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현실 넘나드는 재기발랄한 작가 오스터, ‘쓰면서 사는 삶’의 고독 털어놓다
글쓰기로 돈을 벌어본 사람이라면 글빚에 발목을 잡혀본 적이 한두번쯤은 있을 것이다. 처음 자신이 글재주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언제까지 얼마나 글을 써주겠다고 단칼에 이야기한다. 설마 그 시간까지 쓰레기 같은 글 하나 안 나오랴? 소재와 주제 그리고 집중할 시간만 있으면 그 정도 글은 만들어질 것 같다. 그러나 글을 쓴다는 건 그렇게 녹록한 일이 아니다. 쓰고 나면 이 부분에 욕심도 부리고 싶고 저 부분은 영 틀린 것 같다. 그러다 쓰레기 같은 글도 못 쓰고 마감을 넘기게 된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글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글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최근 국내에 소개된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열린책들)는 바로 빵, 즉 생계를 위해 글쓰기하는 과정에 대한 자전적 소설이다. “글만 쓰면서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한 청년이 어떤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혔으며, 그의 낡은 타자기로 어떤 원치 않은 빵들을 구워내야 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폴 오스터는 이 작품을 통해 이렇게 고백한다. “날마다 너무나 많은 양을 번역해야 했고, 일할 마음이 내키든 말든 날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정해진 작업량을 처리했다. 차라리 프라이팬에서 햄버거를 뒤집는 편이 더 수지맞는 일이었을지 모르나….” 그런데 왜 글을 쓰는가? “내가 아는 한, 이제까지 그런 소설은 아무도 쓴 적이 없었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마침내 잠 속으로 빠져들었을 때쯤에는 추리소설 한편의 뼈대가 완성되어 있었다.”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작가를 흥분시키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마력이었으며 그것 때문에 작가는 고독을 감수하고 글을 써왔던 것이다.
폴 오스터는 그의 산문집 <굶기의 예술>(문학동네)에서도 소설과 소설쓰기의 의미에 대해서 다각적으로 질문하고 답한 바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여러 문인들과의 대담을 통해, ‘글쓰기란 삶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면서 작가가 살아남기 위한 수단’임을 은연중에 비친다. 작가와 대담한 프랑스 시인 에드몽 자베스는 “나의 단어들에 숨을 줌으로써 내가 나 자신이 숨을 쉬도록 돕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말했다. 즉 폴 오스터에게는 ‘햄버거를 뒤집으며 수지를 맞추는 삶’은 진정 숨쉬는 것이 아니며, 고통스럽더라도 ‘단어에 숨을 줌’으로써 살아가는 것이 진정 숨쉬는 것일 것이다.
폴 오스터는 웨인왕 감독의 영화 <스모크>의 원작자로 우리에게 친숙해져 있으며, 국내에는 <뉴욕3부작>(웅진), <아버지의 고독을 찾아서>(호암), <달의 궁전>(열린책들) 등이 출판되어 국내에 일정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사실 이전에 한국에 소개된 폴 오스터의 작품은 <빵굽는 타자기>와는 성격이 판이한 작품들이었다. 그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우연적인 사건 혹은 환상과 지극히 현실적인 묘사를 시침 뚝 떼고 섞어서 이야기를 짓는 재주가 있다. 그는 현실에서는 생겨나기 힘든 일들을 기술하되, 탄탄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전혀 어색하지 않게 풀어나간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품 <우연의 음악>은 어느 날 갑자기 부인이 집을 나간 소방수가 우연히 20만달러를 상속받아 일어나는 일을 그렸다. <빵굽는 타자기>와 같이 나온 폴 오스터의 작품인 <동행>(열린책들)은 미지의 세계 ‘팀벅투’를 향해 여행하는 남자 윌리와 그의 동행인 개 미스터 본즈에 관한 이야기다. 미스터 본즈는 개인데도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인간과 동등하게 사고한다. 그러나 이런 우연적, 환상적인 설정이 독자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판타스틱하게 받아들이게 한다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의 참혹함을 절실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게 폴 오스터 작품의 특징이다. 폴 오스터는 또 폴 벤자민이라는 필명으로 추리소설을 내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추리소설적인 기법도 종종 구사된다. <거대한 괴물>(열린책들)에서는 소설가가 테러리스트가 되고, 또다른 소설가가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최근 <빵굽는 타자기> <동행>과 나란히 출판된 <스퀴즈플레이>는 협박받는 메이저리그의 스타플레이어에 얽힌 사건을 추적하는 사립탐정에 관한 이야기로, 폴 오스터의 추리소설가다운 면모도 맛볼 수 있다.
이민아 기자min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