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확장공사… <재밌는 영화>와 <아이언 팜>이 열어놓은 코미디영화의 가능성
지난해 <친구>로부터 시작된 ‘조폭영화’들의 행진은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을 50%에 육박하게 만들었다. 올해 들어 이렇다 할 대박영화가 터지지 않으면서 ‘위기론’이 유령처럼 떠돈다. 하지만 한국영화라는 미지의 터널에선 굴착공사와 확장공사가 한창이어서 부실 여부를 따지기에는 너무 이르다. 장르영화를 변주하는 방식은 이 두 가지 공사의 동시진행형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가 누아르의 기반 다지기라면, <복수는 나의 것>은 누아르의 경계 넓히기다. 조폭영화에 양념처럼 섞였던 코미디는 홀로서기에 나섰을 뿐 아니라 주변 장르를 먹성좋게 곁들인다. <재밌는 영화>(4월12일 개봉)가 국내 처음으로 패러디영화의 첫발을 시원스레 내딛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촬영을 마친 <아이언 팜>(4월19일 개봉)은 새 유형의 캐릭터를 산뜻하게 보여주는 멜로 코미디로 다가온다.
한국형 패러디는 이렇게 웃긴다
<재밌는 영화>(감독 장규성)는 ‘한국영화의 피를 먹고 자라났다’. 외제 없이 28편의 국산품만을 인용하고, 순수제작비만 31억원을 들이는 배짱은 한국영화의 풍성해진 품이 아니면 불가능할 일이다. 관객의 뇌리에 강렬히 남아 있을 장면들이 젖과 꿀처럼 넘치고 있다는 계산이 없고서야 영화의 규모를 이렇게까지 키울 수 없다. 남의 것을 원재료 삼아 재조립했지만 조악품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다.
시작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40계단 살인 장면이다. 노란 은행잎이 깔리고 빗물이 두두둑 떨어지는 가파른 계단에선 예의 비장미가 흐른다. 그런데 서슬 퍼런 칼이 아니라 난데없이 가냘픈 오뎅꼬치와 굵은 순대가 살인도구로 등장한다. 튀김용 밀가루 반죽에 총을 빠뜨려 오차를 일으킬 뻔했으나 ‘재치 있게’ 암살을 끝내는 이는 할머니로 변신한 어떤 여인, 곧 <쉬리>의 킬러 이방희다. 이후 영화의 기본틀은 <쉬리>를 따라가는데, 남북 냉전형 도식을 단순하게 따라간 <쉬리>에 비해 변화한 남북관계를 응용해 한층 ‘성숙’해진 모습이다. <쉬리>에서의 북한 특수부대를 대신하는 건, 일본의 극우세력 천군파다. 천군파가 노리는 건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하는 월드컵 행사에서 남한의 대통령과 북한의 국방위원장, 일본의 왕이 함께하는 자리다. 일왕이 시샘할 정도로 남북 지도자가 연인처럼 가까워진 사연이 재밌다. <동감>에서 유지태와 김하늘이 우연히 무선통신을 하다 만난 것처럼 서로를 깊이 알게 된 이들은 <약속>에서처럼 성당에서 애정 아닌 애정을 나눈다. <쉬리>에서 김윤진이 맡았던 이방희는 성형수술로 완벽히 변신했다. 여기에선 전문킬러로 훈련받은 하나코(박경림)가 상미(김정은)로 둔갑한다. 천군파의 상대역은 KP(Korea Police) 요원 황보(임원희)와 갑두(서태화). <쉬리>의 한석규, 송강호 짝과 <투캅스>의 안성기, 박중훈 짝, 그리고 <친구>의 유오성, 장동건 짝을 혼합한 캐릭터들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총알탄 사나이> <스파이 하드> 등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레슬리 닐슨이, 홍콩에서는 <홍콩 마스크> <홍콩 레옹> 등에서 엽기성과 인간미로 승부하는 주성치가 패러디영화의 ‘명인’이 됐지만, 한국형 패러디 스타는 당분간 빈칸으로 남을 듯싶다.
<재밌는 영화>는 맵시 있고 성의 있게 만들어졌지만, 오락성 쾌감의 너머까지 보여주지는 못한다. 원작을 파괴해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새로운 도전장을 내놓기보다 원작이 심어놓은 이미지의 과실을 따먹기에 바쁘다. 재밌게 이어지는 에피소드 이상의 세계는 또 다른 패러디영화가 떠안아야 할 숙제로 남았다.
<아이언 팜>(감독 육상효)은 <재밌는 영화>처럼 단숨에 승부하지 않는다. 행여 단락단락에서 재미를 찾으려다간 썰렁해질 수 있다. 대신 코믹 멜로의 새로운 캐릭터가 흥미롭고, 두 남자와 한 여자의 기묘한 동거를 자연스럽게 바라보거나 이방인의 고단함까지 품으려는 ‘넓은’ 가슴이 돋보인다.
순진한 남성, 당찬 여성
아이언 팜은 강철 손바닥이란 뜻이다. 무협영화에서 뜨거운 모래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하는 철사장 수련의 영어 표현인데, 여기의 아이언 팜(차인표)은 뜨거운 전기밥통에 손가락을 담근다. 아이언 팜은 ‘대책 없는 진지남’이다. 5년 전 19번을 자면서 사랑을 나눴던 여자 지니(김윤진)를 잊지 못해 무작정 로스앤젤레스로 날아든다. 그 사이 떠난 사랑에 대한 고통을 잊기 위해 아침마다 밥통에 손가락을 담가왔다. 아이언 팜의 표현법은 진지하지만 어딘가 늘 어설픈데, 이런 식이다. 재수학원에서 마주친 지니를 1년간 마음에만 품어온 그가 지니에게 말을 걸어볼 마지막 날이 왔다. 학원 졸업식날, 달려나가는 지니 앞에서 그를 멈춰세워야 하는데…. 그가 택한 방법은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것이었다. 물론 무릎이 깨지고 난리가 났다. 왕자 이미지의 차인표지만 이런 무데뽀 연기가 잘 어울린다.
지니는 <봄날은 간다>의 은수에 이은 참신한 여성 캐릭터다. 첫사랑 아이언 때문에 한동안 가슴 아팠지만, 미국 현지에서 만난 성공한 남성 애드머럴과 연애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 재결합을 요구하는 아이언 앞에 당혹해하더니 금방 당당해진다. 선택도 포기도 하지 않더니 “일요일은 쉬고 월·수·금, 화·목·토, 이렇게 나누자구”라면서 번갈아 자신을 찾아오라고 명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말에도 자기 갈 길을 가던 은수보다 더 당차다. 게다가 소주 칵테일로 미국에서 승부를 내겠다는 근성도 야무지다.
이처럼 연이어 찾아온 한국 코미디 두편은 패러디라는 첫 시도에서, 멜로라는 장르 안에서 각각 기죽지 않고 당당해하는 품새가 아쉬움은 남아도 밉지는 않다. 새로운 영화 만들기에 허허실실 달라붙는 모습이 아니어서 그런가보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사진/ 너무 진지해서 웃기는 남성 캐릭터와 당당해서 참신한 여성 캐릭터가 돋보이는 <아이언 팜>.

사진/ 영화 <재밌는 영화>.
시작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40계단 살인 장면이다. 노란 은행잎이 깔리고 빗물이 두두둑 떨어지는 가파른 계단에선 예의 비장미가 흐른다. 그런데 서슬 퍼런 칼이 아니라 난데없이 가냘픈 오뎅꼬치와 굵은 순대가 살인도구로 등장한다. 튀김용 밀가루 반죽에 총을 빠뜨려 오차를 일으킬 뻔했으나 ‘재치 있게’ 암살을 끝내는 이는 할머니로 변신한 어떤 여인, 곧 <쉬리>의 킬러 이방희다. 이후 영화의 기본틀은 <쉬리>를 따라가는데, 남북 냉전형 도식을 단순하게 따라간 <쉬리>에 비해 변화한 남북관계를 응용해 한층 ‘성숙’해진 모습이다. <쉬리>에서의 북한 특수부대를 대신하는 건, 일본의 극우세력 천군파다. 천군파가 노리는 건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하는 월드컵 행사에서 남한의 대통령과 북한의 국방위원장, 일본의 왕이 함께하는 자리다. 일왕이 시샘할 정도로 남북 지도자가 연인처럼 가까워진 사연이 재밌다. <동감>에서 유지태와 김하늘이 우연히 무선통신을 하다 만난 것처럼 서로를 깊이 알게 된 이들은 <약속>에서처럼 성당에서 애정 아닌 애정을 나눈다. <쉬리>에서 김윤진이 맡았던 이방희는 성형수술로 완벽히 변신했다. 여기에선 전문킬러로 훈련받은 하나코(박경림)가 상미(김정은)로 둔갑한다. 천군파의 상대역은 KP(Korea Police) 요원 황보(임원희)와 갑두(서태화). <쉬리>의 한석규, 송강호 짝과 <투캅스>의 안성기, 박중훈 짝, 그리고 <친구>의 유오성, 장동건 짝을 혼합한 캐릭터들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총알탄 사나이> <스파이 하드> 등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레슬리 닐슨이, 홍콩에서는 <홍콩 마스크> <홍콩 레옹> 등에서 엽기성과 인간미로 승부하는 주성치가 패러디영화의 ‘명인’이 됐지만, 한국형 패러디 스타는 당분간 빈칸으로 남을 듯싶다.

사진/ <쉬리>를 중심으로 28편의 국내영화를 인용한 <재밌는 영화>는 패러디 영화의 첫발을 보기좋게 내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