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읽기 5 l 국가주의
되풀이 되는 외국인 선수 귀화 논란… 우리는 정말 외국인에 관대하단 말인가
간혹 조심스러운 경우가 있다. 흠칫, 놀란다. 도대체 내가 열광한 것, 내게 ‘새로운 열병’을 선사한 저 뜨거운 것의 정체란 무엇이란 말이더냐, 잠시 숨을 고를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축구장에서 폭력이 발생할 경우, 그러니까 그라운드 안에서 선수끼리 티격태격하는 게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 훌리건의 악명 높은 조직적 폭력이 아니더라도, 광기와 흥분에 못 이겨 밤새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광란의 축제(또는 절망적인 파괴)를 벌일 때, 아, 과연 축구란 무엇인가,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그런 사태가 나면 축구란 결국 민족주의·집단주의·남성주의라는 이상한 힘의 격전장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결국 기이한 ‘힘’에 대한 남성만의 숭배의례가 아니냐는 반론이 제기되는데, 선뜻 부정하지 못한다.
귀화 선수 반대, 한국인이 아니잖아!?
축구와 민족주의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의 경우, 그 나라의 축구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프로축구는 사양산업에 가까운 반면 국가대표 경기만은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올해 프로축구를 개막하는 아디다스컵(그것도 개막전) 중계를 완전히 외면한 공중파 3사가 연일 월드컵을 떠들고 축구 중흥을 소리 높이는 것은 역시 우리의 축구 문화가 ‘시청률+국가주의’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잘 보여준다. 핀란드와의 평가전이 끝난 직후 방영된 MBC의 월드컵 광고는 얼마나 섬뜩하고 유치했던가. 해병대의 훈련 모습과 대표선수들의 경기 모습이 교차편집되면서(이임생 선수의 붕대감은 그 유명한 투혼?) ‘그라운드에서 쓰러지더라도 국가를 위해 온몸을 바치겠노라’는 대표선수들의 부릅뜬 눈을 보면 이건 민족주의가 아니라 아예 ‘국가주의’의 천박한 행태를 보는 듯하다.
그런데 정말 난감한 것은 내 마음속 어딘가에 잠복해있는 민족주의다. 브라질 출신의 산드로(수원 삼성 소속)를 귀화시켜 국가대표로 써야 한다는 논란 때문이다.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지만 내 스스로 답하기를 ‘절대 반대’였다. 까닭은? ‘한국인이 아니다’는 이유에서다. 축구계 일각에서는 ‘경기력이 두세배쯤 된다면 외국 선수를 귀화시킬 수도 있다’는 주장이 줄기차게 제기되어왔다. 성남의 샤샤 선수도 히딩크에게 연신 사인을 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샤샤나 산드로에게 그만한 경기력이 있지도 않았거니와 설령 황선홍, 최용수보다 탁월한 실력이 있다고 해도 나는 반대한다. 이유는? ‘한국인이 아니니까’.
동네 축구에서도 조금 처진다고 낯선 사람을 억지로 뛰게 하면 창피한 노릇이 되지 않느냐. 이렇게 자답하고 나면 정말 개운치 않다. 먼저 외국의 예가 있다. 프랑스 대표팀의 지단(알제리), 튀랑(과달루페), 비에이라(세네갈), 트레제게(아르헨티나), 피레스(포르투갈)는 모두 귀화 선수들이다. 모잠비크 출신의 갈색 폭격기 에우제비오가 그런 것처럼 이들은 대개 프랑스 식민지 출신들이다. 우리와 맞붙을 폴란드의 주전 공격수도 나이지리아 출신의 올리사데베. 일본 역시 브라질 출신의 라모스와 로페스를 대표로 쓴 바 있고 지금도 J리그에서 뛰고 있는 산토스를 귀화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게르만 순혈주의’로 인류사에 비극을 남긴 독일마저도 낡은 전차를 움직이기 위해 가나 출신의 아사모아를 귀화시켰다.
약간의 분석은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유럽의 곳곳이 우리와 달리 다소 느슨한 ‘민족 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더욱이 프랑스나 영국처럼 오랫동안 제국 행세를 하던 나라는 과거 식민지 출신의 선수들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독일 또한 출산율 저하와 그에 따른 젊은층 인구 감소 및 노동 인력 축소에 따라 순수 게르만 혈통만으로는 사회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면서 다른 인종 흡수에 관대해졌고, 그 여파로 아사모아 같은 흑인 선수의 대표팀 발탁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월드컵은 오래된 민족주의의 경연장
그렇다면 우린 무엇인가. 16강이 도대체 뭐기에 외국 선수를 억지로 귀화시키자고 했을까. 아, 모르겠다. 축구가 뭐기에 국적을 바꾸고 16강이 뭐기에 단단하던 순혈주의까지 포기하고, 또 거기에 들붙어 찬성이며 반대를 하게 되는가.
예전에 98년 월드컵을 앞두고 포항에서 활약하던 유고 출신의 공격수 라데 보그다노비치를 귀화시키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라데 또한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단서를 붙였다. ‘월드컵이 끝나면 원래 국적으로 돌아가겠다’고. 백의민족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그 기이한 느낌을 나는 아직도 해석해내지 못하고 있다. 축구는 과연 민족주의의 경연장이란 말인가? 꽤 흥미로운 공부거리다.
정윤수/ 문화평론가

사진/ 월드컵은 오래된 민족주의의 경연장이다. 프랑스의 귀화 선수 지단. (한겨레 김정효 기자)

사진/ 귀화 논란이 끊이지 않는 수원 삼성의 산드로. (한겨레 김정효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