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의 공백기를 깨고 대중 앞에 나타난 ‘탑골 GD’ 가수 양준일. 위엔터테인먼트 제공
‘자기 삶’을 사는 게 어려운 사회 ‘여자 같다’는 말을 애써 부인하지 않는 남자, 그것을 자신의 개성으로 받아들인 남자에겐 (양준일의 표현을 빌리면) ‘퀘스천 마크’(물음표)가 붙었다. 양준일은 <가나다라마바사>에서 자신을 둘러싼 부정적 시선을 “아으, 밥맛 떨어져. 왜 이렇게 머리가 기냐? 어쭈, 귀걸이까지 했어? 야, 남잔지 여잔지 모르겠다”는 가사로 표현했다. 1992년 한 가요 프로그램에서는 남성 가수 네 명을 모아 ‘예쁜 오빠상’ 후보에 올렸는데, ‘예쁘다’는 얘기를 들어봤냐는 질문에 다른 이들은 모두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지만 양준일만은 “그런 얘기 많이 들었다”며 활짝 웃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 용인되던 남성상과 전혀 다른 모습을 태연히 드러낸 그는 종종 누군가의 심기를 거스르는 존재였다. 그런 그에게 “생각이 어리다”며 면박 주던 사회자, 무대에 돌을 던진 관객,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게 싫다”며 비자를 갱신해주지 않은 공무원이 1990년대의 한국이었다. JTBC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3>를 통해 돌아온 양준일이 ‘탑골 GD의 귀환’을 넘어 하나의 신드롬을 일으킨 것은, 그의 이야기가 이방인 눈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경험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우리’에 속하는 이들에겐 풍요와 다양성의 시대로 기억되지만 타자에겐 편협한 야만성을 드러냈던 시대를 겪은 이가, 그럼에도 훼손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모처럼의 희망을 보여준다. 견고한 이성애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단아적인 면모로 배척됐던 그가 “겸손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계획을 말하는 가장이 되어 돌아왔고, 자신을 내쳤던 한국 사회를 원망조차 않는다는 사실은 양준일에게 죄책을 느낀 이들을 빠르게 안도시켰다. 하지만 이 모든 드라마는 양준일이 과거를 견뎌냈고, 자신을 지켜냈고, 마침내 돌아왔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다. 에프엑스(f(x)) 멤버였던 엠버는 최근 미국 <시비에스>(CBS) 방송 <디스 모닝>과의 인터뷰에서 고 최진리(설리)에 관한 기억과 그를 둘러싼 환경을 언급했다. “난 항상 사람들이 설리를 그냥 내버려뒀으면 했다. (중략) ‘설리가 이번에는 무슨 행동을 했다’라는 기사를 볼 때마다 ‘이게 왜 이렇게 큰일인 거지? 이건 그냥 어떤 여자애가 자기 삶을 사는 모습일 뿐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2020년이 시작되자마자 코걸이를 한 여성 배우와 온라인 유행어를 사용한 여성 아이돌이 또다시 악성 댓글에 시달리고 ‘논란’ 기사의 타깃이 되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삶’을 사는 모습을 그냥 내버려두자는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멀어 보인다. ‘시간여행자’가 던지는 중요한 질문 양준일은 JTBC <뉴스룸>에서 “살면서 머릿속의 쓰레기를 많이 버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의 과거를 보면 그게 미래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노력을 생활처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긴 고통에 관해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겐 과제가 남았다. 지금 양준일에게 열광하는 한국 사회는 과거의 양준일이 배척당한 이유였던 ‘다름’을 정말 수용하는 사회일까? 30년 뒤 우리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미안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미안해할 기회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시간여행자’ 양준일의 귀환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최지은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