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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삶은 언제 무너질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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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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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공포…소설가 하성란씨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이유

사진/ 최근 창작집 <푸른수염의 첫번재 아내>를 발표한 소설가 하성란씨. 견고해보이는 삶의 허약한 토대를 그의 소설은 건조한 문체로 드러내 보인다. (이정용 기자)
부부는 교외의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잔디가 깔린 마당에서 깔깔대며 자전거를 타거나 공놀이를 하는 아이’를 막연하게 그리면서. 하지만 아이는 다리가 불편했고 애써 가꾼 마당은 여전히 허전했다. 남편이 퇴근길에 잡종견 누렁이를 사오고서야 마당에는 활기가 돌기 시작했고, 부부의 꿈은 완성되는 듯했다. 그러나 어느 날 누렁이는 이웃집 개들과 함께 사라진다. 집안일을 전폐한 채 며칠 동안 미친 듯이 개도둑을 찾아 헤맨 끝에 여자는 누렁이를 데리고 돌아오지만 밖으로 잠가놓았던 아이 방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 걸을 수도 없는 아이가 사라진 것이다.

“인간은 양다리를 걸치고 싶어 한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당신, 텔레비전의 오렌지주스 광고에 등장할 법한 풍경으로 하루를 여는 당신은 행복한가. 소설집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창작과 비평사 펴냄)에 수록된 단편 ‘저 푸른 초원 위에’는 묻는다. 질문은 곧 서늘한 경고다. 당신이 밟고 있는 잔디, 당신의 아이가 마시는 오렌지주스에 서서히 퍼져가고 있을지 모를 한 방울의 치명적인 독을 조심하길.


“날이 너무 좋지요?”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착각도 없겠지만 포근한 봄날씨와 망울망울 터지고 있는 꽃나무에 진심으로 감탄하는 작가 하성란(35)씨의 첫인상은 당황스러웠다. 선하고 순해보이는 커다란 눈빛이 “왕자와 공주는 결혼해서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더래”라는 결말을 진심으로 믿게 만들망정, 근심어린 얼굴로 곁에 다가와 “미쳤군, 완전히 돌아버렸어” 귓엣말을 속삭이는 ‘옆집여자’(1999)의 불길한 세계와 포개지는 지점은 도통 없어보인다. 평생 무단횡단 한번 안 해봤을 것 같은 얼굴의 어디쯤에 ‘내 소설들은 여러분의 뒤통수를 치고 싶어한다’(<옆집여자> 작가의 말)는 서늘한 욕망이 숨어 있는 것일까.

“인간은 누구나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의 제이슨처럼 푸른 수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푸른 수염이란 보이지 않는 이면에 도사린 어떤 것, 인간의 양면성이죠.” 동성애자인 제이슨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 부모로부터의 지원도, 사회로부터의 인정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면도날로 잘 정리한 제이슨의 푸른 턱과 시민권만 알아본 채로 무거운 오동나무장을 싸들고 뉴질랜드까지 시집온 ‘나’는 그의 ‘첫번째’ 희생양이 된다. 장롱이 한순간 관이 될 뻔한 사연을 겪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곰곰이 생각해본다. ‘도대체 나는 무슨 잘못을 했을까.’ “주변의 시선과 허락되지 않는 욕망 사이에 끊임없이 양다리를 걸치고 싶어하는 게 인간의 양면성 아닐까요.” 인간의 양면성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건 세상에 인간을 보낸 신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건조한 문체로 묘사되는 일상의 양화(陽畵) 한가운데서 무심하게 드러나는 생의 음화(陰畵)는 그의 작품에 일그러진 그림자를 드리운다. 아늑하고 견고해 보이는 저택 아래 수억 마리의 흰개미가 건물의 주추를 송두리째 갉아먹고 있는 형국이다.

<푸른수염…>은 쉽게 읽힌다

집안에 사는 사람은 매일 쓸고 닦아도 예기치 못했던 한순간 집 전체가 와르르 무너지는 걸 막지는 못한다. 삶의 도처에는 불가항력의 지뢰들이 깔려 있다. 첫 창작집 <루빈의 술잔>(1997)이나 <옆집여자>에서 현미경으로 관찰해 작가가 찾아냈던 지뢰들이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에서 좀더 구체적인 사건으로 형상화된다. 씨랜드 참사사건으로 아이를 잃은 부부의 1년 뒤를 소설로 재구성한 ‘별 모양의 얼룩’은 변한 작가의 모습을 눈에 띄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별모양의 얼룩’은 작가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이나 취해야 할 정신적 자세에 대해서 처음으로 깊게 생각하게 만든 소설이에요. 또래의 아이를 가진 엄마로 제 자신이 가장 많이 개입된 작품이기도 하고요.” ‘파리’는 시골마을의 주민 56명이 죽임을 당한 82년 우순경 총기난사사건이 바탕이 된 된 작품이다. “우순경 사건 자료를 우연히 뒤적이다가 흥미로운 기사 한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참사를 당한 집들이 모두 사고 당시 불을 켜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딱 한 집, 그것도 사건이 일어난 현장과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집이 불꺼진 상태에서 모두 죽음을 당했다는 거였죠.” 하씨는 주인공이 산간마을로 좌천되면서부터 파출소에서 총기와 수류탄을 꺼내 나오기까지, 즉 사실로서의 총기사고가 나기 직전까지의 시간을 재구성했다. 주인공이 겪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씨족사회 특유의 은밀하고 배타적인 분위기가 섬뜩한 표정을 드러낸다. “이번 작품집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겉으로 많이 드러났어요. 이전 작품들에 비해서 문제의식이 많이 돋아나왔고, 묘사 위주의 따라가기 수법은 그만큼 줄어들었지요.”

변한 것인가, 이제 작가는 이전보다 굳은 땅 위에 발 딛고 서 있다고 생각해도 좋은 것인가 물었더니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소설은 저에게 끊임없는 실험의 장이에요. 제가 영화배우는 아니지만 그 안에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 길만 파기엔 아직 젊기도 하고요. 실제 사건에서 출발해 소설의 얼개를 짜본 것도 그 일환이죠.” 그의 문체가 그렇듯 하씨는 작가로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도 냉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루빈의 술잔> 때 잘 안 읽힌다는 말을 들었던 그는 이번 작품들을 쓰면서 ‘잘 읽힐까’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다고 한다. 이번 소설집이 이전 작품들보다 줄거리가 선명하고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는 것은 이 고민과 무관하지 않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그렇지만 대중을 의식했다고 하기엔, 글쎄….” 텔레비전 뉴스에서 허구한 날 사건과 사고를 접해도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굳게 믿는 것 외에 보통사람들이 재난을 대비하거나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어찌할 도리 없는 이 맹목적 신념의 허약한 뿌리를 잔인하게 드러내보이는 하씨의 소설을 읽는 것은 그래서 편치 않다.

태연한 일상, 잠복된 비극

“어릴 때부터 얌전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또 좋아하면서 살았어요.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고, 모든 것에 시비걸 수 있는 글의 세계에서는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소설을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하씨에게는 올해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간 딸이 있다. 아이 돌이 지난 95년 등단한 그는 적지 않은 작품을 써내면서도 놀이방에 보낸 것말고는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긴 적이 없다. 별탈 없이 무럭무럭 자란 딸아이지만 그는 아이를 보면 ‘어떻게 될까봐 불안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공포에 대해서 유달리 예민하고 직관적이기 때문에, 그는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를 학교 보내는 태연한 일상 한가운데서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는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터뷰 도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예. 제가 다음주에 멀리 가서 원고마감을 하고 와야 하는데 어쩌지요?” 몹시 미안해한다. 여행 가느냐 물었더니 마감은 사실이지만, 여행은 청탁을 거절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고 한다. 상대방이 상심할까봐 “못하겠는데요. 바빠서”라는 말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씨가 그의 작품들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불행, 잠복된 비극을 활자로 끄집어내는 건, 살면서 피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상심에 내성을 기르기 위한 것이 아닐까. 그가 ‘진실된 거짓말’이라고 부르는 소설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도 그것이 아닐까. 아이에게 저녁을 차려주기 위해 택시를 타고 떠나는 하성란씨의 뒷모습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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