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화 기자
제12회 서울노인영화제가 9월25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열린다. 올해 영화제의 주제는 ‘100白BACK, #100’이다. 노인, 청년 등 다양한 세대가 ‘100세 시대’ 노년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자는 뜻이다. 영화제에서는 노인 당사자의 시선으로, 청년의 시선으로 담아낸 이 시대 노년의 다양한 얼굴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노인과 청년 감독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단편경쟁 국내 부문에서는 노년의 삶을 바라보는 다채로운 시선을 보는 재미가 있다.
올해 노인 감독(65살 이상) 73편, 청년 감독 159편 등 총 232편이 출품돼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 중 본선에 오른 노인 감독의 작품인 자기 삶을 영화로 기록한 <나의 일생>(강복녀 감독), 대룡시장 주민들의 갈등과 화합을 보여주는 <대룡시장을 아시나요?>(조명진·최관식 감독) 등 9편과 청년 감독의 작품인 홀몸노인이 남은 삶을 정리하는 <정리>(이지은 감독), 퇴직 이후 가장의 자리를 잃어버린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을 이야기하는 <가장자리>(채수민 감독) 등 22편을 상영한다.
노인과 청년 세대가 영화로 담은 삶의 이야기는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같을까. <한겨레21>은 영화제를 주관하는 윤나리 프로그래머의 추천을 받아 노인 감독과 청년 감독을 만났다. 서울노인영화제가 주목한 그들, <그날 밤> 강혜령 감독과 <수정포도> 은고 감독의 작품 세계와 창작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거라 생각한 영화를 제가 만들고 있네요.”(강혜령)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내 생애 첫 극영화예요.”(은고)
자신의 이름 뒤에 붙는 ‘감독’이라는 호칭이 낯선 강혜령(65)씨와 은고(27·필명)씨가 카메라 앞에 섰다. 사진 촬영을 하는 게 어색하지만 즐거운 듯 보였다.
9월16일 오후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만난 두 신예 감독은 제12회 서울노인영화제 단편경쟁 국내부문에 작품을 냈다. 베이비붐 세대인 1954년생 강 감독은 노인 감독 부문, 밀레니얼 세대인 1992년생 은고 감독은 청년 감독 부문 본선에 올랐다.
노인복지센터 6주 강좌가 감독의 시작 강 감독은 영화제 기간에 <그날 밤>을 선보인다. 삼 남매의 유년 시절을 그린 작품이다. 강 감독은 “제가 삼남매 중 맏이예요. 작품에서는 막내 5살의 시점으로 어린 시절을 추억했어요”라고 설명했다. 영화에는 그가 기억하는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담겨 있다. “밤에 전깃불이 나가면 동생 둘과 누워서 노래를 부르거나 촛불을 켜고 그림자놀이를 했어요. 그땐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지만 걱정거리가 없었어요. 마냥 좋았어요. 부모님도 살아 계셨고요.” 그가 추억한 그 시절은 “노랗고 파란 꿈을 꾸던” 시절이자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했던 행복한 시절이기도 하다. 강 감독은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제 작품을 보고 무척 좋아하셨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강 감독은 <그날 밤>의 감독, 각본, 그림, 촬영, 편집을 혼자 했다. 미술을 전공한 그는 영화 속에 나오는 그림을 직접 그렸다. “어린 시절 놀던 모습을 여러 장 그렸어요. 그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영상에 담았어요.” 영화를 보면 마치 동화책을 넘겨보는 듯하다. 윤나리 프로그래머는 “다양한 세대가 함께 동심의 세계를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7분짜리 영화지만 제작하는 건 만만치 않았다. 강 감독은 <그날 밤> 영상 편집에 너무 집중하느라 눈에 실핏줄이 터졌을 정도다. 그래도 요즘 영화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평생 아내, 엄마, 며느리로 살아온 강 감독은 우연한 계기로 영화에 관심 갖게 됐다. 재작년 다니던 노인복지센터에서 ‘휴대폰으로 찍는 내 생애 첫 영화’라는 강좌 알림 포스터를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지만 ‘과연 내가 이 강좌에 등록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몇 번을 망설이다 참여했다. 6주 강좌가 끝나고 영화를 만드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점점 더 알고” 싶어졌다. “자막도 넣고 음악도 넣는 영상 편집은 정말 요술방망이 같아요. 그걸 알고 나니 새로운 세상에 눈뜬 기분이에요.” 그다음에는 본격적으로 영화 감독반 수업을 들었다. “수업 과제로 작품을 한 편 만들어야 하는데, 고민하다가 <그날 밤>을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미술을 전공했으니 그림을 이용해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만든 영화 장르가 어정쩡해요. 배우가 나오는 극영화도 아니고, 움직이는 영상이 나오는 애니메이션도 아니죠. 그냥 내가 그림을 이용해 만든 새로운 장르죠.(웃음)” 가족의 도움을 받아 영화를 완성했다. 남편에게서 카메라 삼각대를 빌리고, 가족들이 목소리로 출연해줬다. “수업 시간에 작품을 발표하니 다른 분들이 ‘노인영화제에 출품해보라’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영화제에 냈어요.” 강 감독은 본선 진출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뻤다. “선택받은 느낌이에요. 나도 이렇게 영화를 만들어도 되겠구나라는 자신감도 생겼어요.” 외국에 나가 있는 자녀들도 축하 메시지를 보냈단다. “아이들이 엄마가 바깥활동 하는 걸 못 봤는데 신기한가봐요. 유튜브에 제 작품을 올리고 조회수를 많이 나오게 해주겠다네요.” 영화제 기간에 선보이는 ‘Know-ing: 우리는 모두 영화가 된다’ 섹션에서 그가 배우로 참여한 다큐멘터리 <나는 여배우다>도 상영할 예정이다. 노인 여성 11명이 60일 동안 배우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강혜령 감독의 <그날 밤>(위), 은고 감독의 <수정포도>. 서울노인영화제 제공
서울노인영화제 제공









