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간호하기 나흘째 되는 날, 큰시누이가 다니러 왔습니다. 숟가락으로 돼지에게 미음을 먹이는데 “언니, 뭐 해?” 합니다. 돼지가 우리를 뛰어넘었다고 하니, “언니 그런 거 유도 아니야. 새끼 아홉 마리 딸린 어미돼지가 새끼를 다 데리고 저 홍광국민학교 뒤로 해서 의림지 비행장으로 그렇게 돌아다녔어.” 강아지 팔아 부엌을 개조해야지 간호한 지 일주일이 되자 돼지 새끼는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8일 만에 우리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저녁때 술에 취해 들어와 시아버지는 또 “물 끓여라, 돼지 새끼를 튀해 가족이 뜯어 먹자” 하십니다. “아버님, 돼지 새끼가 살았는데요” 하니 “니가 수고했다, 니가 수고했다” 하십니다. 죽다 살아나도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계속 우리를 뛰어넘었습니다. 짐승도 자꾸 욕을 먹고 밉다 밉다 소리를 들으니 모습도 이상하게 변해갔습니다. 주둥이가 이상하게 뾰족하고 눈도 이상하게 흘끔거립니다. 늦은 가을에 결혼했는데 가자마자 아이가 생겼습니다. 해피도 생전 처음으로 새끼를 가졌답니다. 며느리가 오자마자 손주도 보고 개도 새끼를 가졌다고 무척 좋아들 하였습니다. 해피는 주는 대로 잘 먹고 살이 통통하게 오르며 아주 사랑스러워졌습니다. 우리 집과 아주 가깝게 앞집이 있었습니다. 앞집 아줌마는 개를 좋아하는데 개가 없었습니다. 해피를 자기네 개처럼 부엌 구석에 자리를 만들어 먹을 것을 주고 귀여워했습니다. 우리 집은 부엌 구조가 개가 들어와 부닐(가까이 따르며 붙임성 있게 굴다) 만큼 편한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새끼를 낳을 때가 되자 해피는 앞집 부엌에서 여덟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정월이어서 아직 쌀쌀한 날씨에 개죽을 날라다 먹였습니다. 아무리 앞집이 가깝다고는 하지만 죽을 날라다 먹이는 것이 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강아지가 아주 복스럽게 잘 커서 저 강아지를 팔면 불편한 부엌을 개조할까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꿈 깨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송아지도 낳으면 남에게 거저 준다고 했습니다. 그냥 하는 소리거니 했습니다. 강아지가 젖 뗄 때가 되자 술을 드시고 친구를 데리고 오셔서 강아지를 들려 보냈습니다. 다음날 지나가는 친구를 불러 강아지 한 마리를 주었습니다. 강아지 다섯 마리를 준 다음날은 온 식구가 다 어디를 가고 혼자 집에 있었습니다. 내다보니 옆집에 새댁들이 모여 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강아지 두 마리를 안고 나도 놀러 갔습니다. 다들 강아지가 탐이 나서 팔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어른들이 오시기 전에 두 마리를 팔아버렸습니다. 강아지는 거저 주고 돼지는 흥정 안 하고 저녁때가 되자 시아버지는 친구 두 분을 데리고 오셨습니다. “야야, 강아지 두 마리를 가져오너라” 하셨습니다. “아버님, 사람들이 와서 돈을 던져놓고 강아지를 가져갔어요. 아버님 돈 여기 있어요” 하고 돈을 드렸습니다. “잘했다, 니가 잘했다” 하며 혼내지는 않으셨습니다. 나는 임신해 무거운 몸으로 돼지를 열심히 거두었습니다. 하루는 아침 일찍 트럭을 끌고 돼지를 팔라고 돼지 장사가 왔습니다. 시부모님은 그날 열한 마리 돼지를 냉큼 트럭에 실어 보냈습니다. 시어머니는 “꾀도 없이 돼지 장사가 왔을 때 죽을 빨리 좀 먹였으면 무게가 더 나갔을 것 아니냐”고 나를 나무랐습니다. 내 상식으로는 여러 장사를 불러 값을 튕겨보고 최고의 값을 받을 줄 생각했습니다. 남편도 나도 진저리가 나서 축산의 꿈을 접었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강원도의 맛>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