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인간을 닮으면…
등록 : 2000-09-06 00:00 수정 :
(사진/로봇이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주방에서 활동하는 이동식 로봇의 개념도)
네발로 걸어서 엘리베이터에 들어간 이동식 로봇. 손이 없어도 승객이 있다면 내리길 바라는 층에 내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사람을 인식해 ‘팔이 없으니 내림 버튼을 눌러 달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로봇이 미국 카네기멜론대학(CMU)의 로봇 연구실에서 개발되었다. 화장실의 오수 파이프를 검사하는 로봇도 있고, 주방을 무대로 활동하면서 요리할 수 있는 로봇도 머지않아 개발될 것이다.
로봇에 관한 예언은 빗나가기 일쑤였다. 이미 1950년대에 개발될 것으로 로봇 연구자들이 기대를 걸었던 청소하는 로봇은 여지껏 연구실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동식 로봇의 지적 수준이 아직 곤충의 두뇌에도 이르지 못한 탓이다. 외과 수술을 하고 풀을 베고 자동차 타이어를 교환하며 사람을 인식하는 로봇이라 해도 자신의 자리를 떠나면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일 뿐이다. 하지만 로봇 공학은 끝없는 성장과 상상력의 본산으로 영역을 갈수록 넓혀가고 있다.
현재 가장 진보된 형태의 산업용 로봇의 프로세서도 곤충보다 낮은 초당 1천만 명령어를 수행하는 수준이다. 로봇이 사람의 지능에 버금가기 위해서는 초당 100조의 명령어를 계산해야 한다. 곤충의 두뇌 정도인 로봇이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가 되는 데는 앞으로 50여년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CMU 로봇 연구실의 한스 모라벡은 2050년 무렵에 개인용 컴퓨터가 인간 수준의 사고 능력을 가지게 되며 그뒤에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가 되면 초지능 로봇이 인간을 은퇴시키고 ‘사람의 아들’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로봇 연구자들은 다양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기계를 설계하기도 했다. 미국 퍼듀대학의 컴퓨터공학자인 애비 카크는 센서와 카메라를 로봇에 설치해 기억을 진보시킬 수 있는 장치를 선보였다. 유아들이 주변 물체와 인간들에게 교육을 받는 것처럼 로봇이 주위를 인식하는 지능을 높여나가는 것이다. 예컨대 로봇이 물체를 보고 그 내용을 장기기억 저장장치에 저장한다. 지금이라도 이런 시스템을 이용해 진공청소기로 청소하는 로봇을 만드는 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는 로봇을 대량생산 하더라도 경제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인간을 닮은 로봇의 미래가 행복을 약속하는 것만은 아니다. 컴퓨터회사 선마이크로시스템사의 공동 설립자인 빌 조이는 “로봇이 생명체마저 뒤흔들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게놈 프로젝트와 나노기술을 접합해 자신을 복제할 수 있는 미세 기계를 제작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이 개발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바침한다. 이에 따라 인간의 미래를 위협할 수 있는 전자·생물학적 전염병이 발생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모든 컴퓨터가 네트워크로 묶이면서 사람의 유전코드가 로봇 해커에 의해 파괴되는 것도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기계에 인간의 지능을 심는 데 따른 부작용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수병 기자
soo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