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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착하게 살았어…그런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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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3-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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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악순환에 빠져들어가는 선한 사람들…<복수는 나의 것>에 나타난 건조한 세계

사진/ <복수는 나의 것>은 하드보일드 문체로 잔혹한 세상을 관객과 대면시킨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찬욱 감독이 <복수는 나의 것>(3월29일 개봉)을 처음 공개하던 시사회에서 ‘뜻밖의’ 말을 했다. “이제껏 본 한국영화 중에서 제 취향에 가장 잘 맞았습니다. (그러니) 재미있게 보세요.” 반응이 어떨지 가슴 졸이며 ‘정말 애써 만들었습니다, 이전에는 너그럽게 봐주세요’라는 인사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던 게 관례였다. 이번처럼 ‘영화 잘 나왔으니 알아서 봐라’라는 투로 들릴 수 있는 말을 꺼낸 감독은 없었다. 오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스크린 위에 흩날리는 그의 붓질은 거침없는 자신감과 세련된 능숙함으로 넘쳐난다. 다만 그의 취향에 동의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만 남을 뿐이다.

착한 유괴, 착한 복수…

<삼인조> <공동경비구역 JSA> 등의 전작에서 무장강도와 북한군은 ‘악’ 그 자체로 그려지지 않았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도 유괴범은 ‘착한 나라’ 사람이다. 류(신하균)는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장애인이다. 굉음이 쩌렁쩌렁 울리는 위험스런 공장에서 류 혼자만 아무런 방음장치 없이 고독하게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하나뿐인 혈육인 누나가 죽어간다. 신부전증이 악화돼 신장을 이식하지 않으면 얼마 살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류 자신은 정리해고당한다. 류는 장기밀매단과 접촉해 자신의 신장과 1천만원(퇴직금 전부!)을 넘겨주고 대신 누나를 살릴 신장을 받기로 한다. 하지만 자신의 신장과 돈만 강탈당하는 결과를 맞는다. 뒤늦게 신장 기증자가 나타났는데, 어이없게도 이제는 수술비가 없다.


류의 애인으로 류에게 유괴를 권하는 영미(배두나)도 ‘나쁜 나라’ 사람은 아니다. “바람직한 자본의 이동이자 화폐가치의 극대화”를 위해 벌이는 유괴는 ‘착한 유괴’라는 논리로 류를 부추긴다. 영미의 말은 신념에 가득 차 있다. 혁명적 무정부주의자동맹을 만들어 “민중생활 파탄내는 신자유주의를 박살냅시다”라고 되뇌이며 미군 축출, 재벌 해체라고 쓴 ‘찌라시’를 뿌리는 모습이 어쩐지 옹색하기는 해도.

딸을 유괴당하는 동진(송강호)도 못된 인간은 아니다. 고졸 출신의 전기 기술자로 청춘을 보내며 한 재산을 모았지만 이혼하고 외롭게 살던 터에 덜컥 딸을 잃는다. 동진이 형사에게 독백하듯 말한다. “착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제게 이런 일이….”

선한 인간들이 서로에게 못할 짓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이걸 꼭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착한 유괴를 발단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일이 얽혀간다. 그리고 각자가 당한 이유 없는 폭력을 상대방에게 되갚으려는 복수의 잔인함은 도를 더해간다. 신장을 아그작아그작 씹어먹고, 머리가 짓이겨지도록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 전기고문이 살해수단이 된다. 지옥도가 따로 없다. 더 끔찍스러운 건 상대방이 악하지 않다는 걸 서로가 잘 안다는 점이다. “너 착한 놈인 줄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마음 이해하지?”

잔혹한 세상과 대면하라

인간이 인간에게 잔인해지는 모습은 김기덕 감독의 작품에서 잘 드러나 왔다. <나쁜 남자>에서는 사랑하는 여대생을 창녀로 만들어버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깡패두목(조재현)에게 실린 감독의 눈길은 특정인에 대한 감정이입을 요구한다. <복수는 나의 것>에는 그런 게 없다. 냉정하게 거리를 두고 지켜볼 뿐이다. 비극을 통해 감정의 정화를 얻는다는 카타르시스 효과를 염두에 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영화를 통해 냉혹한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세상에 개입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읽힌다. 그러지 않고서야 웃음과 과장을 걷어낸 ‘하드보일드’ 필체로 잔혹한 세상을 굳이 대면하게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어정쩡한 타협으로 ‘그래도 난 저들보다 낫지’라는 안도감을 주는 영화에 비하면 지독스러운 용기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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