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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진지남과 엽기녀의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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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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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종근 기자)
<아이언 팜>의 차인표씨와 <재밌는 영화>의 김정은씨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엉뚱한 일로 유명세를 탔다. 차씨는 남북관계의 왜곡이라는 이유로 007 영화의 캐스팅을 거절해 ‘아름다운 청년’으로 칭송됐고, “부자 되세요” 이후 인기절정을 달리던 김씨는 연예인 마약파동의 희생자가 될 뻔했다.

진지남의 아이언 팜을 너무나 진지하게 해낸 차인표씨는 시사회를 마친 뒤 은근히 초조해하는 분위기였다. “재미있게 찍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지만 시사회 반응은 예상과 좀 다르네요. 재밌게 찍은 대목에선 잠잠하고 예상 밖의 장면에서 폭소가 터져나오니. 시스템이 안정된 할리우드 방식을 보고 많이 배웠지만 아직도 영화는 잘 모르겠어요.”

전기밥통에 철사장 수련을 하는 그의 모습은 근육질의 단단함 몸매와 잘 어울렸다. 영화 안에서 콩글리시라고 무안을 당하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서툰 영어로만 읊조리는 연기도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사춘기 때는 ‘이 여자를 위해서 태평양도 건널 수 있다’는 마음을 품기 쉽지만 정작 이런 열정을 행동에 옮기기는 어렵지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첫사랑을 생각하면서 영화를 찍었습니다. 관객들도 이 영화를 보면서 첫사랑의 순정을 떠올리면 좋을 것 같아요.”

해외에서 부각될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놓아버린 007 시리즈의 캐스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미국에서 두달간 촬영한다고 하니 우리나라와 대만의 팬들이 각별한 정성을 보여줬어요.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제 안부를 인터넷에 띄우며 007 시리즈에 캐스팅됐다가 거절한 이야기를 전했지요. 그런데 제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부풀려져 서둘러 삭제했어요. 대단한 결정이라고 내세울 것도 없고 우리나라의 다른 배우가 그 시나리오를 봤어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앙증맞은 표정과 애드리브가 장기인 김정은씨는 ‘한국형 짐 캐리’가 될 소지가 엿보인다. <재밌는 영화>에서는 <쉬리>의 매서운 여전사 이미지보다 <엽기적인 그녀> <거짓말> 등에서 따온 엽기 연기를 깜찍하게 해냈다. 지하철 안에서 술에 취해 토사물을 쏟아내는 <엽기적인 그녀>의 수준을 스스로 짜낸 아이디어로 한 단계 높였고, <거짓말>의 여관방 장면처럼 온갖 종류의 매질을 감당하는 역할을 스스럼없이 해냈다. “코믹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아요. 어차피 처음부터 주연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 앞으로 다양한 역할을 하다보면 저만의 스타일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98년 문화방송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김씨는 지금껏 해온 대로 광고, 드라마, 영화를 바삐 오갈 모양이다. “영화를 해보니까 왜 배우들이 영화로 가면 안 돌아오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감동이 몇배는 더 큰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작품만 좋으면 영화나 텔레비전 가리지 않고 출연할 생각입니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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