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30대 시절 모습. 한겨레 자료
그때도 형은 뽀글이 파마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특유의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세미나를 이끌었습니다. <필름아트>를 기본으로, 비디오테이프에 편집해 담은 <오즈의 마법사> <국가의 탄생>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같은 초기 영화을 보면서 영화이론의 개념과 세계영화사를 지루하지 않게 설명하던 형의 한마디 한마디가 아직도 잊히지 않네요. “‘버드아이 뷰’는 그야말로 공중에 높이 떠 있는 새의 눈으로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촬영 기법인데, 뉴욕 맨해튼 빌딩숲 사이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추격 신 같은 데서 여전히 잘 활용되고 있죠. 여기 이 책에선 조안각이라고 번역해놓았는데….” “자, 이 장면을 다시 한번 보면 영화 속 등장인물이 연주하는 이 트럼펫 소리, 이게 디제틱 사운드라면 연주가 끝난 뒤 나오는 이 배경음악, 이건 논디제틱 사운드겠지!” “이 책 읽어봤어? 뭐? 불어로도 읽어봤다고? 꽤 착실하구먼.” ‘노란문’과 ‘16㎜’는 사라졌지만 그해 형은 단편영화 한 편을 만들고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노란문’ 앞 골목길에서도 영화를 찍던 형의 모습이 기억나요. <지리멸렬>이었던가요? ‘노란문’ 맞은편 주택 중 하나가 배우 김혜자 선생 댁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나요? 편안한 옷차림으로 쓰레기를 내놓던 그분을 몇 번 봤던 기억이 있어요. 몇 년 전 영화 <마더>를 보며, 두 사람이 오래전 가까운 곳에 따로 있었던 것을 얘기했을까, 하는 궁금함이 들기도 했습니다. 무척 재미있고 소중했던 그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6㎜’는 장사가 안 돼 호프집으로 바뀌었고, 어느 날 가보니 ‘노란문’도 문 닫을 거란 얘기가 돌더군요. 형은 영화아카데미에 입학할 거라 했고, 비평분과 세미나는 형 없이 몇몇 누나와 형이 집이나 카페에서 돌아가며 발제를 하다가 결국 시들해졌어요. 꾸역꾸역 시간을 소화하며 군생활을 마쳤습니다. 학교로 돌아간 뒤 또다시 학생회와 학생운동에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었어요. 캐나다로 유학을 가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방송·영화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북미에서도 형의 영화 소식은 들었습니다. 밴쿠버영화제에서 단편영화가 수상했다는 뉴스였어요. 상업영화 입봉작인 <플란다스의 개>는 한국에 잠시 나왔을 때 보고 재밌다! 유쾌하다! 유니크하다! 생각했는데 주변에 영화를 봤다는 사람이 거의 없어 안타까웠네요. 이후 몇 년간 형의 영화를 볼 수 없어 암중모색 중이겠구나 했습니다. 다음에 들려올 소식이 ‘영화평론가’ 봉준호가 아니길 바랐어요. 그리고 마침내 <살인의 추억>이 비범한 느낌으로 곁에 왔습니다. 캐나다, 미국 친구들에게 영화 속 대사를 어떻게 영어로 옮기면 그들도 같이 웃을까 생각했습니다. <괴물>이 개봉했을 무렵, 이런 멋진 알레고리를 형상화한 형에게 저 혼자 부를 호(닉네임)도 하나 만들었어요. 쾌할 쾌자 ‘쾌물’이라고. 전 다시 한국에 돌아와 강의도 하고 방송일도 하며 지내지만, 형 영화에도 등장하는 홈리스(노숙인)로 삽니다. 광화문광장에서 사진도 찍고요. 형이 영화로 세계를 그리는 사람이라면, 전 그저 제가 사는 방식과 활동으로 ‘아르스 비벤디’(행복하게 사는 법)를 추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홈리스 영화 강의 부탁해도 될까요 형에게 하나 부탁하고 한 가지 포부를 밝히며 인사하려고 합니다. 준호 형! 언제든 한가할 때 사진과 영상을 공부하며 가난하지만 역동적으로 자기 삶을 꾸려나가는 홈리스들 앞에서 형의 영화 이야기 한번 들려주시겠어요? 한참 뒤에라도 좋습니다. 그리고 제 포부란 건, 앞으로 형이 만들 영화 어딘가에 공간을 가로지르거나 한구석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어야 할 홈리스 한 사람이 필요하다면 꼭 오디션으로 뽑아주세요! 제가 반드시 그 자리에 갈 테니까요. 선발될 자신이 있거든요! 쾌물 봉준호 감독님! 할리우드에서 남은 일정 즐겁게 보내고 그곳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될 어록도 많이 남겨주세요. 그리고 빛나는 오스카 트로피 한 다발을 가슴에 안고 멋지게 돌아오세요! 영화 동아리 ‘노란문’ 후배 겸 광화문 희망사진사 이상훈 드림 *이 글을 쓴 이상훈씨는 한때 봉준호 감독과 작은 인연이 있는 <한겨레21>의 정기 구독자입니다. <21>은 독자와의 소통, 독자의 참여 확대 차원에서 이 글을 부탁해 게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