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납치사건 다룬 한·일 합작 영화 <케이티>의 상상력
1973년 8월 도쿄에서 벌어진 김대중 납치 사건을 다룬 한·일 합작영화 <케이티>(KT)는 뜻밖의 장면으로 시작된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글쓰기에 빼어났던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자결 사건이다. 대표적인 극우파 지식인이었던 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 11월 동료 4명과 함께 자위대 총감부에 난입해 총감을 인질로 삼은 뒤 ‘자위대의 국군화’와 ‘천황 옹호’를 외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적 스릴러를 원한다”
“이 영화가 사실적인 다큐멘터리로 오해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난 그런 식으로 고리타분하게 이 소재를 영화화하고 싶지 않았다. 극한상황에 처한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기묘한 배경들을 소재로 심리를 깊숙이 파고드는 지적 스릴러를 원했다.”
‘지적 스릴러’를 구상한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고심은 캐릭터와 스타일로 나타났다. 미시마 유키오의 자결 사건은 이를 풀어가는 첫 단추다. 그 현장에 자위대 소령 토미타(사토 고우이치)가 조용히 나타난다. 경건하게 국화 한 송이를 놓고 돌아서는 그는 미시마 유키오의 ‘정신적 후계자’인 셈인데, 3년 뒤 한국중앙정보부(KCIA)의 작전명 ‘케이티’(KT)를 돕는 유력한 인물이다. 꽃을 놓고 돌아서는 토미타 소령이 자신에게 따라붙어 질문을 던지는 석간 <도쿄신문> 기자 카미카와(하라다 요시오)를 사정없이 후려치면서 첫 시퀀스가 마무리된다. 소령은 허구의 인물이고, 기자는 실존 인물이다. 소령은, 김대중 납치사건을 깊이 있게 조사한 제작진이 자위대의 비밀첩보대가 관련돼 있음을 확신하면서 등장시킨 인물이다. ‘한물간’ 기자 카미카와는 케이티 작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김대중 제거 음모를 황색지에 게재했던 실제 인물이다. 가상과 실재의 만남은 이 영화를 의미심장하게 특징짓는다. 우선, 다큐멘터리를 의도한 건 아니라고 하지만 자위대의 개입설을 설득력 있게 주장할 만큼 사실성의 구축에 꽤 공을 들였다. 이 때문에 일본 제작진이 도청과 미행까지 당했을 정도다. 소령에게 케이티 작전의 지원을 지시하는 자위대 윗선에 박정희의 육사 동기생이 존재한다는 설정이 있기는 하지만, 자위대의 우파적 성격은 중앙정보부와 기본적으로 잘 어울린다. 실제 사건을 단선적으로 풀어갔을 때 왜소해질 수 있는 함정을 효과적으로 피해간 건 누아르적 스타일 덕분이다. 짙게 배어 있는 음울한 정서도 그렇지만, 사건의 복원 이상으로 조명을 많이 받는 건 많은 관련자들의 복합적인 내면이기도 하고, 조직에 이끌려 파괴되는 개인들의 숙명이기도 하다. 극우적 인물인 토미타 소령은 선과 악을 본능적으로 구분할 줄 알면서도 조직의 비정한 생리에 충실한 이중적 인물이다. 그는 운동권 대학생으로 비상계엄하의 중앙정보부에 연행돼 갖은 고문을 받은 뒤 일본으로 건너와 고단하게 살고 있는 이정미(양은용)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이런 반면 입신양명을 위해 냉혹차게 일을 처리하는 김차운의 처지를 공감하고 우정을 쌓기도 하는 ‘문제적 인물’이다. 결국 자위대의 개입 흔적을 지우기 위해 제거될 운명에 처한다. 토미타 소령에 대한 영화의 애정은 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를 불분명하게 했고, 일본 안에서 좌파로부터는 우파 성향으로, 우파로부터는 좌파 성향으로 영화를 분류하게 만들었다. 김대중은 영웅 이미지
카미카와 기자의 캐릭터도 여러모로 흥미롭다. 태평양전쟁 중에는 특공대에 지원할 정도로 군국주의에 호응했으나 전후에는 사회주의자가 됐고, 납치 사건 당시에는 싸구려 가십을 좇아다니는 한물간 기자다. 그는 토미타 소령과 자꾸 마주치게 되고, “이기지 않아도 되는 전쟁이 있다”는 신념을 토미타에게 ‘주입’하는 데 성공한다. 그렇다고 굉장한 정의감에 불타는 건 아니고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투의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산다. 72년 한국에서 암살 기도로 추정되는 교통사고의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김대중과의 인터뷰 기사를 신문 1면에 실으면서 사건에 얽혀들어간다.
중앙정보부의 험악한 생리는 노골적으로 묘사된다. 주일 한국 외교관들과 교묘하게 뒤섞여 박정희 정권에 맞서는 인사들을 관리하고 협박하며 때론 직접 처치하기도 한다. 특히 케이티 작전을 실행하던 도중 카미카와 기자에게 정보를 흘린 것으로 추정되는 동료를 살해하고 뒤처리하는 모습은 마피아 못지않다. 이에 비해 김대중의 이미지는 거의 영웅에 가깝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 비장하게 조국의 운명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눈에 거슬릴 정도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선택받았을 만큼 문제작이긴 해도, 가끔씩 튀어나오는 몇몇 인물의 과장스런 대사 탓인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5월3일 한·일 동시 개봉에 앞서 4월26일 시작하는 제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국내에 첫 소개된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지적 스릴러’를 구상한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고심은 캐릭터와 스타일로 나타났다. 미시마 유키오의 자결 사건은 이를 풀어가는 첫 단추다. 그 현장에 자위대 소령 토미타(사토 고우이치)가 조용히 나타난다. 경건하게 국화 한 송이를 놓고 돌아서는 그는 미시마 유키오의 ‘정신적 후계자’인 셈인데, 3년 뒤 한국중앙정보부(KCIA)의 작전명 ‘케이티’(KT)를 돕는 유력한 인물이다. 꽃을 놓고 돌아서는 토미타 소령이 자신에게 따라붙어 질문을 던지는 석간 <도쿄신문> 기자 카미카와(하라다 요시오)를 사정없이 후려치면서 첫 시퀀스가 마무리된다. 소령은 허구의 인물이고, 기자는 실존 인물이다. 소령은, 김대중 납치사건을 깊이 있게 조사한 제작진이 자위대의 비밀첩보대가 관련돼 있음을 확신하면서 등장시킨 인물이다. ‘한물간’ 기자 카미카와는 케이티 작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김대중 제거 음모를 황색지에 게재했던 실제 인물이다. 가상과 실재의 만남은 이 영화를 의미심장하게 특징짓는다. 우선, 다큐멘터리를 의도한 건 아니라고 하지만 자위대의 개입설을 설득력 있게 주장할 만큼 사실성의 구축에 꽤 공을 들였다. 이 때문에 일본 제작진이 도청과 미행까지 당했을 정도다. 소령에게 케이티 작전의 지원을 지시하는 자위대 윗선에 박정희의 육사 동기생이 존재한다는 설정이 있기는 하지만, 자위대의 우파적 성격은 중앙정보부와 기본적으로 잘 어울린다. 실제 사건을 단선적으로 풀어갔을 때 왜소해질 수 있는 함정을 효과적으로 피해간 건 누아르적 스타일 덕분이다. 짙게 배어 있는 음울한 정서도 그렇지만, 사건의 복원 이상으로 조명을 많이 받는 건 많은 관련자들의 복합적인 내면이기도 하고, 조직에 이끌려 파괴되는 개인들의 숙명이기도 하다. 극우적 인물인 토미타 소령은 선과 악을 본능적으로 구분할 줄 알면서도 조직의 비정한 생리에 충실한 이중적 인물이다. 그는 운동권 대학생으로 비상계엄하의 중앙정보부에 연행돼 갖은 고문을 받은 뒤 일본으로 건너와 고단하게 살고 있는 이정미(양은용)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이런 반면 입신양명을 위해 냉혹차게 일을 처리하는 김차운의 처지를 공감하고 우정을 쌓기도 하는 ‘문제적 인물’이다. 결국 자위대의 개입 흔적을 지우기 위해 제거될 운명에 처한다. 토미타 소령에 대한 영화의 애정은 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를 불분명하게 했고, 일본 안에서 좌파로부터는 우파 성향으로, 우파로부터는 좌파 성향으로 영화를 분류하게 만들었다. 김대중은 영웅 이미지

사진/ 한국의 중앙정보부와 일본의 자위대를 납치 사건의 배후로 지목한 영화 <케이티>. 가해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거대한 조직의 희생양이 돼가는 개인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