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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역사의 속살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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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3-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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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역사적 사실을 되돌아보는 <세계를 속인 거짓말> <음모와 집착의 역사>

교과서의 딱딱한 역사서술에 진력이 났다는 이들이 많다. 온통 외어야 할 암기사항들만 줄줄이 널린 지뢰밭으로 역사 과목을 기억하는 이들도 있다. 이긴 자의 역사, 공식기록만이 한 두권에 축약돼 시험풀이용으로 전달된 탓이다.

<세계를 속인 거짓말>(이종호 지음, 뜨인돌 펴냄, 02-734-7711, 8500원)과 <음모와 집착의 역사>(콜린 에번스 지음·이종인 옮김, 이마고 펴냄, 02-337-5660, 1만5천원)는 교과서의 공식역사에선 거론되지 않는 이면의 세계를 그려내었다. 둘 다 지은이가 정규 역사학자 아닌 대중 저술가다. 이종호씨는 프랑스에서 열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과학자 출신으로 지금은 각종 강의와 저술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콜린 에번스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컨설턴트로 활약하면서 역사와 범죄학, 법에 대한 흥미로운 책들을 여러 권 펴냈다.

링컨은 정직한 대통령?


사진/ 링컨은 진정한 노예해방론자였는가?
<세계를…>은 ‘역사가 항상 진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부제 그대로 역사 속에 교묘히 감춰진 거짓말들을 들춰내고 있다. “세계를 속이고 지금껏 독자들을 기만한 열한 가지 거짓말”의 첫째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다. 공식역사는 콜럼버스를 인류 역사의 신기원을 연 위대한 탐험가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신대륙을 찾아나선 그의 본심은 과연 무엇이었나. 그를 머나먼 대양으로 끌어낸 추동력은 결코 알려진 대로 진지한 탐험정신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금덩이가 돌멩이처럼 굴러다니는 신천지에서 한몫 잡으려는 축재욕이 그를 신대륙 발견이라는 우연으로 이끌었다. 더구나 신대륙은 유럽인에게만 신대륙이었을 뿐, 실제로는 이미 수천만의 아메리카 원주민이 찬란한 문명을 이룬 채 살고 있는 구대륙이었다.

링컨 또한 오랫동안 거짓 아우라가 휘감아온 대표적 인물로 지목된다. 링컨은 수백년간 목화농장에서 비참한 학대를 감내해야 했던 흑인노예를 해방시킨 위대한 인권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 또 가장 정직한 대통령으로 한국의 대선후보들도 너나없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위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책에서 까발리는 그의 모습은 그러한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링컨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1860년 공화당 지명대회는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지명대회’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링컨은 시카고에서 열린 지명대회 동안 고향인 스프링필드에 머물면서 심복들을 시켜 지저분한 정치공작을 펼치도록 했다는 것이다. 링컨 진영은 상대 후보의 대의원들이 투표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는가 하면, 대의원들을 상대로 뇌물을 살포하기도 했다. 정직의 대명사가 실제로는 정직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폭로다.

노예해방과 관련해서도 링컨은 알려진 것과 달리 노예해방의 철저한 주창자는 결코 아니었다. 물론 그는 노예제도를 혐오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노예에 대해 온정적인 태도를 취하긴 했다. 그러나 그가 노예해방을 위해 남북전쟁까지 불사했다는 인식은 실로 엄청난 거짓말이다. 링컨은 뉴욕 <트리뷴>지의 호레이스 그릴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전쟁에서 나의 최대 목표는 연방을 구하는 데 있으며 노예제도를 유지하거나 없애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어떤 노예도 해방시키지 않고 연방을 유지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이 책이 다루는 역사적 거짓말은 모두 세 종류다. 첫번째는 승자의 입장에서 왜곡된 기록이며, 두 번째는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용인하는 거짓말이다. 1911년 영국 필트다운에서 발견돼 40년 동안 인류 진화의 주요한 고리로 각광받던 원시인의 유골은 실제로는 사람의 두개골에 오랑우탄의 턱뼈를 가공해 붙인 것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너무도 뻔해보이는 거짓말이었음에도 당시 사람들은 쉽게 속아넘어가 ‘에오안트로푸스 도스니’라는 학명까지 부여했다. 원시인의 뇌가 원숭이의 뇌보다 커야 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이 거짓말을 진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언론매체의 조작 또한 역사적 거짓말을 퍼뜨리는 요인이다. 이 책은 대표적으로 대중 추리물과 SF물로도 만들어진 ‘파라오의 저주’를 들고 있다. 파라오의 저주란 투탕카멘 무덤의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이 잇따라 하나둘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유포된 것이다. 그러나 그 저주란 것이 판매부수를 늘리기 위한 각 언론의 선정적 과대포장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었다. 실제로 발굴에 참여한 1500여명 중 발굴 뒤 10년 이내에 죽은 사람은 불과 21명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나마 대부분은 직접 발굴과는 무관한 일을 한 사람들이었다.

사진/ 아문센(오른쪽)과 스콧(왼쪽)의 경쟁은 어떤 동기에서 비롯됐을까? 두책은 역사의 이면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음모와 집착의 역사>는 역사적 라이벌들 사이에 벌어진 불화와 반목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잉글랜드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 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올리버 크롬웰 대 찰스 1세의 피비린내나는 권력투쟁에서 아문센과 스콧의 남극탐험 대결, 에드가 후버 FBI 국장과 마틴 루터 킹 목사 사이의 민권운동을 둘러싼 갈등까지 세계사를 뒤흔든 10대 라이벌들의 음모와 암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러면서 그들이 불화를 일으킨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따진다.

역사적 라이벌들간 불화의 이면엔…

예를 들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엘리자베스 1세와 고종사촌 메리의 4반세기에 걸친 오랜 갈등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공식역사가 설명하듯 개신교 군주(엘리자베스)와 가톨릭 군주 사이의 종교적 갈등만은 아니었으며, 야심만만한 처녀 여왕과 성적 매력이 넘치는 미모의 여왕(메리) 사이의 질투심과 시기심이 더 주요한 동기였다고 책에서는 지적한다. 이러한 주장이 단순한 추론에 그치지 않고 근거 있는 자료들을 토대로 재구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저자는 등장인물의 말 한마디에도 출전을 다는가 하면, “출간되지 않은 사문서까지 찾아내 검토하면서 역사적 진실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심프슨 부인과 영국 왕 에드워드 8세의 왕관을 건 사랑 뒤에는 심프슨 부인의 뛰어난 성적 테크닉이 자리잡고 있었다든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킹 목사가 섹스행각을 벌이다 FBI에 도청당해 오랫동안 전전긍긍했다는 등 알려지지 않은 비사들도 여럿 소개돼 흥미를 더한다.

두권 다 대중적 흥미를 겨냥한 책들이면서도 나름의 미덕이 적지 않다. 묻힌 행간의 역사를 읽어내려가는 재미가 쏠쏠하거니와, 무엇보다 위대한 인물과 사건들의 이면과 치부를 들춰냄으로써 단단하게 굳어버린 상식에 힘껏 망치를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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