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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축구와 돈, 그 수상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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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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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읽기 8 l 상업주의

부정부패 스캔들로 덩치 키운 FIFA… 개인적 이익의 도구로 삼기도

사진/ 축구의 상업주의는 피할 수 없는 것인가. 국제축구연맹은 공식 후 원사 선정 등으로 막대한 자금을 챙기고 있다.
텔레비전 스포츠뉴스 같은 데서 축구선수들의 짤막한 인터뷰를 볼 때 종종 딱한 느낌이 든다. 황선홍과 홍명보 등 몇몇을 빼면 선수들에게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판에 박힌 답변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묻지 않았다면 최선을 다하지 않을 작정이었고, 다른 할말이라곤 도무지 없단 말인가. 하지만 선수들의 말솜씨에서 허물을 찾을 수는 없다. 문제는 오히려 그런 답변밖에 나올 수 없게 하는 물음의 천편일률성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방송편집에서 빠졌지만 보나마나 질문자는 선수들에게 경기에 임하는 각오 따위를 물었을 것이다. 질문자에게 중요한 것은 선수의 말을 ‘딴다’는 일 자체지 그가 무슨 말을 하느냐가 아니었기 십상이다. 경기를 앞둔 선수의 설렘과 불안, 다친 몸이 주는 고통, 팀이나 감독에게 털어놓고픈 속내 같은 것이 그들의 문답 속에 들어설 자리는 없다.

각오와 다짐만이 있는 대화는 대화가 아니다. 그래도 이런 식의 하나마나한 인터뷰는 방송에서 줄곧 되풀이된다.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자기가 다루는 축구라는 주제에 대해 실인즉 별로 관심이 없는 한국 방송사들의 무신경과 타성일 뿐이다.


방송에서 국내 프로축구가 없는 까닭

축구에 대한 애정과 진지한 직업의식이 있는 이들이 방송사 안에도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 방송사들이 회사 차원에서 월드컵에 열광하는 까닭은 축구에 대한 무슨 애정이나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돈이 되기 때문이다. 막대한 광고수익이 약속되어 있는 것이다. 정반대의 이유로, 불과 한달 뒤면 월드컵이 열릴 나라에서 국내 프로축구 중계방송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지구를 정복한 시장논리의 지배 앞에 축구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축구 선진국들에서 축구는 어마어마한 돈벌이 수단이 된 지 오래이다. 이번 월드컵은 한국에서도 축구산업이 본격적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 그런데 축구 상업화·산업화의 흐름을 긍정할지 말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돈의 논리를 섬기는 신자유주의자들은 개인에게 좋은 것이 사회에도 좋다고 한다. 반대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축구팬에게 좋은 일이 사회에는 재난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현명한 팬이라면 축구에 대한 스스로의 사랑이 엉뚱한 사람들의 배를 불려주는 한편 축구가 지닌 가치의 실종, 더 나아가 오늘의 사회에 간신히 서식하고 있는 인간다움의 절멸을 본의 아니게 도울 가능성에 대해서 묻기를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그런 뜻에서 상기할 이름이 둘 있다. 하나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전 회장 아벨란제이다. 영국 저술가 데이비드 옐롭이 생생히 증언하는 대로 뇌물수수, 횡령, 담합의 달인인 그가 키운 FIFA는 끊임없는 부정부패 스캔들 속에서 엄청난 돈을 멋대로 주무르는 공룡이 되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과 일본 방송사들은 FIFA에 독점중계권을 산 독일 재벌 키르히 미디어의 전파를 받아 경기중계를 해야 할 판이다. FIFA는 그 어떤 국가나 외부인들의 간섭에서도 자유롭다. 축구팬 모두는 저도 모르게 이 수상한 신성권력의 신민이 되어 있는 셈이다.

기억할 다른 하나의 이름은 현직 이탈리아 총리 베를루스코니다. 열개가 넘는 범죄혐의를 지닌 그가 총리로 당선되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은 명문 축구단 AC 밀란(지난날 차범근도 입단 제의를 받았던)의 소유주라는 사실이었다. 한 미국 신문의 말을 빌리면 축구는 그에게 승리자의 이미지를 빚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탈리아 제일의 갑부이기도 한 이 승리자는 이민 제한, 노동자 해고 자유화 등을 밀어붙여 ‘유럽의 부시’라고 지탄받는 중이다.

아벨란제와 베를루스코니에게 돈이 되지 않는 스포츠맨십, 인간적인 축구의 기풍과 리듬이 헌신짝만한 가치나 있을 것인가. 축구를 사적 이익에 도용한 그들이 표상하는 것은 축구의 퇴보이고 사회의 타락이다. 축구 상업주의의 물결에 무작정 휩쓸려갈 때 우리도 얼마든지 그들의 후예와 맞닥뜨릴 수 있다. 그런 끔찍한 사태를 예방하자면, 베를루스코니의 강력한 반대자이며 축구광들을 꼬집는 글을 여러 편 쓴 움베르토 에코의 충고처럼, 축구팬들이 우둔한 구경꾼으로 머물기를 거부하는 길밖에 없어 보인다.

손경목/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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