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7년 미국 시카고 ‘유니언 스톡 야드’의 끝없이 펼쳐진 가축우리들. 세계 최대 정육공장이자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이 발명된 이곳은 1970년대 정육공장이 각지로 분산되면서 사라졌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모리스와 스위프트 그리고 아머앤드컴퍼니 등 대규모 도축·가공 업체들이 입주했고, 주변 160㎞에 이르는 거미줄 같은 철도망을 타고 스톡 야드 구석구석으로 가축이 수송됐다. 텍사스와 애리조나 등 먼 곳에서 온 긴뿔소와 돼지, 양들이 기차의 화물칸을 메웠다. 긴 여행 끝에 살아남은 가축이 도착해 처음 가는 곳은 가축우리였다. 1.5㎢ 땅에 울타리를 세운 2300개 우리에서 가축은 운명의 날을 기다렸다. 7만5천 마리의 돼지, 2만1천 마리의 소, 2만2천 마리의 양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운명의 시간이 되면, 동물은 좁은 통로로 몰이를 당한 뒤 활강 장치에 끌려 올라가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 유니언 스톡 야드는 이들을 고기로 바꾸었고, 이들은 고기가 되어 다시 기차를 탔다. 1865년 개장 이후 1900년까지 도살당한 가축은 4억 마리였다. 철도를 이용해 지리적 한계를 뚫은 게 도축장 외부의 혁신이었다면, 내부의 혁신은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이었다. 아머앤드컴퍼니가 1875년 입주하면서 맨 먼저 자동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도입했다. 과거에는 전문 도축업자가 소의 머리를 망치로 때리면, 기절한 소를 방혈시킨 뒤, 무거운 사체를 끌고 가 하나하나 해체하는 식이었다. 장인인 도축업자를 중심으로 여러 명이 달라붙어 일했다. 컨베이어벨트가 바꾼 도축장 그러나 아머앤드컴퍼니 공장에선 소의 운반을 기계로 자동화한 뒤, 운반의 흐름을 중심으로 노동을 수십 개로 잘게 쪼갰다. 뒷다리가 걸린 채 거꾸로 매달린 소는 정해진 길을 따라 움직였고, 각 작업 구역에서 한 번씩 멈췄다. 여기서 기다리던 노동자들은 각자 정해진 업무에 따라 맡은 부분을 해체했다. 조각조각 나누어진 고기는 또다시 기차를 탔다. 공장 앞에 대기하던 냉장실이 딸린 화물기차였다. 기차는 수많은 사체를 동부 도시로 실어 날랐다. 과거의 도축 방식은 도축업자와 동물이 일대일로 대면하는 방식이었다. 도살은 본질적으로 잔인했지만, 역설적으로 이것이 도축업자의 무자비함을 막았다. 도축업자는 가끔 동물의 눈망울이 가슴에 맺혔고, 도망친 돼지는 그냥 놔두기도 했다. 그러나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에서는 달랐다. 노동자는 지정된 부위만 작업했다. 하나의 생명은 표준화된 생산 단위로 해체됐고, 각 단위를 생산하는 노동자만 남았다. 그들은 자신이 다루는 상품이 한때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어미와 함께 즐거워하고 자유를 갈구하는 생명임을 상상할 수 없었다. 노동자 구성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과거에 도축업자는 장인이었다. 소의 신체 골격과 성격 그리고 고기를 잘 아는 고집 센 사람이었다. 그러나 컨베이어 공장에서 그런 전문지식이나 직업정신은 필요 없었다. 노동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부위만 떼어내 손질하면 됐다. 숙련 노동자가 필요 없었으므로, 자본가는 최저임금에 뜨내기 노동자를 고용했고, 귀찮은 일이 생기면 잘라버렸다. 이제 막 신대륙에 도착한 아일랜드계, 동유럽계 노동자가 자연스럽게 정육공장의 다수를 채웠다. 1921년 기준으로 4만 명이 일했다. 부속품이 돼버린 인간과 동물 1906년 업턴 싱클레어는 시카고에서 두 달 가까이 취재해 소설 <정글>을 내놓았다. 싱클레어가 내세운 주인공 유르기스 루드쿠스도 리투아니아에서 부푼 꿈을 안고 이민 온 젊은 사내였다. “그도 리투아니아의 삼림지대에서 살 때 돼지를 잡아본 적이 있었으나, 이렇게 돼지 한 마리를 수백 명이 손질하리라는 사실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곳의 규모는 그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의 한 부분이었다.” 공장식 축산 시대가 개막하자, 동물이나 인간 모두 공장의 지배를 받는 부속품이 되었다. 150년 전 정육공장의 컨베이어벨트에 몸을 기댄 유르기스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의 ‘띠링’ 소리를 기다리는 배달 기사들도 여전히 위태로운 삶을 산다. 지금 우리는 그들과 그들이 가져다준 양념치킨이 인간과 동물을 부속품으로 바꾼 혁신의 연쇄로 나온 역사적 산물임을 기억해야 한다. 남종영 <한겨레> 기자 fandg@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