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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공유하고 싶은 기쁨’을 알게 되길

제10회 손바닥문학상 가작 수상 고문희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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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1 14:51 수정 : 2019-11-1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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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내버스를 탔다. 낮 시간대라 승객이 별로 없어 버스 안은 정류장을 알리는 방송만 들릴 뿐 고요했다. 차창에 기대 스쳐 지나는 풍경을 보며 꽤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곧 그런 생각은 고요를 깨고 들려온 누군가의 전화 통화로 시내버스라는 걸 상기하게 했다. 목소리는 버스 뒤쪽에서 들려왔다. 중년 남자의 목소린데 여자처럼 톤이 높아 귀가 쟁쟁했다. 낭만은 무슨, 헛웃음을 지으며 의자에 등을 기대 눈을 감았다.

남자의 전화 통화는 굳이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내용을 짐작하게 했다. 남자는 취직했고 그걸 상대에게 알리고 있었다. 무척 기쁜 듯했다. 하지만 무슨 사정인지 전화받는 상대가 남자의 기분을 받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남자는 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끊길 반복했다. “여보세요? 제가 이번에….” “손님, 급한 전화 아니면 나중에 내려서 하세요.” 버스기사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남자의 말을 끊었다.

남자는 누구에게 전화했는지, 상대는 왜 기쁘게 응대해주지 않는지, 남자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보다 두 정거장 앞서 내린 남자의 초라한 행색을 보며 지난한 삶을 생각했고 앞으로 그가 걸어갈 길을 상상했다. 그리고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썼고 지난해 겨울 손바닥문학상을 받았다. 밀린 집안일을 하다 당선 전화를 받고 남편과 딸과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바로 축하 문자와 전화가 올 거라 기다렸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 빨리 기쁨을 공유하고 싶은데, 5분이 마치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축하 문자가 연이어 들어왔다. 일일이 답하고 잠시 숨을 돌리며 그날 버스에서 본 남자를 생각했다. 남자도 누군가와 기쁨을 공유했길, 그 누군가가 남자의 사랑하는 가족이길 바랐다.

손바닥문학상을 받은 뒤 한동안 손을 놓았던 글쓰기에 전념했다. 주저앉아 있던 내게 손바닥문학상이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이 가을 첫 소설집을 출간했다. 솔직히 기쁨보다 두려움이 크다. ‘작가’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가 글쓰기를 방해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용기 내어 걸어갈 생각이다. 만약 다시 주저앉고 싶을 땐, 그때 손바닥문학상이 내밀어준 온기를 생각할 것이다.

누군가와 기쁨을 공유하고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받는다는 건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다. 그 기쁨을 알기에 올해 ‘손바닥’ 수상자들에게 미리 진심 어린 축하 인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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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손바닥문학상 가작 수상 고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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