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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나는 일본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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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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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진환)
<케이티>에 이어 <우리 집>이라는 블랙코미디를 촬영하던 사카모토 준지(44) 감독이 지난 4월11일 영화 홍보차 내한했다. 그는 89년 <때려줄까보다>로 데뷔해 <의리없는 전쟁> <신 의리없는 전쟁> <얼굴> 등을 만들어왔다. 코믹과 폭력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영화 스타일은 <반칙왕>의 김지운 감독을 열혈 팬으로 만들기도 했다. 감독 자신은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규정한다. 메이저영화사 도에이에서 기획한 작품 <의리없는 전쟁> 정도를 빼놓으면 대부분 독립영화인처럼 일해온 이유도 있겠지만, “젊어서는 좌파 운동을 했지만 지금은 우파 친구도 제법 많을 만큼 한쪽에 일방적으로 치우치는 게 싫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웃사이더’는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하필 김대중 납치 사건을 소재로 택해 정치색 짙은 스릴러로 만든 것도 그의 기질 덕분으로 보였다. “한·일 합작영화가 늘고 있지만 대부분 양국 남녀가 연애관계를 맺으며 하나가 된다는 테마를 갖고 있다. 이건 싫었다. 세상을 놀라게 할지 모르나 무거운 메시지를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여기에 김대중 납치 사건이 맞춤해보였다. 기획 초기에는 이 사건을 전혀 모르는 젊은 층이 많아 어디에 중점을 둬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 그렇다고 할리우드처럼 오락에 치중에 만들 수는 없었다. 기존 작품에선 사회적 배경이나 인물의 개인적 조건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각 개인을 둘러싼 이데올로기, 국가와 조직의 문제 등에 초점을 맞췄다.”

사건의 배후로 자위대를 공개적으로 지목한 건 일본에서 처음이라고 한다. “다나카 수상과 국회가 일정부분 인정하기는 했으나 이를 증명할 만한 자위대원의 증언이나 자료는 나오지 않았다. 사건을 조사하다 보니 충분히 근거가 있어보였다. 도청과 미행 등 위험스런 일들이 많았지만 젊은 감독으로서 일본의 부끄러운 부분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케이티>에서 토미타 소령이 “이런 일본은 싫다”라고 하는 건 젊은 시절부터 이어져왔던 자신의 생각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하나의 스타일로 굳어진 게 있다. 알면서 행하지 않거나 행하되 애매하게 움직이는 건데 여기에 염증을 느낀다. 군대도 아니고 음지도 아닌 자위대가 그렇고, 교과서 문제도 그렇다.”

영화에 등장한 석간도쿄의 가미카와 기자는 당시 김대중씨 증언을 1면 머릿기사로 실었던 라이카이타임스라는 작은 신문의 기자를 모델로 삼았다. 당시 일본의 유력 신문들은 김대중의 인터뷰 내용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이성욱 기자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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