력
최근 30대 직장인과 여고생 두명의 동반자살을 계기로 한동안 잠잠하던 자살 사이트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자살 관련 사이트가 자살을 조장하네, 마네 하는 따위의 낮은 수준의 논쟁은 제쳐두고라도 자살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다. 좀더 급진적인 부류는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인간의 존엄성 차원에서 주장하고, 기독교에서는 여전히 자살을 살인과 다름없는 죄악으로 간주한다.
자살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분석을 통해 ‘이기적 자살’과 ‘이타주의적 자살’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인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은 자살을 이렇게 정의내렸다. “자살이란 희생자 스스로가 행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어떤 행위에서 비롯되고, 그러한 행동의 결과가 죽음이라는 것을 스스로 아는 경우를 말한다.” 자살은 결국 개인의 선택이지만 희생자가 속해 있는 사회나 종교, 질병이나 궁핍 등 개인을 둘러싼 환경과 나누어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자살과 체제유지
최근 나온 두권의 책은 자살이 시대와 사회의 의지에 따라 어떤 식으로 그 가치가 변모되고, 개인에게 그 손을 뻗어오는지 엿볼 수 있게 있게 해준다. 독일의 젊은 출판인 게르트 미슐러가 쓴 <자살의 문화사>(시공사)는 고대 그리스 이래로 유럽문화권에서 자살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에 대해 흥미로운 자료들을 펼쳐 놓는다.
기원전 264년 아테네에서 이미 100살을 바라보던 철학자 제논은 학교로 가는 길에 건물의 층계를 내려가다가 넘어져 손가락이 부러졌다. 그는 “이미 가고 있는데, 왜 나를 부르느냐”고 크게 소리친 다음 목을 졸라 자살했다. 이처럼 고대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은 대부분은 추호의 의심 없이 죽음을 택했고, 죽음을 결코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설파했다. 그들에게 “자살은 삶의 모든 장애물을 통과하면서 일체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인격과 자유와 존엄과 관심사를 유지하는 해결책”이었다. 고대 로마 역시 자살이 유행에 가까울 정도로 널리 퍼져 있었다. 향락적이던 고대 로마의 귀족들은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을 위해 성대한 마지막 축제를 벌이곤 했다. 그러나 이 ‘자유로운 죽음의 사도’는 오로지 상류층의 몫이었다. 노예의 자살은 법으로 금지돼 있었고, 자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한 노예는 팔릴 때 꼬리표가 붙었고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 경우 6개월 안에 반환할 수 있었다. 이것은 자살이 체제유지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교회가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한 중세부터 자살금지령이 매우 엄격하게 시행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교회가 자살에 도덕적 추방을 가한 것은, 자기 자신을 죽일 수 있는 힘을 지니면서 동시에 세계관적, 교회법적인 형벌에 함께 영향을 미치던 개인의 자격을 빼앗기 위함이었다.” 구교와 근대 이후 신교가 유일하게 공유한 신념은 자살은 ‘악마의 작품’이라는 확신이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계몽주의와 과학의 발전은 자살을 처벌에서 치료의 대상으로, 그리고 이성적인 인간의 선택의 문제로 바꿔 놓았다. 볼테르는 저서 <철학사전>에서 삶을 등지려는 사람의 결정을 인정하면서도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8일은 기다리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계몽주의 시대를 지나 낭만주의에 이르면 유명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자살 스캔들처럼 자살이 병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귀족들은 “치장하고 멋부리는 것이 극에 달해 장신구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죽어”나갔다. 이 시대 결투는 자살을 포장하기 위한 방법으로도 자주 이용됐다.
자살을 사회병리학과 연관해 연구하게 된 20세기 이후 유대인 집단수용소에서의 자살률에 대한 연구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 토마스 브로니슈는 아우슈비츠에서의 자살률이 낮았던 이유를 “수용된 사람들 대부분이 깊은 절망감에 휩싸여 자살할 용기를 낼 힘조차 없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는 우울증 환자들의 자살률이 증상이 심할 때보다 회복기에 높아진다는 현대의 통계와도 맥이 닿는다.
글쓴이는 맺음말에서 “사회가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하는 한, 이 사회는 삶을 영위하는 것이 더 이상 자유와 존엄을 허락하지 않을 때 스스로 삶의 종지부를 찍어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권리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한다. 이 주장은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병상에서 죽음보다 못한 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늘어나고, “사회는 평소 그(자살자)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그들이 병원에 실려 들어오면 마치 ‘소중한 보물’이나 되는 것처럼 감싸 안는” 현실에서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죽음과의 대결에서 진 헤밍웨이
오스트리아의 전기작가 프리드리히 바이센슈타이너가 쓴 <역사의 거울에 비친 세기의 자살자들>(한숲)은 빈센트 반 고흐, 슈테판 츠바이크, 어니스트 헤밍웨이, 아돌프 히틀러 등 근대 이후 역사에 족적을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등진 7명의 인물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를 전기적으로 기술했다. 세계적인 전기작가로 이름을 날린 츠바이크의 자살은 사회의 변화가 어떤 식으로 개인에게 죽음의 길을 열어놓는지 보여준다. 1881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1차대전까지 약 30년의 시간을 “황금시대”라고 표현했던 츠바이크는 ‘어제의 세계’가 무너지는 걸 목도하면서 인간적으로 견딜 수 없는 치욕을 느낀다. 특히 2차대전 때 유대인 박해를 피해 망명을 떠나면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무가치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치밀하게 죽음을 준비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장서 한권 한권에 물려받을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고, 그들 모두에게 이별의 편지를 쓴 다음 배우자와 함께 독약을 마셨다.
살아생전 돈키호테처럼 전장을 쫓아다니면서 온몸에 중상을 입으며 죽음과 가까이 지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권총 자살에 대해 지은이는 “스스로 만들어 놓은 ‘마초’ 이미지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목숨을 끊었다”고 결론내린다. “죽음이 언제나 인간을 이기고 승리하며 승자도 최후에는 빈손으로 나간다”고 말한 헤밍웨이의 도저한 허무주의는 과도한 남성성, 혹은 죽음과 맞섬으로 드러났고, 이를 위한 물리적 힘이 쇠하자 결국 자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에 소개된 7명의 인물 가운데 네 사람은 함께 죽을 동반자를 찾았고 결국 구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분명 홀로 세상과 작별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자살의 문화사> 게르트 미슐러 지음, 유혜자 옮김, 시공사 펴냄, 8500원. <역사의 거울에 비친 세기의 자살자들> 프리드리히 바이센슈타이너 지음, 신혜원 옮김, 한숲 펴냄, 1만2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