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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어리버리해서 더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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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3-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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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처진 어깨를 다독이는 명랑소녀 장나라의 성공비결

사진/ TTL광고의 '신비소녀' 임은경과 여러 모로 대조되는 이미지를 가진 장나라. '빈틈'은 그의 독특한 매력이다.
‘명랑소녀의 성공기’가 방송연예계에 화제다. 명랑소녀란 애칭의 가수 겸 탤런트 장나라(21)가 10여개의 광고·시트콤·드라마 등을 종횡무진 누비며 새로운 청춘의 표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쳇말로 ‘나라가 짱’인 시대다. 그가 주인공으로 출연중인 드라마도 시청률 30%를 훌쩍 넘기며 순항하고 있다. SBS의 드라마스페셜 <명랑소녀 성공기>인데 마치 장나라를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 만큼 장나라의 실제상황과 묘하게 겹쳤다. 현재 장안에 ‘∼슈’, ‘∼유’로 끝나는 극중 장나라의 앙증맞은 충청도 사투리가 인기다.

빈틈이라는 새로운 매력

1981년생. 중앙대학교 2학년에 재학중. 2001년 5월 데뷔. 대략의 프로필만 살피면 갓 성인식을 치른 젊은 여성이 빠른 속도로 성공시대를 열었다는 인상을 준다. 장나라는 ‘예견된 대박’은 아니었다. 데뷔곡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로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장나라는 별반 튀지 않는 신인 여가수에 지나지 않았다. 유명 연극배우 주호성의 딸이란 사실, 리듬 앤 블루스 창법을 능숙하게 구사한다는 점 정도가 신인 여가수 장나라의 출현을 특별나게 장식한 화제성 요소였다. 데뷔곡의 반응도 미지근했다. 전문가의 눈에도 장나라의 잠재성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나 보다. 국내 연예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씨도 데뷔 앨범을 준비중인 장나라에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는 일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장나라가 드레스 차림으로 성숙하고 고혹적인 눈빛을 빛내고 있는 1집 사진을 보면 데뷔 당시엔 장나라 본인이나 그의 기획사조차도 장나라의 특장점에 대해 제대로 감을 잡지 못한 듯하다.


장나라의 성공 스토리가 본격적인 시동을 건 것은 지난해 여름 문화방송의 청춘시트콤 <뉴논스톱>에 중간 투입되면서부터다. 장나라는 당시 탤런트 이재은 대신 양동근의 상대역으로 나섰다. 이른바 대타였다. 구질구질한 짓만 골라 하는 ‘구리구리’ 양동근을 짝사랑하는 여대생. 그리고 예쁘장한 외모와 상반되게 어리숙한 실수를 일삼는 속칭 ‘어리버리’한 인물이 장나라의 배역이었다. 근데 이 같은 모습이 청소년층의 눈길을 놀라운 속도로 사로잡았다. 남성들은 못난이 양동근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장나라에게 ‘나도 저런 여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이입했으며, 여성들은 질투심을 유발하지 않는 만만한 아가씨의 좌충우돌담을 기분좋게 받아들였다. 이와 맞물려 가수 장나라의 고운 발라드곡 <고백>과 예쁜 댄스곡 <4월이야기>도 데뷔곡의 신통찮은 반응을 뒤집고 연타석 히트를 쳤다.

여성이라 말하기에는 앳되고, 소녀라 하기엔 나이가 든 장나라는 ‘빈틈’이란 새로운 매력을 덧칠하면서 스타로 떠올랐다. 이는 2000년과 2001년 대중문화계를 강타한 TTL CF의 ‘신비소녀’ 임은경에 반대되는 요소다. 임은경은 말이 없고 무표정하며 궁금증을 자극하지만, 장나라는 어리광 섞인 콧소리와 생동감 있는 표정으로 대중의 근거리에서 살아 숨쉰다. 이들 가운데 어느 쪽이 우위인지 따지는 것은 부적절하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엔 장나라의 것이 통하고 있다.

신비 소녀 임은경의 뒤를 이어

해독을 요하는 암호 같은 이미지 광고가 쇠퇴하고 “부자 되세요”의 BC카드 광고처럼 직설적인 카피와 이미지로 승부를 거는 CF가 득세하는 경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바야흐로 골치 아프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보다 친근하게 반응할 수 있는 무언가를 더 선호하는 시대인 것이다. 이는 적극적인 개입보다 소극적으로 위무의 손길을 원하는 대중의 지친 심리 상태를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명랑소녀 장나라의 진가는 바로 사람들의 처진 어깨를 토닥거리는 유쾌한 응원가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신비’에는 깨지는 일만 남아있다. 반대로 장나라의 자산인 ‘빈틈’, 또는 ‘미완’의 이미지는 채우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 측면에서 장나라를 향한 현상이 한시적인 과열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희망을 가져본다.

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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