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매달리는 건 싫다”
등록 : 2002-04-24 00:00 수정 :
소설가 권지예(42·동해대 국문과 교수)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교직에 있다가 뒤늦게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고, 공부가 막바지에 이른 6년 전 늦은 나이에 등단했다. 파리7대학 동양학부에서 ‘한국근대문학의 여성문제’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내 소설의 주인공들은 남자와 여자라는 성정체성보다 그냥 인간으로 서로를 이해한다. 불륜 자체만을 다루려고 소설을 쓴다면 인간적 분노를 주로 그린 텐데, 인간을 이해하고 더 자유로워지는 전제조건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려고 불륜을 소재로 썼다. 불륜의 후일담 같은 식이다. 주인공들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이다. 불륜이란 사건을 소화할 수 있는….”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결혼과 결혼 밖의 사랑을 동시에 인정한다. 현실에서도 이게 가능할까?
“결혼을 하고 외도를 하는 경우, 어떤 선택을 하게 되면 어느 쪽이든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인간적으로 자기 감정을 본능적으로 좇는다면 결혼보다 사랑하는 쪽을 선택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그 사람과의 관계 역시 결국 예전의 상태처럼 돼버리게 마련 아닌가? 결혼을 포기하고 또 다른 사랑을 선택하는 것에도 비관적이다. 현실적으로, 열정을 믿기 보다 인간적 의리나 도리를 지키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다만 새로운 사랑이 오면 자기 존재를 다 바칠 필요는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해보는 경험은 자기 존재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준영처럼 애초부터 결혼제도 속으로 뛰어드길 거부하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인간에게 안정감을 원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도 현실이다. 결혼에 대한 원칙적인 거부감보다 결혼에 대한 냉철한 의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단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져서는 곤란하다. 또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의 속성은 변하게 마련인데, 이걸 성숙된 인간으로 가는 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집착하면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다. 이걸 불륜으로 해결하라는 건 물론 아니다.”
여성주의적 관점이 관철된 캐릭터라고 할 수 없을지 몰라도 남녀가 놓인 상황은 거의 대등하다.
“여자니까 상처받고 남자에게 연연해하는 모습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여자 주인공이 사랑을 하면 한걸음 뒤로 물러나게 한다. 당당하고 주도적으로 했으면 해서. ‘사랑하는 데 이 남자가 날 차면 어쩌지’ 하고 연연해하지 않으면 좋겠다. 여자들이 매달리고 이러는 거 싫다.”
이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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