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부상·장애 등 난관 딛고 시드니에 입성한 영웅들… 불굴의 의지는 금메달과도 바꿀 수 없다
승리가 아름다운 것은 결코 환상적인 기량 때문만은 아니다. 지칠 줄 모르는 도전정신, 시련과 맞싸운 강인한 힘, 절망의 터널을 뚫고 질주하는 불굴의 의지가 그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새 천년 첫 올림픽무대 시드니. ‘그들’ 역시 금메달 고지를 향해 달린다. 하지만 그들에게 금메달은 더이상 불변의 목표가 아니다. 악마의 저주와도 같은 험로를 헤치며 도달한 시드니. 시드니 입성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인간승리의 찬란한 훈장을 받은 그들이기에 올림픽 금메달도 장식에 불과할 뿐이다.
전세계 암환자들에게 꿈을 주겠다!
랜스 암스트롱(30·미국)에게 올림픽은 한의 무대이다. 22살의 나이에 도로 사이클의 최강자로 떠오른 그는 금메달의 꿈을 안고 92바로셀로나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실망의 벽에 부딪혔다. 남자개인도로 14위. 자신의 레이스에 낙담한 암스트롱은 각고의 4년을 보낸 뒤 자신있게 96애틀랜타올림픽에 나섰다. 93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이기에 누구나 예상했던 승리였지만 컨디션 난조로 남자개인도로 12위, 1㎞개인속도 6위에 그쳐 또 올림픽에 실패하고 말았다. 다시 4년을 기다려야 하는 승부, 그러나 다음 올림픽은 그의 운명에 없는 듯했다.
올림픽 피로가 풀릴 시간이 지났음에도 계속 좋지 않은 몸 컨디션. 별 생각없이 찾은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생존율 50% 이하의 고환암. 사이클은 둘째고 살아남는 것이 급선무였다. 고환과 뇌의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했다. 세계 사이클계에서 랜스 암스트롱이라는 이름을 지워야 할 단계였으나 그는 절망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3년여에 걸친 항암치료와 재활훈련. 마침내 벼랑 끝에서 사선을 뛰어넘은 암스트롱은 99년 7월 세계최고 권위의 도로사이클대회 투르 드 프랑스를 석권, 인간의지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3630㎞를 92시간33분8초에 달려 올 7월의 대회에서마저 우승, 투르 드 프랑스를 2연패한 암스트롱. 그래서 그의 시드니올림픽은 결코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독일의 얀 울리히, 이탈리아의 마르코 판타니 등이 그의 길을 막고 나서겠지만 암스트롱은 반드시 금메달을 획득하겠다는 각오. 라이벌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투병중인 전세계 암환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마하 인간’ 도노반 베일리(캐나다)에게 4년은 무척 긴 세월이었다. 농구와 육상을 오가다 24살의 늦은 나이에 육상에 전념한 늦깎이 스프린터. 그는 96년 애틀랜타올림픽 전후로 극과 극을 달렸다. 무명의 도노반 베일리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올림픽 1년 전인 95년. 그해 4월 9초99로 처음 9초대 진입에 성공한 뒤 3개월 뒤 국내대회에서 9초91을 기록, 세계 육상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 95세계육상선수권에서 9초97로 우승, 스타로 급부상한 뒤 애틀랜타올림픽에서 강력한 라이벌들을 젖히고 우승했다.
인간 탄환들의 경연장인 남자 100m. 182cm, 83kg의 도노반 베일리는 70m까지 프랭키 프레데릭스, 아토 볼든과 수평레이스를 벌였다. 그러나 베일리는 70m부터 불 같은 막판 스퍼트로 가장 먼저 결승테이프를 끊었다. 종전 최고기록 9초85를 2년 만에 0.01초 단축한 9초84의 세계신기록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공식 등록된 베일리는 이후 ‘인생의 허들경기’를 해야 했다. 97년 교통사고로 겨우 목숨을 건졌고 98년엔 축구경기 중 아킬레스건을 다쳤다. 또 경기 중 장딴지 부상으로 레이스를 포기한 일도 있었다. 아킬레스건은 육상선수의 생명. 0.01초를 다투는 스프린터에게 그것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육상인들은 그의 도중하차를 애석해했고 그러한 우려대로 그는 1년여 동안 침묵 속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오랜 무명생활 속에서 뜻을 꺾지 않았던 그는 결코 그대로 사라지지 않았다. 조심조심 몸을 관리하며 재기의욕을 불태웠고 99년 6월 복귀전을 가졌다. 기록은 좋지 않았다. 10초51로 예선탈락. 그리고 올 2월 아테네실내육상대회 남자 60m예선에선 잇단 부정출발로 실격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그러나 모두 오랜 부상 탓이었을 뿐 그이 발이 녹슨 것은 아니었다. 시드니올림픽이 다가오면서 점차 컨디션을 회복한 베일리는 마침내 9초대에 진입, 캐나다 육상 재건의 선봉장으로 나섰다.
베일리의 올림픽 2연패. 쉬운 목표는 아니다. 친구이자 라이벌인 세계기록 보유자 모리스 그린(9초79·미국)과 아토 볼든(트리니다드토바고)의 우승의지와 실력이 베일리 못지않기 때문이다.
부상 딛고 5관왕 신화에 도전
미국 여자 육상의 슈퍼스타 매리언 존스(25), 중거리의 에이미 루돌프, 장대높이뛰기의 로렌스 존슨 역시 비운의 올림픽 스타들. 존스는 시드니에서 올림픽 육상사상 76년 만에 단일대회 5관왕 신화에 도전한다. 남녀 통틀어 올림픽 육상 최다관왕인 5관왕은 1924년 파리올림픽의 파르보 누르미(핀란드)밖에 없다. 존스는 16살 때인 92년 전미선수권 100m에서 5위를 차지해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계주선수로 선발됐으나 거부했다. 이유는 단 하나, 후보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96애틀랜타올림픽에서 당당히 주전으로 출전하겠다며 올림픽 데뷔무대를 미루었으나 올림픽을 앞두고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해 뛰어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절망을 오히려 새출발의 전환점으로 삼았다. 대학에서 농구선수로도 활약했던 그는 부상 뒤 육상에 전념, 1년 만에 완전 재기에 성공했다. 97전미선수권 여자 100m에서 그웬 토렌스 등 노장들을 물리치고 우승한 뒤 멀리뛰기에서도 대회 8연패를 노리던 재키 조이너 커시를 누르고(6m93) 2관왕을 차지했다. 그리고 97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100m에서 우승, 큰별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존스가 노리는 5개의 금메달은 100m, 200m, 400m, 1600m계주와 멀리뛰기. 멀리뛰기와 1600m계주가 걸림돌이지만 어쨌든 그는 시드니올림픽 최고 스타가 될 것이다. 에이미 루돌프는 97년부터 악성빈혈과 싸우며 시드니를 준비했다. 94전미대학육상 중거리 챔피언이었던 루돌프는 빈혈치료를 위해 4주에 한번씩 의사의 검진을 받고 철분을 보충하기 위해 주사와 알약을 항상 휴대하고 다녔다. 지난해 국제대회에서 예선탈락하는 등 크게 부진하자 모두들 그의 은퇴를 예견했으나 올 초부터 놀라운 투혼을 발휘, 기록을 단축함으로써 또 한편의 인간승리 드라마를 연출하려 하고 있다.
96애틀랜타올림픽 여자 200m와 400m 2관왕 마리 호세 페렉(프랑스). 그의 시드니올림픽 길도 만만찮다.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부터 400m 1인자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페렉은 96년 올림픽 직후 엡스타인 바 병이라는 만성피로증후군에 시달렸다. 32살이라는 나이까지 감안하면 시드니올림픽은 무리. 은퇴가 당연한 순서였고 주위에서도 말렸다. 그러나 페렉은 올해 초 프랑스 니스 국제육상대회에서 400m 3위에 올라 다시 한번 올림픽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니스에서 이미 승리를 경험했다”는 페렉. 강력한 우승후보 캐시 프리먼(호주)이 도사리고 있어 400m 3연속 올림픽 금메달이 쉽지 않겠지만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도전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96애틀랜타올림픽이 지금도 가슴 아픈 추억으로 남아 있는 미국 수영계의 스타 게리 홀 주니어. 수영의 ‘살아 있는 전설’ 알렉산데르 포포프(러시아)에게 자유형 50m와 100m에서 모두 패배, 은메달에 머물렀다. 눈물을 삼키며 4년 뒤를 기약했지만 그 4년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98년 마리화나 양성반응으로 3개월 자격정지를 당했고 갑자기 당뇨증세가 일어나 매일 8차례 인슐린주사를 맞아야 하는 고통의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런 불운 속에서도 그는 포포프와의 올림픽 재대결을 벼르며 아픔을 뛰어넘었다. 게리 홀 주니어는 미국대표 선발전 자유형 50m 결승에서 21초76을 마크, 90년 3월 톰 재거가 세운 미국기록(21초81)을 10년 5개월 만에 경신하며 “시드니에서 금메달을 따 72년 뮌헨, 76몬트리올올림픽에서 은·동메달에 그친 아버지의 한을 풀겠다”고 장담했다.
밀라 러년 “달릴 땐 환하게 보인다”
게리 홀의 연이은 도전에 직면한 포포프는 남자 수영사상 최초로 3연속 올림픽 2관왕을 바라보고 있다. 92바르셀로나올림픽과 96애틀랜타올림픽 자유형 50m와 100m 금메달을 휩쓴 수영계의 황제. 하지만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는 애틀랜타올림픽 직후 거리에서 수박장수가 우발적으로 휘두른 칼에 복부를 찔려 6개월 이상 병원에 입원하며 선수생명에 결정적인 위기를 맞았다. 더구나 99년 유럽선수권대회서 부진, ‘포포프의 시대도 갔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올 유럽선수권대회에 자유형 50m 등 4개종목 우승을 차지, 건재를 과시했다. 그는 특히 지난 5월 10년간 깨지지 않고 있던 자유형 50m 세계기록을 경신했으며 6년 전 자신이 세웠던 자유형 100m 세계기록마저 깼다.
“시드니에서 세계최고의 스프린터가 될 것”이라는 게리 홀 주니어와 “올림픽에서 세번 연속 우승, 역사에 남는 선수가 될 것”이라는 포포프. 각각 서로 다른 어둠의 터널을 뚫고 시드니에 도착했기에 이들의 금메달 승부는 더욱 의미가 있다.
말라 러년(31·미국)의 시드니는 정말 특별하다. 그의 올림픽은 이번이 세 번째. 92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4관왕에 올랐고 96애틀랜타올림픽에서 7종경기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그 두번의 올림픽은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이었다. 올림픽은 세 번째지만 보통 사람들의 올림픽은 처음이고 올림픽이 시각장애인을 받아들이는 것도 처음이다. 9살 때 퇴행성 시력장애를 일으킨 그는 30㎝ 내의 물체만 어렴풋이 볼 수 있을 뿐인데 앞뒤와 옆에서 달리는 선수의 발자국 소리로 방향을 잡는다. “달릴 때는 세상이 환하게 보인다”는 그는 여자 1500m 등에 출전, 메달을 다툰다.
러년을 비롯 질곡의 세월을 넘어 온 많은 올림픽 건각들. 그들이 메달을 획득할 가능성은 어쩌면 그리 높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금메달은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세계인의 가슴에 심은 무한한 인간의지는. 한번의 승리, 한개의 금메달과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아닌가.
이영만/ 경향신문 기자

(사진/고혈압에 걸려 3년간의 재활훈련과 항암치료 끝에 재기에 성공한 핸스 암스트롱. 모든 암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올림픽 피로가 풀릴 시간이 지났음에도 계속 좋지 않은 몸 컨디션. 별 생각없이 찾은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생존율 50% 이하의 고환암. 사이클은 둘째고 살아남는 것이 급선무였다. 고환과 뇌의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했다. 세계 사이클계에서 랜스 암스트롱이라는 이름을 지워야 할 단계였으나 그는 절망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3년여에 걸친 항암치료와 재활훈련. 마침내 벼랑 끝에서 사선을 뛰어넘은 암스트롱은 99년 7월 세계최고 권위의 도로사이클대회 투르 드 프랑스를 석권, 인간의지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3630㎞를 92시간33분8초에 달려 올 7월의 대회에서마저 우승, 투르 드 프랑스를 2연패한 암스트롱. 그래서 그의 시드니올림픽은 결코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독일의 얀 울리히, 이탈리아의 마르코 판타니 등이 그의 길을 막고 나서겠지만 암스트롱은 반드시 금메달을 획득하겠다는 각오. 라이벌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투병중인 전세계 암환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사진/부상으로 재기의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도노번 베일리. 캐나다 육상 재건의 선봉정으로 나섰다)

(사진/5개의 금메달을 노리는 여자육상계의 슈퍼스타 메리언 존스 그에게도 부상의 아픔이 있었다)

(사진/92년 바로셀로나올림픽 때부터 400M 1인자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마리 호세페렉. 병마를 이기고 다시 금메달에 도전한다)

(사진/마리화나 양성반응에 이어 당뇨증세로 고통의 세월을 보낸 미국 수영 스타 게리 홀 주니어. 은메달에 그친 아버지의 한을 풀겠다고 다짐한다)

(사진/부진의 늪에서 헤어나 올림픽에서 3연속 2관왕을 노리고 있는 알렉산드로 포포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