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그간의 고생을 이야기하듯 이틀이 지난 밤중에 뒷골목에서 조그맣게 고양이 소리가 들립니다. 반가워서 맨발로 뛰어나갔습니다. “고고야, 어서 와.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고고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도로 골목 끝까지 돌아가 야옹야옹합니다. 벽을 기어오르는 시늉도 합니다. 놀라서 빨리 뛰어 골목으로 도망갔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아주 몸을 웅크리고 공포에 질려 벌벌 떠는 시늉도 합니다. 한 20m 되는 좁은 골목을 들어오는 데 30분 넘게 걸렸습니다. 여러 번 이야기한 끝에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집에 들어오자 허겁지겁 밥을 먹더니 잠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굴려도 모르고 꼬박 하루 밤낮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애교가 더 늘었습니다. 1층 집이니 통제가 안 됩니다. 문 열 때마다 가만히 뛰어나가고 창문을 넘어 마당 풀밭에 돌아다니며 열심히 사냥합니다. 강아지처럼 큰 쥐가 기어가면 무서워서 집 안으로 도망칩니다. 아직 올챙이 꼬리가 붙은 개구리도 잡아오고 골방 쥐새끼도 잡습니다. 사냥한 다음엔 물고 와서 야옹거리며 보여줍니다. 칭찬해주면 가지고 놀다가 먹지 않고 내 침대 밑에 갖다놓았습니다. 마당 있는 집에 살다보니 점점 짐승을 늘렸습니다. 강아지도 네 마리나 키웠고 열두 마리의 꼬꼬도 키우게 되었습니다. 꼬꼬 먹이로 참깨를 주다보니 마당에 참깨가 저절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먹이가 있으니 베트남에서 보기 드문 귀한 새들이 날아들었습니다. 시내에서는 참새나 겨우 볼 수 있는데 까치처럼 큰 새도 날아와 놀다 갑니다. 아주 예쁜 파랑새 부부가 하루에 한 번씩 꼭 날아와 참깨를 먹으며 즐겁게 놀다 갔습니다. 고고는 파랑새가 올 때마다 풀밭에 숨어서 엉덩이를 얄랑거리며 잡을 기회를 노립니다. 그래도 어린놈이 설마 새를 잡으려니 했습니다. 하루는 작은방에 들어가 보니 파랑새 털이 많이 흩어져 날고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파랑새 한 마리가 혼자 와서 슬픈 소리로 울다 갑니다. 남편은 “고고 이 새끼, 시카리(서캐) 새끼. 그 새는 아빠가 키우는 건데 잡아먹으면 어떻게 해!” 하며 쥐어박았습니다. 고고는 꽁지 있는 개구리, 골방 쥐새끼는 잡아도 놔주고 파랑새는 몰래 먹고 털만 남겼습니다. 어물쩍하다 중성화수술을 못 했는데 고고한테 발정기가 왔습니다. 며칠 동안 아아오옹~ 아오오옹~ 별나고 시끄럽게 쉬지 않고 울어댑니다. 한참을 앙앙거리던 고고가 달려오더니 나한테 껑충 뛰어올라 힘을 다해 왼쪽 팔을 물고 할퀴며 대들었습니다. 억지로 떼어서 창밖으로 던지고 창문을 닫았습니다. 다시 들어오려고 뛰어올랐지만 창문에 쿵 부딪혀 떨어졌습니다. 고고는 집 뒷골목으로 도망갔습니다. 팔에 고고 발톱 자국이 나고 피가 흐르고 맺혔습니다. 창문을 너무 빨리 닫아 창에 부딪힌 게 잘못되지는 않았나, 걱정입니다. 거지꼴이 되어 납작 엎드려 돌아오다 사흘째 되던 날, 오후 2시쯤 되었는데 집 뒷골목에서 고고 소리가 아주 조그맣게 들립니다. 남편이 듣고 고고 이놈 못된 버릇을 한다고 내쫓아버린다고 달려갑니다. 내가 얼른 뛰어가서 “고고야 괜찮다, 어서 들어와라” 했습니다. 이번에는 아주 미안해서 쩔쩔매는 시늉을 합니다. 작은 소리로 아옹아옹하고 벽을 확 할퀴는 시늉을 하고 엎드려 있기도 합니다. 거지꼴이 다 된 놈이 납작 엎드려서 아주 조금씩 조금씩 기어오느라고 들어오는 데 1시간은 걸렸습니다. 씻기를 싫어하는 놈이 따뜻한 물에 씻기니 가만히 있습니다. 서둘러 중성화수술을 했습니다. 고고는 창문을 넘어 밖으로 나다니다 흙 묻은 발로 들어와 꼭 침대 위에 올라가 잡니다. 40℃ 넘는 날씨에도 대낮에 침대 위에 올라가 매일 이불을 뒤집어쓰고 늘어지게 잡니다. 고고는 베트남에서 맞이한 첫 애완동물로 이래도 저래도 나의 애를 태우며 같이 살았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강원도의 맛>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