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정의 휴먼포엠
이정자 원장이 지키는 성북동 아기들의 집, 국내입양 최초 전문기관 성가정 입양원
성가정 입양원으로 가는 서울 성북동의 언덕길은 몹시도 가파랐다. 입양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은 분명 나보다 인격적으로 훌륭할 것이며 품성 또한 부드럽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마당에 들어서니 햇볕 좋은 날 아기들을 얹고 다녔을 조랑말 짐수레가 초록 뜰에서 맨 먼저 인사를 한다. 갓난이 아기들이 있는 집이 그렇듯 주위는 아늑하고 조용했다.
원장인 이정자(레나타) 수녀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전화기를 든 폼이 아기 키우느라 여념이 없는 엄마의 모습이다.
새근새근 낮잠 자는 서른다섯 아기들
성가정 입양원이 “우리 아기 우리 손으로”라는 신념으로 첫번째 국내입양 전문기관으로 출발한 지 어느덧 13년. 아직도 국내입양은 해외입양의 수에 턱없이 밀리지만 이 수녀는 그동안 차근차근 걸어온 길이 참으로 보람차다.
“정말 시작할 때만 해도 국내입양은 거의 불모지였지요.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동안 이곳을 통해 1600여명의 아기가 엄마·아빠의 품을 찾아갔다. 지금은 2층에 두살까지의 서른다섯 아기가 새근새근 낮잠을 자고 있다. 그들을 위해 수녀들과 직원들 모두 18명 늘 둘레에 서 있지만 손길은 늘 모자란다.
“애기들한테 미안해요. 아이는 많이 안아주고 스킨십도 많이 해줘야 하는데… 가정에서는 아이 하나 키우는 데 모두가 달라붙잖아요. 우리는 거의 군대식으로 키우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아이는 그렇게 키우면 안 되거든요.” 마음 같아서는 종일 아기들을 안아주고 싶지만 원장으로서 할 일은 어서 좋은 부모를 만나게 해주는 일이다.
아기들은 어떤 부모들을 만나서 가나요?
“지금 우리 집에 찾아오는 분들의 95%가 불임부부들이세요. 우리 사회가 핏줄을 중시하잖아요. 인위적인 방법은 다 동원한 뒤에 마지막으로 저희를 노크하는 분들이지요.” 주로 비밀 입양을 원하는 양부모들은 아기를 안는 순간부터 완전히 친부모가 되고 싶어한다.
“입양사실이 결국 가족친지에게까지 알려지긴 하겠지만 대부분 주위 이웃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은 꺼립니다. 아마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부모 당사자만 아는 비밀로 하고 싶은 마음일 겁니다. 아직 주위 시선이 견디기 힘든 실정이니까요.”
그런 마음을 헤아려 부모 될 사람들의 혈액형과 아기 것을 맞추고 성별도 택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 수녀는 “불임부부가 자신들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이를 데려가게 하지는 않는다”고 침을 놓았다.
방마다 벽마다 아기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약간은 나이가 있음직한 엄마아빠가 아기를 안고 돌상 앞에서 한껏 웃는 모습도 보인다. 유자녀가정 입양의 경우다. 이 수녀가 일부러 마련한 자리에 장찬미씨(45)가 와주었다. 그에게는 고등학생·중학생 아이가 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이제 13개월 된 아기를 입양했다.
찬미씨의 ‘가슴으로 낳은 아이’
“석영이가 저 방에서 자고 있어요.” 우리는 석영이가 깨기 전에 얼른 얘기를 마쳐야 할 것 같았다. 아기가 엄마를 찾다가 울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찬미씨는 나보다 훨씬 인상도 좋고 마음도 너그러워 보였다.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계기가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그는 작년에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어느 날 아기방 구들장 공사가 있어서 아기들이 잠시 다른 곳에 가 있어야 했다. 원장수녀는 평소 눈여겨본 열심한 봉사자들에게 이 일을 부탁했다. 찬미씨는 ‘일주일만’ 아기를 안고 집으로 갔다.
“전 쉽게 생각했어요. 저희 애들 키울 때 생각하면서 키우면 되겠다 싶었지요.” 약속한 일주일 뒤 아기는 다시 입양원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애기 냄새가 나고, 까만 눈이 보고싶고, 못 견디겠더라고요. 또 우리 아이들이 애기 데려오라고, 당장 데려오라고… 그날 저녁 다시 데려왔지요.” 그 뒤 몇 개월간 찬미씨는 위탁양육인 ‘사랑의 부모’로 석영이를 키웠다. 좀더 신중하게 아기를 ‘데려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윳병을 물리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기에게 물어보았다. 목욕물을 첨벙거리며 까르르 웃는 아기를 보듬어 안은 채 물어보기도 했다. 이 아기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저, 그동안 참 많이 울었어요. 가슴이 텅 빌 정도로요.” 찬미씨는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고 했다. 아기에게 줄 거라고는 사랑밖에 없지만 정말 잘 키울 거라는 그의 얼굴이 빛나 보였다.
이 수녀는 유자녀 입양이 더욱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불임부부는 아이에 대한 간절함이 있는 분들인데, 유자녀 가정은 아쉬움은 없는 분들이지요. 자칫 이미 자식을 키워보신 분들이니 친자식과 비교할 수도 있지요. 그런 점이 커가는 아이에게 상처가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온 가족을 상담한다. 너희가 정말 동생을 원하느냐? 엄마·아빠가 나이가 드신 후에도 동생을 돌볼 거냐? 누나 말 안 듣고 고집 피워도 참아줄 거냐? 어떤 부모들은 큰애들에게 미리 각서를 받아오기도 한단다. “모두가 완전히 동의해야 아기를 보낼 수 있어요.”
그때 밖에서 아기가 칭얼거리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엄마’한테 매달려 우는 것일까? 2층에는 보육사 엄마들, 자원봉사 나온 엄마들이 부지런히 아기들에게 우유를 먹이고 도닥거리며 안아 재우고 장난감을 흔들며 놀아주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신청한다고 한다. 일정한 교육을 거친 다음 이루어지는 자원봉사는 후원회 활동과 더불어 입양원의 중요한 두축이다. 특히 후원회는 전체 예산의 70%나 도맡아 2%에 지나지 않는 국가지원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성가정 입양원은 미혼모들의 쉼터인 ‘성심어머니의 집’과 연결되어 있다. “미혼모들에 대한 우리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믿어요. 그들은 소중한 생명을 책임진 이들이잖아요?” 사실 이곳에 자원봉사하러 오는 어른들 중에도 자기 딸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미혼모보다는 낙태 쪽을 권할 것 같다고 고백한다고 한다. 평생 상처를 각오하고 아이를 이 세상에 내놓기로 한 그들의 용기를 ‘철없는 실수’라고 손가락질해서는 안 된다고 이 수녀는 강조하며 자신들의 책임이 더욱 무겁다고 한다.
“제게서 받지 못한 사랑, 좋은 부모 만나 많이많이 사랑받으며 살 수 있게 해달라”던 친모의 눈물어린 편지를 기억하는데 어찌 함부로 할까. 그러나 입양조건이나 절차가 너무 까다로운 게 아니냐며 토를 다는 이들도 있다.
돌아오는 장애아
“이건 아이들의 인생, 한 인간의 인생이 걸린 문제입니다. 아기들은 이미 한번의 큰 고통을 당했어요. 다시 한번 그런 고통을 당하게 해선 절대로 안 되니까요.” 순간 잔잔한 이 수녀의 표정에 서늘한 바람이 스치는 듯했다. 아기를 위해서라면 그까짓 흰소리야 얼마든지, 언제라도 감당한다는 의지였다.
이 수녀는 오는 5월25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국내입양과 관련한 인식전환과 홍보를 위해 ‘걷기대회’를 할 예정이다. “많이 와주세요.” 작은 걸음걸음이 모여 언젠가는 장애아동 입양문제까지 풀어줄지도 모른다.
“장애가 있어서 아기가 돌아올 때가 있어요… 제 가슴이 아기만큼 아플까요? 저희가 진찰을 면밀히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나타나는 장애가 있을 수 있거든요. 끝까지 책임지는 분들도 있고,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분도 있고….” 장애 때문에 입양이 ‘보류된’ 두살배기 장애아기인 용미를 안고 이 수녀가 말했다.
여기 일을 맡기 전 장애아동 재활활동 일을 하던 이 수녀는 무엇보다 조기치료에 대한 확신이 강하다. 처음에는 다리도 펴지 못하던 아기들이 마침내 도르르 달려가는 경우를 그는 많이 지켜보았다. 앞으로는 더욱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갈 계획이다. 즉 장애아기들을 위한 치료시설을 갖춘 집을 마련해서 그 아기들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제대로 시설을 갖추지 못해서 다른 데로 보낸 아기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요. 미리 생각한 사람들이 실천도 미리 해야죠. 아직 장애아기 입양은 많이 어려워요. 저희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처음 국내입양을 시작할 때도 지금 같았거든요. 근데 지금 많이 좋아졌잖아요.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아 입양이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는 세상 어떤 존재보다 강하다. 그러나 수녀엄마는 그냥 엄마보다 더 강해보였다. 그가 지키는 성북동 아기들의 집은 정말 든든하고 따스하고 예뻐보였다. 올 때보다 마음이 성큼 더 넓은 사람이 되어 나는 '가파르지 않은' 봄날의 언덕을 내려왔다(문의:02- 764-4741∼3).
자유기고가

사진/ 성가정 입양원. 그동안 이곳을 통해 1600여명의 아기가 엄마·아빠의 품을 찾아갔다. (박승화 기자)

사진/ 마음 같아서는 종일 아기들을 안아주고 싶지만 원장으로서 할 일은 어서 좋은 부모를 만나게 해주는 일이다. (박승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