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tents Y 제공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 했으나 그러나 ‘열심히’ 살고자 하는 구하라의 의지는 끊임없이 가로막혔고 그의 삶은 그저 가십으로만 취급당했다. 그가 비동의 성적 촬영물 유포 협박 피해를 당했다고 밝히자,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구하라 동영상’이 올랐다. <미디어오늘>은 지난해 9월부터 1년간 구하라를 다룬 보도를 분석한 결과 “언론은 악성 댓글을 기사로 확대재생산했고, 구하라의 협박 피해 사건을 게임처럼 다루거나 자극적인 내용을 활용했으며, 그가 ‘피해자답지 않다’는 잘못된 보도까지 냈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는 최종범의 공소 사실 중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를 제외한 협박, 강요, 상해, 재물손괴 등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당시 구하라의 법률대리인 쪽은 “우리 사회에서 피고인 최종범이 행한 것과 같은 범죄행위가 근절되려면 보다 강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항소심에서는 부디 피고인 최종범에 대하여 그 죗값에 합당한 처벌이 선고되기를 희망합니다”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구하라는 항소심 결과를 볼 수 없게 됐다. 올봄, 버닝썬 게이트와 연결된 ‘정준영 단톡방 사건’을 보도했던 강경윤 SBS 펀이(funE) 기자는 구하라가 당시 직접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와 어떤 식으로든 진실 규명을 돕고 싶어 했으며 실제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최근 밝혔다. 구하라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 했고, 다른 불법촬영 피해자들을 위해 연대했고, 정의가 실현되기를 원했다. 지난 10월, 설리의 사망 이후 포털 사이트 다음을 운영하는 카카오는 연예 섹션 뉴스 댓글 서비스를 잠정 폐지했다. “공론장인 댓글창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줄이려는 노력”의 하나로 연예인, 특히 여성을 향한 혐오 발언이 증폭되는 고리 하나를 네이버보다 먼저 끊은 것이다. 11월1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 양형 기준을 재정비해달라”는 청원에는 구하라 사후 참여 인원이 크게 늘어 23만 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왜, 누군가의 죽음만이 변화의 계기가 되어야 할까.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유의미한 응답이 돌아오기는 할까. 잔혹한 게임에 설리도, 구하라도 이제는 그 지속가능성조차 의심스러운 케이팝이라는 산업 안에서 자란 스타이자 20대 한국 여성인 설리와 구하라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로 보는 것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그들은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어디서도 안전하지 못했으며, 유명인이었기에 더 많은 ‘대중’에게서 비난받고 모욕당했다. 성폭력 피해를 입었으나 사법 제도 안에서 충분한 보호도 보상도 받지 못하고 2차 피해로 고통받은 여성들의 사례를 우리는 너무 많이 알고 있다. 단톡방, 다크웹, 텔레그램을 통해 무수한 디지털 성폭력범죄가 벌어지고 스토킹방지법이나 혐오표현금지법조차 만들어지지 않는 이 병든 사회에서 여성들은 필사적으로 싸우고, 죽어가고 있다. 이 뿌리 깊은 불의를 매일 마주한다는 것은 매 순간 분노와 모멸감 속에 살아가야 함을 의미하며 누군가에겐 생의 의지를 꺾어놓을 만큼 잔혹한 무게이기도 하다. 설리와 구하라는 용기 있게 맞서려 했지만, 한국 사회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데 실패했다. 아니, 애초에 이들을 절망하게 만든 것이 한국 사회였다. 불과 6주 전, “더는 어떤 여성도 함부로 끌어내려져선 안 된다”고 바로 이 지면에 썼다. 그러나 또다시 한 명을 잃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늘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란다. 최지은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