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동생과 병아리가 한방에 있었더니 봄 날씨는 변덕스러워서 갑자기 샛바람이 불며 추워집니다. 젖을 먹는 짐승에 비해 병아리들은 병이 잘 납니다. 저희끼리 모여 재재거리며 서로 속으로 파고듭니다. 날개를 늘어뜨리고 꼬박꼬박 조는 놈을 골라 재빠르게 손을 써야 합니다. 들기름 한 방울 먹이고 따뜻한 아랫목에 누더기 이불을 덮어놓습니다. 한참 있으면 재재재 삐악거리며 살아서 나옵니다. 어느 해는 동생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병아리들도 태어났습니다. 아랫목에 뉘어놓았던 아기를 윗목에 누이고, 병아리 둥주리를 아랫목에 들여놓았습니다. 갑자기 아기가 많이 울고 열이 나고 아팠습니다. 지나가던 삼신할머니가 병아리 둥주리를 보고 “이게 탈이구먼”이라고 하였습니다. 병원도 없고 약국도 없던 시절 아는 소리를 좀 할 줄 아는 자칭 삼신할머니는 아무 연고도 없이 떠도는 이였습니다. 아기가 있는 집을 골라 다니며 조언해주고 빌어주고 약간의 수고비와 잠자리를 받고 살았습니다. 상에다 정화수 한 그릇 떠다놓고 성의껏 복채를 올려놓습니다. “하늘에 계신 삼신할머니, 이 아이가 오이 크듯 가지 크듯 아무 탈 없이 클 수 있도록 돌보아주소서.” 병아리를 사랑방으로 옮기고 청소하고 아기를 아랫목 제자리에 뉘었더니 괜찮아졌습니다. 병아리가 태어나면 개나 고양이를 미리 교육합니다. 고양이나 개 앞에 병아리를 갖다놓으면 얼른 잡아먹으려고 덤빕니다. 회초리를 준비하고 있다가 병아리를 건드릴 때 슬쩍슬쩍 몇 번 때립니다. 이렇게 교육 기간이 끝나면 집안의 모든 짐승이 흐뭇하게 한데 어우러져 살게 됩니다. 병아리는 사람만 얼씬하면 발끝에 차일 정도로 따라다닙니다. 바람이 불면 솜털이 날리면서 금세 날아갈 것 같습니다. “쭈쭈” 하면 쪼르르 모여들어 한 아름 안깁니다. 병아리를 데리고 놀다보니 점심 만들 시간이 늦었습니다. 허둥지둥 물동이를 이고 부지런히 오는데 탁 소리가 나서 보니 병아리를 밟았습니다. 조그만 병아리가 터지면서 투명하고 엷은 막이 꽈리처럼 부풀어올랐습니다. 60년이 다 된 일이지만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올라 그 병아리한테 미안한 마음을 잊을 수 없습니다. 병아리는 크면서 다양한 색깔로 바뀝니다. 암평아리는 날개가 나고 꽁지도 새처럼 상큼하게 나며 참새처럼 포르르 소리가 나게 날기도 합니다. 수놈은 꽁지가 뭉툭하고 다리가 어청한 것이 날개와 꽁지가 암놈보다 늦게 납니다. 봄에 모심기가 시작되기 전 논에는 독사리(둑새풀)가 비단처럼 자랄 때가 있습니다. 점심 먹고 잠깐 쉴 참에 온 식구가 짐승 새끼들과 논에서 모여 놉니다. 돼지 새끼도 나오고 개도 강아지를 데리고 풀밭으로 나옵니다. 병아리도 불러냅니다. 닭장 문을 열고 쭈주주주 쭈쭈쭈 주주우우우~ 하고 부르며 먹이를 흘리고 앞장서 논으로 가면 삐악삐악 재잘거리며 잘 따라옵니다. 우리 가족은 아무리 바빠도 병아리들과 잠시라도 같이 놀아줍니다. 풀밭에 누우면 병아리들은 재잘거리며 몰려와 배 위고 다리고 손이고 밟고 올라와 작은 주둥이로 비비고 쪼아보기도 하고 같이 놉니다. 맑은 하늘에 흰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노라면 천국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모심기가 시작되면 천국 같던 병아리의 놀이터가 없어집니다. 우리 집 뒤로는 보 도랑물이 역수로 흘러 강으로 한 1㎞쯤 흐릅니다. 큰 밤나무가 세 그루 있고, 논둑 위로 뽕나무를 줄로 심어 누에를 먹입니다. 논둑의 뽕나무 밑으로 풀밭이 도랑물과 이어집니다. 닭장을 밤나무 밑에 짓고 문을 열어놓으면 물을 싫어하는 병아리들은 자연히 뽕나무 밑 풀밭에서 놀아서 운동시키기가 더 쉬워졌습니다. 수지도 모르고 먹는 달구새끼들 장시간 밖에 놓아둘 수는 없습니다. 날짐승이 채갈 수도 있고 족제비가 잡아갈 수도 있어서 한 시간쯤 놀면 불러들여 가둡니다. 병아리는 6개월쯤 되면 억세고 버르장머리 없는 닭으로 변합니다. 닭은 극성스러워서 논물에도 들어가 벼 이삭도 쪼아 먹고 논두렁도 파 뒤집습니다. 아버지는 기껏 농사지어놓으면 수지도 모르고 먹는 버르장머리 없는 달구새끼들을 절대 내어놓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전순예 1945년생 <강원도의 맛>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