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이효진, 글항아리 제공
고대 로마의 한 문인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성격상 토론 광장에서 침묵을 지킬 수 없었던 여성들’의 사례를 기록했는데, 일부 여성의 발언은 인간의 언어가 아닌 ‘짖어대는 소리’ ‘으르렁거림’으로 묘사했다. 비어드는 “남성의 낮고 깊은 목소리를 여성의 높고 새된 목소리와 대비시킴으로써 남성 목소리의 권위를 되풀이해 강조하는 행태”가 반복되어 오늘날 “성별화된 발언의 전통”으로 잔존해 있다고 본다. 예컨대 남성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이 여성들의 발언에만 유독 ‘징징거린다’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따위의 낱말을 사용하며 “여성의 언어를 대단찮은 것으로 (…) 언어의 지위를 변질시킨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비어드가 보기에 여성들의 공적 발언을 듣는 청자 다수도 성차별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청자들은 여성의 목소리에 함축된 권위를 듣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비어드는 심지어 자신이 교수지만, 교수라는 직업에서 여성이 먼저 떠오르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권위나 전문성만 무시되는 게 아니다. 여성은 ‘그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을 하더라도 남성과 달리 비판받는다. ‘거봐, 그럴 줄 알았다’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해당 여성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식의 의견 표명은 사라지고 의견을 낸 여자가 멍청하다는 잣대질만 난무한다.” 주체의 성별에 따라 이중잣대가 적용되는 셈이다. “폭언은 여성이 하는 말의 ‘내용’이 아니라 그들이 그 발언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촉발된다.” 여성이 참정권을 얻고 수십 년이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성이 ‘유리천장’을 부수고 정치권력 중심부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정치 분야에서 뿌리 깊은 여성혐오는 꾸준히 그들의 영향력을 빼앗는 쪽으로 작동한다. 고대부터 ‘권좌를 차지한 여성’들은 “대개 권력을 활용한 인물이 아니라 남용한 인물” “괴물 같은 잡종”으로 묘사됐다. 피 흘리는 메두사의 머리는 여성 권력을 남성이 견제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강력한 상징인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 등 여성 고위 정치인 다수는 메두사에 비유된 경험이 있다. 여성의 목소리가 공적 세계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어드는 “여성들이 남성인 척 흉내를 내는 것은 신속한 처방일 수는 있으나, 그것으로는 문제의 핵심에 도달하지 못”하며, “유리천장과 슈퍼우먼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여성의 권력모델은 대부분의 여성에게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다. 그는 여성을 권력에 짜맞추는 대신 권력을 재정의할 필요성을 제안한다. 권력을 리더와 동일시하거나 리더의 소유물로 여기기보다 “리더 뒤에 있는 사람들의 힘을 협력적으로 사유”하면서 권력에 관여할 방안을 찾자는 것이다. 한국에서 디지털 성착취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은 비어드가 상상한 정치운동과 맞닿는다. 국회의 무지와 홀대는 여성들이 분노를 넘어 계속해서 권력에 관여해야 할 필요성을 입증했다. 디지털 성범죄를 최우선 의제로 내세우는 ‘여성의당’이 창당되는가 하면, ‘n번방’ 운영자와 참여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요청하는 국민청원 참여자도 수백만 명을 넘어섰다.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려면 청원 동의 ‘클릭’이 끝이 아니다. 디지털 성착취의 ‘공범’으로 국회를 지목하는 한편, 끊임없는 정치 참여를 북돋는다. “‘n번방 사건’에 조속한 대처를 마련하지 않은 국회, 국회의원들이 이 사건에 큰 책임이 있다는 점을 영원히 기억하겠다. (…) 국회는 틀어막은 귀를 뒤흔들 울림을 똑똑히 들으라.”(경상도 비혼여성공동체 ‘WITH’ 등 연대성명 중에서) “법률적 개정을 넘어 정책적인 부분에서 여성 여러분의 모니터링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사실을 알립니다.”(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ReSET’, ‘국회 청원 결과 보고 및 입장문’ 중에서) 김효실 <슬랩> 기자 trans@hani.co.kr 참고 문헌 드루드 달레룹 지음, 이영아 옮김. <민주주의는 여성에게 실패했는가>현암사, 2018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